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애니메이션 감독 양자신(Cindy Yang)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면서 대만 특유의 감성이 수채화처럼 예쁘다고 생각해본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만의 차세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주목받는 양자신(Cindy Yang)의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이 바로 그런 느낌을 준다. 겨우 5분도 안 되는 러닝타임에.
1. 枝仔冰 (Popsicle) /2017/5분
어린 시절 애완용 누에고치가 죽자 큰누나가 씩씩하게 위로를 해주며 사 줬던 달달한 아이스께끼의 맛. (아이스크림보다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누나가 건넨 그 때 그 아이스께끼. 폭풍우가 내리는 날씨. 오늘에서야 누나도 눈물을 흘리고, 어깨에 기대는 누나를 동생의 손이 조용히 감싼다. 그 추억의 맛으로 남매는 담담히 앞으로 올 폭풍우들을 잘 견뎌낼 것이다.
영상의 마지막에 나온 "Dedicated to those that have departed, and the ones who are left behind.(떠난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조용한 문구가 먹먹해진다.
2. BUNNY/2016/1분
어린 남매에게 엄마가 정성들여 싸 주신 도시락. 하나는 곰 모양, 하나는 토끼 모양이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도시락을 열자 자신의 것이 토끼가 아닌 곰임을 알게 된 누나는 부리나케 아랫층으로 뛰어가 남동생과 도시락을 바꿔 오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도시락을 개봉하는데...! 토끼 얼굴은 마구 망가져버렸다. 아, 나는 예쁘고 온전한 토끼 도시락을 먹고 싶었는데, 만약 내가 진작에 토끼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왔더라면, 이렇게 흔들지 않고 조심조심 가져왔었을텐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심에 공감하며 볼 수 있는 귀여운 작품.
3. Here you go/2016/1분
꿈나라에 푹 빠져버린 옆 자리 친구. 요란하게 자느라 팔이 연필을 건드려 자꾸만 책상 밑으로 떨어진다. 몇 번이고 연필을 떨어뜨려도 조용히 연필을 다시 주워 책상 위에 올려 주는 착한 친구. 미소 짓게 되는 우정.
4. 午(Noon)/2015/4분
오후 12시~2시경은 묘한 시간이다. 벌써 오전이 끝나버렸다는 아쉬움과, 그래도 아직 오늘 하루가 많이 남았다는 안도감과 나른함이 교차하는 시간.
아시아의 어떤 공통된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일까, 특히나 싱가포르에서 산 적이 있는 나로서는 포장마차에서 국수 국물을 내고 사람들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점심을 때우는 모습들이 정겹고 친숙하다. 살풋 잠이 든 내 옆에서 털뭉치 강아지나 고양이가 요란한 잠투정을 하고, 햇볕에 잘 마른 여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의자를 뒤집어 책상 위에 얹고, 부엌에서는 탁탁 도마질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오후의 정서를 잘 담아낸 작품.
5. Rainy Day/2016/1분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이상하게도 장마철은 좋다. 이왕 비가 올 거면 시원하게 온 세상이 다 젖어버리게 오는 게 좋다는 심리일까. 양말이 일부만 젖으면 찝찝하고 신경쓰이지만 아예 온몸이 쫄딱 젖어버리면 수영장이라도 들어갔다 나온 듯한 후련함이 드는 그런 기분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