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13 Reasons Why> 추천사
*많은 스포가 있습니다.
"존잼. 게다가 여주가 대존예."
친구가 이 드라마를 꼭 보라며 내게 건넨 '추천사(?)'였다. 그 친구도 나도 같은 여자지만, 예쁜 여배우를 보는 건 언제나 즐거우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간단한 줄거리: 자살한 여고생 해나 베이커의 죽음을 애도하던 친구 클레이에게 7개의 카세트 테이프가 든 상자가 배달된다. 7개의 테이프에는 해나가 죽기 전 직접 녹음한 자살의 13가지 이유, 혹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13명의 인물들이 저지른 일이 담겨있다. 클레이는 테이프의 13면을 차례대로 들으면서 해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한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 보면 볼수록, 주인공 해나를 마음 놓고 관음(?)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녀를 예쁜 눈요기의 '대상'으로 보기가 미안해졌다.
작품은 '자살'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 먼저 '자살과 관련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우리 웹사이트를 참조하라'는 문구가 나오며, 드라마의 코멘터리 영상인 <루머의 루머의 루머 그리고 진실> 또한 자살의 원인이나 예방책 등에 집중한다.
그러나 주인공 해나를 자살로 몰고 갔던 수많은 사건들은, 내게는 결국 한 가지의 뿌리 깊고 몸집이 큰 '괴물'로 느껴졌다. 바로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 흔히 줄여서 여혐.)
국가를 불문하고 모든 여자가 공감할 이야기. 한국의 경우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열풍으로 더더욱 요즘 공감할 이야기. 여자로 태어난다면 본격 여성으로서의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는 2차성징의 시기가 되면, 당신은 절대로 절대로 여성혐오를 겪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어릴 때에는 이래저래 다정하고 정상적인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 귀하게 자랄 수도 있다. 부모님이 '남녀는 평등하단다'고 좋은 가르침을 해 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어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 부모님의 보호와 가르침이 참으로 부질없는 유리 온실임을 깨닫게 된다.
마치 주인공 해나의 고등학교 생활처럼, 당신은 점수가 매겨진다. 같은 반 남학생들이 '전교에서 가장 예쁜 엉덩이/입술/가슴' 순위를 매길 때 그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거기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면 "왜 그래? 칭찬이잖아."라는 말을 듣는다.
단골 마트에서 초콜릿바 하나를 샀다. 같은 반 남학생이 뒤로 다가와서 당신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가 놓는다. "너 방금..." 따져보려고 하지만 남학생은 씩 웃는다. "역시 소문대로네."
누군가 매일 밤 당신의 방 창문 가까이 다가와 당신의 사진을 찍는다. 불쾌하고 겁이 난다. '몰카범'은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 졸업앨범에 싣게 될 사진"이라고 해명한다.
더 역겨운 사실은, 해나가 겪은 일들은 이제 시작일 뿐, 해나의 삶 내내 이런 일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 더욱 심하게, 평생에 걸쳐서, 죽을 때까지.
내 또래의 남자를 만나 밝고 아름다운 사랑을, 연애를 하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 남자의 연인이 되면, 그 남자가 아주 정말 괜찮은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당신은 그 남자의 '트로피'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해나의 경우처럼.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키스만 했을 뿐인데, 각도가 야릇하게 나온 당신의 사진을 남자친구가 자신의 패거리들에게 자랑하듯 전송하고, 그 사진이 전교로 퍼진다. 삽시간에 당신은 학교의 '대표 창녀'가 된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당신은 남자친구의 자랑거리이다. 남자친구로 하여금 "나는 쟤랑 자 봤어."라고 친구 패거리에게 동네방네 자랑할 수 있게 해 주는. 마치 전리품처럼, 물건처럼 취급된 끝내 남친의 친구녀석은 남친에게 당신을 '공유'하자고 조르게 된다. '우리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인데, 우정을 위해서 나도 한 번만 네 여친을 가져보면 안 되겠냐'면서. 마치 <루머의 루머의 루머> 속 제시카가 당했던 일처럼.
이토록 위험 부담이 많은 이성교제라면, 그냥 피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해나의 경우, 다가오는 남자를 '거절'했더니 더 무서운 결과가 기다렸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아이들, 또한 거절로 인해 자존심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입은 남자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나를 망가뜨렸다.
해나는 끊임없이 여자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공고하고, 깨지지 않는. 서로가 어떠한 소문에 시달릴 때에도 방패가 되어 서로를 믿고 지켜줄. '미소지니'에 함께 맞서 싸울 수 있는.
그러나 친구 제시카도, 코트니도, 셰리도. 적절한 순간에 해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해나와 자신의 남자친구 사이에서 자신의 남자친구를 택하거나, 해나와 같은 '부류'로 묶일 위기에 처하자 해나에 대해 더 안 좋은 소문을 과장되게 지어내며 꼬리를 끊어버린다.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으로 내려지지 않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왜 여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배신하는지, 서로의 편을 들어주지 못하는지, 어째서 의리로 뭉쳐서 서로를 지키지 못하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손아람 작가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칼럼의 부분이 있다. 인용해보겠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서 동지적 연대를 유지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여성의 정서적 유대에 끼어들 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학창 시절부터 관찰하고 경험한다. 그래서 여성 사이에서 발생한 충돌을 관찰하는 것은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흥미진진한 느낌 아래 도사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절박한 생존연대의 붕괴를 부추기며 가학적으로 즐거워하는 인간 영혼의 어둡고 사악한 면이다."
해나와 그 주변 여자 친구들을 세렝게티 초원의 초식동물 군집에 비유한다면 더 적절해진달까. 언제나 강한 육식동물(남학생)의 위협에 시달리는 그들의 안전은, 오직 육식동물을 피해 죽어라 달리는 무리에서 가장 끝으로 뒤처진 한 마리의 희생을 통해 잠정 담보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해나를 맨 끝줄로 내치고 안전한 남자친구의 품 속으로, 남학생 위주의 기성 질서 속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일을 담담히 보여주는 해나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한번쯤은 "이게 죽을 일이야?" 라고 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겪는 일이 아닐까? 왕따도 좀 당할 수도 있고, 해괴망측한 소문이 전교에 퍼질 수도 있고, 집안 사정이 조금 안 좋을 수도 있고, 남학생들의 불쾌한 시선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고... 분명 너도 나도 겪어본 일인데, 이 일들이 왠지 해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해나가 상황을 더 드라마틱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해나가 조금만 무뎠으면 죽지는 않았을 거야.'라는 생각을, 나는 이 드라마를 볼 때 종종 했었다.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해나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얼마나 엉뚱하고 무책임한 전가 행위인가. 해나를 죽인 것은 해나의 예민함이 아니라, 해나에게 가해진 모든 폭력들이다.
해나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폭력에 대해 무뎌져 있었던가를 드러낸다. 따돌림은 사람을 죽인다. 무관심은 사람을 죽인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방관은 사람을 죽인다. 소문은 사람을 죽인다. 외로움은 사람을 죽인다. 언어적 성희롱은 사람을 죽인다. 강간은 사람을 죽인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원제는 <13 Reasons Why>이다. '해나가 자살한 13가지 이유'라는 의미가 되겠다. 해나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려 13가지나 된다. 그 13가지 모두를 가벼이 여기지 말자. 13가지 모두, 사람을 죽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