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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Oct 26. 2017

넷플릭스의 19세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 그리고 <빅 마우스>

 넷플릭스Netflix에는 재미난 작품이 참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청소년 관람불가 애니메이션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인' 애니메이션은, 대표적으로 심슨가족 시리즈처럼, 왠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어야 할 것만 같은 알록달록함과 그 내용의 엽기성 혹은 지나친 현실성이 만들어내는 괴리감 덕에,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쾌감이 있다.


1. <릭 앤 모티>, 어떤 위로

 집안의 짐덩이 취급받지만 본인은 1도 신경 안 쓰는 미치광이 과학자 할아버지 릭, 그리고 그의 손자인 소심한 말더듬이 찐따 모티의 기상천외 모험 이야기. 


 필자는 SF 장르나 과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릭 앤 모티>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릭 앤 모티>에서 그려내는 괴기한 일들이 실은 우리가 실제로 겪고 있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고, 나와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 늘상 하는 소시민적 생각들("내가 지금 내 옆의 이 사람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더 잘 살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을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가령 모티의 아빠 제리는 무능력한 회사원이고, 모티의 엄마 베스는 말(horse) 외과 의사다. 베스는 언제나 '진짜' 외과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이 콤플렉스로 남아 있으며, 무의식중에 고등학생 시절 제리와 사고 쳐서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꿈을 이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를 알고 있는 맏딸 서머는 자신이 원치 않는 자식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제리는 무능력한 자기 자신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릭(겉으로는 늘 제리가 릭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하는 것 같지만)에게 늘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인정에 목마른 상태다.

 

"존재의 목적이 있는 사람은 없어"


 무수한 차원의 세상이 있고, 그 무수한 차원 만큼의 무수한 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의 내가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무수한 버전의 나 중에서는 최선일 수도 있다. 혹은, 어느 차원에 가 봐도 나 자신은 마찬가지로 찌질하고 나약하고 우유부단해서, '바로 이게 나 자신이야'하고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지도. 그리고 유독 나에게 고약하게 굴며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내는 그 사람, 어쩌면 어딘가 다른 차원에는 내 마음에 쏙 드는 버전의 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혹시 모른다. 그 차원에서는 그 사람과 내가 악연이 아닌 좋은 인연으로 만나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주고 받고 있을지도.


  블랙코미디가 섞인 위안을 얻고 싶을 때 보도록 하자. 현재 시즌 3까지 있다.


2. <빅 마우스>, 전체관람가 안 되나요?


 이 시리즈를 '성인용'이라고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참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전체관람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의 성교육 현장에서 상영했으면 하고 빌어본다. 한국에서 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 곳의 성교육의 현주소가 얼마나 처참한지 알 것이다. '성'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수줍고 수줍고 또 수줍은 나라.


 사춘기가 찾아온 아이들이 겪는 변화를 그려낸 작품. 무엇보다도 사춘기를 억지로 미화하지 않고 아주 흉하게 생긴 '호르몬 괴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사춘기와 2차 성징은 '아름답고 꽃다운' 모습이 아닌, 실제로는 털이 북슬북슬하고 피가 뚝뚝 흐르고 머릿속에 더티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것이 사실이기에 인상 깊은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성교육처럼 월경, 생식기 크기의 변화에 대해 다루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게이?> 편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게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과 친구들이 너무 당연히 받아들인다. 주인공의 상상 속 유령 아저씨가 실제 게이였던 역사적 인물들을 소화하며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 창법으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성교육이라니. 이에 더해 더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엔 주인공이 "어쩌면 내가 게이가 아닐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것. 성 정체성을 단번에 결정지어버리지 않고 많은 가능성을 남겨두며, 주인공의 친구는 "세상 사람들 중 그 누구도 100%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별 것 아닌 한 문장이, 얼마나 완벽하게 지구상의 인간 모두에 대한 차별의 근거를 없애버리는지 주목!


 또한 머릿속의 더티한 생각을, 전혀 표현을 순화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필터링 없이 내보낸, 속되고 실감나는 대사들도 인상적이다.


 솔직히 이미 알 것 다 아는 성인이 보기에는 큰 재미는 없는 사춘기 소년소녀들 이야기이지만, 나는 꼭 이 애니메이션이 대한민국의 교실에서 상영되길 바란다. 월경/몽정/수정/"안돼요 안돼"만 가르치다 끝나고 마는 기존의 성교육에 비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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