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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Oct 02. 2017

비라코차의 낙서인가요,
나스카 라인

땅 위에 그린 신의 낙서, 나스카 지상 그림



사막이 아름다운 이카를 떠나, 불가사의의 땅 나스카로 간다.

나스카의 숙소는 Hostal Buen Pastor. 손님을 'my friend'라고 부르는 매우 친절한 부부가 운영하며, 1층에서 컴퓨터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고, (기본이지만) 나스카 경비행기 투어도 예약해준다. 객실도 청결하고, 업그레이드를 해 준 건지 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 혼자서 더블 베드룸을 썼다. 뜨거운물 펑펑 샤워도 물론 가능한 곳. 나스카 크루즈 델 수르 버스터미널에서는 약 6블럭 정도 거리이고, 메인 광장은 코 앞이다. 



다음 날 아침에 나스카 라인 경비행기 투어를 하기로 예약해 두고

로컬 식당에서 시시한 저녁을 먹은 후 정처없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나스카는 상당히 황량한 곳이었다. 

광장 근처 시장의 모자 상인.

야시장의 모습.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으로 투어 차량이 픽업을 하러 왔다.

얼마간 달린 뒤 나스카 경비행기 공항에 도착했다. 투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나면 끝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얼마나 일찍 공항에 도착했건 상관 없이, 비행이 연기되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후기를 수도 없이 읽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많이 기다려야 할 줄이야. 

심심해서 공항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저 사진 속 보이는 기념품샵에서 보들보들한 면 티셔츠 하나를 사서 안에 받쳐 입었다. 

비행기 언제 탈 수 있나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다 보니 드디어 내 이름을 호명한다. 

드디어 나간다!

경비행기에는 4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타게 되는데, 나와 함께 탄 사람은 독일에서 온 가족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나니 더 신이 난다. 그나저나 긴 여행 때문에 다듬지 못하는 눈썹,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나스카라인을 어떤 순서로 보게 될 지 알려주는 그림이다.

경비행기의 양 옆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그림을 볼 수 있도록, 경비행기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번갈아 몸을 기우뚱하며 비행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멀미를 하고 구토를 한다고 들었다. 나는 역시 멀쩡했다. 

경비행기가 높이 높이 올라간다. 사실 하늘 위에서는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와 있는지 가늠이 안 난다.

보이나요? 첫 번째로 만날 그림, 고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고 하니 서둘러 가 보시길.

땅 위에 난 여러 흠집, 사람들이 장난으로 남긴 낙서와 나스카 라인이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니 더더욱 마음의 눈까지 크게 뜨고 그림을 찾아보시길.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이는 고래 그림.

아, 이 사진이 조금 더 똑똑히 보인다. 뒤집힌 고래 한 마리!

동물을 그린 그림 외에도 이런 거대한 삼각형처럼 기하학적인 도형도 땅 위에 무수히 그려져 있다.

제목에서 말한 '비라코차' 말이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신의, 신적인 존재의 이름이다. 

고대 사람들은 비라코차가 나스카 그림들을 그렸다고 믿었단다. <신의 지문>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신화의 '비과학적'인 설명 이상의 것을 찾아내려고, 사람들은 '과학적' 설명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렇게 건조하고,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고, 시냇물 한 줄기 흐르지 않는 땅에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거대한 도형에 동물들을 새겨 넣는 일을 

어떤 합리적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이 그렸다는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광경들이라서 나에게는 차라리

반인반신 비라코차가 이 심심한 땅을 스케치북 삼아 손가락으로 슥슥, 여기저기 낙서를 하면서 채우고 노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합당한 설명으로 느껴졌달까.

짜잔!

너무나 만나보고 싶었던 그림이다. 언덕 위에 그려진 우주인, 또는 사람.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는다. 

이 아이는, 언젠가 먼 훗날 인간이 자신의 전신을 똑똑히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하늘 위로 높이 올라갈 기술을 개발한 뒤 자신을 만나 주길 예상하고 있던 걸까?

마치 인사를 하듯, 왜 이제서야 왔냐고 말하듯 번쩍 든 한 쪽 손.

안녕, 안녕!

안녕.

