"OO행 열차가 곧 들어오니 노란 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길 바랍니다." 쿠궁쿠궁 쿠궁쿠궁 치익 도착한 열차에서 와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열차 안은 많은 사람이 내렸는데도, 빈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열차를 타기 위해 앞서 줄을 선 사람들이 열차에 들어서는데, 미처 내리지 못한 승객이 나가려 꾸역꾸역 사람들 사이를 헤치자, 밀려진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집니다. 뒤에서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탈 걱정에 벌써부터 숨이 막히지만, 이 열차를 보낸다고 하여 다음 열차에 안락하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두 팔을 접어 상체에 바짝 붙인 뒤, 두 발만큼의 최소면적으로 나를 만들어, 겨우 틈을 비집고 몸을 욱여넣습니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사람이 뒤섞여 있다 보니 타인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이를 피하려다 무심코 돌린 고개나 자세로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앞사람의 젖은 머리카락에 따귀를 맞을 때도, 간지러운 소재로 인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이따금 사람이 너무 많아 내려야 할 곳에 내리지 못하거나, 도착역이 아닌데 사람들에게 떠밀려 정차역 문 앞까지 딸려 갈 때도 있습니다.
제 두발은 바닥에 닿아있지만, 다양한 상황에 어쩌지 못하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이렇게 사람들이 이동하는 대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부유하듯 몸이 떠다닐 때면, 마치 지금 제가 접어든 Middle Life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MIDDLE LIFE -
한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 속된 말로 '꼰대'가 되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말과 행동을 경계하려 합니다. 그런데도, 점점 유연함을 잃어가는지 세대 간의 이해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될 때면, 생각을 수용하는 폭이 줄어들어 사고가 고착될까 봐 두려워집니다.
아직도 명확한 위치를 갖추지 못한 채 방황할 때면 20대의 고충이 이해되면서도, 그들의 디폴트 값처럼 장착된 자신을 주저 없이 드러내는 모습에는 그 자의식이 부러우면서도 어느새 결이 달라진 마음 한편엔 삶을 앞서 걸어간 윗세대들의 말과 생각이 조금씩 이해되는 순간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어서 양쪽을 오가며 옹호하게 될 때도 있지만, 그와는 달리 그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도 나를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이 듭니다.
일부 발이 걸쳐져 있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과도기의 문턱 그 어디쯤을 부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퇴근길 대중교통 안, 혼잡한 상황에서도 열차는 출발하듯이, 그렇게 저의 Middle Life도 혼란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함에서도, 소속감에서도 특정한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고
제2의 삶의 변곡점을 맞이한, 방황하는 삶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