나도 너무 반가워. 네가 너무 보고싶었어.

잘 있어!

정말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나스카 라인은 정말 희미해서 놓쳐버리고 만다.

위 사진 또한 그런 경우다.

직접 보고 온 내 눈에는 잘 보이지만...

경비행기의 검은 그림자 위로 뭔가 돌돌 말린 원 같은 그림을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사진을 못 찍어서 참 애석하지만, '원숭이' 그림의 꼬리 부분이다.

이 사진도... 이쯤 되면 숨은 그림 찾기다.

왼쪽 하단에 희미하게 '개'(dog) 그림이 보인다. 

앗! 다행히 이 사진에는 원숭이의 전신을 사진에 담았다.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인다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체 어디있다는 거야..."라 할 것 같다. 동그란 미로처럼 돌돌 감긴 원숭이 꼬리부터 찾으면 쉽다. 

이 사진도 숨은그림찾기. 왼쪽 하단에 희미하게 새 그림이 보인다. 이게 벌새(Hummingbird)였던 것 같다.

경비행기가 몸을 좌우로 비틀며 달리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다.

땅 위에 그려진 수많은 애꿎은 선들만 찍어 본다.

보이시는지. 사진 중앙에서 살짝 오른쪽에 위치한, 벌새 그림. (hummingbird) 

아마 나스카 그림 중 가장 잘 알려진 이미지 중 하나일 것이다. 부리가 앞으로 길쭉하게 튀어나온 새.

더 좋은 사진이 여기 있었군.

땅 위에 선명히 보이는 귀엽고 거대한 벌새.

또 다시 보이는 거대한 삼각형.

집과 들판 사진을 찍어 보니 얼마나 높이 올라와 있는 건지, 그리고 동시에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나스카 라인들이 실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실감이 난다.

뭘 찍은 거지?


콘도르가 보인다. 비행기 날개 아래, 사진 오른쪽 애매한 하단에 있는 녀석이다. 

사진 왼쪽 하단을 살짝 가린 나의 손가락 바로 위, 콘도르가 보인다.

양쪽으로 날개를 쫙 펴고 있는 늠름한 녀석.

다시 한 번, 눈 크게 뜨고 찾아보시길.

콘도르는 화면 중앙에서 왼쪽으로 살짝 빗겨 있다.


이 녀석은 앵무새(parrot)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서 반가운 녀석.

안녕 앵무새!

정체 모를 새 그림도 보인다. 안내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림이다. 마치 새 두 마리가 엉켜버린 듯한 그림이다. 그리다가 헷갈려서 두 마리를 합쳐 버렸거나, 한 마리를 그리다가 방향감각을 잃고 한 마리를 더 그려버린 듯한 모양새.

샴쌍둥이가 돼 버린 듯한 새 두 마리!

이 사진에서 좀 더 똑똑히 보일는지. 

Alcatraz라는 새다. 아마 가장 거대한 그림이 아닐까 싶다. 구불구불 지그재그로 길게 꺾인 부리를 갖고 있다.

지그재그로 꺾인 부리만 찾아내면, 당신은 성공이다. Alcatraz를 찾아 냈다.

엄청나게 긴 부리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서 몸집은 작은 Alcatraz 그림.

이 도로는 Panamerican road라는 도로다.

그런데 이 도로가 한 그림을 가로지르고 있는 게 보이시는지?

도로 건설 때문에 목이 잘려버려서 슬픈 도마뱀 그림.

도로와 지상 관측소 근처에 두 개의 그림이 보인다.

왼 쪽에 있는 것은 나무(tree), 오른쪽에 있는 것은 손(hand). 마치 병아리처럼 생긴 귀여운 무언가에 두 개의 손이 달려 있다. 

나무, 그리고 손

비행기는 이제 지상으로 내려간다.

착륙.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그림인데. 

섭섭하다가도

일생에 한 번 밖에 못 볼 광경이기 때문에 귀하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매일 볼 수 있는 옆동네의 것이었다면

나스카 지상 그림이 그리 진귀하고 불가사의한 것일 이유도 없으니까. 

안녕, 나스카!

이제 쿠스코로 간다.

여행이 점점 하이라이트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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