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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Jan 16. 2018

반나절, 바릴로체 시내 구경

아쉬운대로 열심히 돌아다닌 사계절 크리스마스 요정의 마을

 꼬여버린 스케줄 이야기는 볼리비아 이후로 지겹도록 설명했던 것 같고. 역시나 꼬여버린 스케줄 때문에 나는 그토록 기대하던 바릴로체에서 1박 밖에는 하지 못하게 됐다. 원래 예정은 3박이었다. 그러니까, 이 날은 1박 2일 중 마지막 시간인 '2일째.'

 보통 남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대륙의 최남단까지 가는 일정을 포함시킨다. 저 멀리, 북극과 가까운 땅 끝까지 내려가서 푸르른 빙하를 보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내 72일의 일정상 나는 그 밑까지 내려갈 수 없었기 때문에 바릴로체가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파타고니아 지역이었다. 바릴로체에서 눈 쌓인 산에도 올라가고, 아름다운 호수도 실컷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이날 오후 2시쯤 바릴로체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아쉬운 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에라도 실컷 바릴로체 시내라도 구경하려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 봤던 Centro Civico.

이 뒷쪽으로 들어가자 기대하고 기대하던 바릴로체의 시내가 나타난다.

내 눈에 처음 띈 바릴로체의 초콜릿 가게. 

바릴로체는 마치 작은 스칸디나비아 같다. 어딜 가나 따뜻한 겨울옷,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작은 요정이나 트롤 모습의 인형을 파는 기념품 가게, 화려한 초콜릿 가게가 가득하다.

여긴 유명한 젤라또 가게 mamuschka. 명성에 비해서는 좀 초라하다 싶었더니 알고 보니 점포가 하나 더 있었다.

여기도 상당히 유명한 초콜릿 가게. 할머니 상표로 유명하다. 나도 이 곳에서 Alfajores(아르헨티나의 국민 간식. 초코파이처럼 생겼다.) 한 상자를 사서 나중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친구(다음 편에서 그 친구가 나온다)에게 선물로 줬다.

보라색 가득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던 Rapanui 초콜릿 가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 딱 여기와 닮지 않았을까? 저 초콜릿 분수, 진심으로 훔치고 싶었다.

나무가 따뜻한 겨울 털실 옷을 입었다. 전에도 호주 멜버른을 여행하다가 길거리에서 이렇게 예쁜 옷을 입은 나무를 봤었는데, 이렇게 나무에게도 따뜻한 정성을 선물한 사람의 마음이 참 예쁜 것 같다.

또 들어간 어느 초콜릿 가게. 케이크 진열장에 또 한참 넋을 빼앗겼었다. 속이 엄청 꾸덕하겠지? 저 꾸덕한 초콜릿 속에 얼굴을 파묻고 한 시간만 있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상자에 종류별로 잔뜩 골라 담고 싶었지만 돈이 너무 없다. 엉엉. 바릴로체 물가 장난 아니다.

이렇게 나뭇가지처럼 생긴 초콜릿이 가장 유명한 초콜릿 종류라고 한다. 나도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이것만은 꼭 먹어봐야지 싶어서 샀다. 맛은 그냥 평범하다. 

젤라또도 너무 먹고 싶었지만 바릴로체는 너무 겨울 분위기가 나서 엄두를 못 냈다. 대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갔을 때 나는 원없이 1일 1젤라또를 먹었다.

시내를 한 바퀴 슥 들러보고 다시 나오니 호수가 보인다. 호수의 이름은 Nahuel Huapi.

길을 건넙니다.

호숫가에 도착했습니다. 

이건 아마 우리나라의 장승과 비슷한 걸까?

호수 색깔이 너무 예쁘다. 

동남아 바다의 옥색 바다도 봤고, 제주도 바다의 청량한 파란빛도 봐 왔지만 이런 로얄블루빛은 내가 처음 보는 호수 색깔이었다. 

아르헨티나 장승님과 함께.

곧 바릴로체를 떠나게 될 텐데, 이렇게라도 호수를 봐야지.

호숫가에서 잠시 멍을 때리다가, 다시 못다한 시내 구경을 하러 갔다. 호수도 아쉽고, 시내도 아쉽고. 호수와 시내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시내로 향한다.

정오가 다 되어 더 깨끗하게 보이는 Centro Civico.

이 커다란 멍멍이가 Centro Civico의 마스코트와도 같다. 어릴 때 외국 영화에서 많이 보던 세인트 버나드 종인데, 함정은 이 강아지와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된다는 점. 

아까 밖에서 군침만 흘리던 라파누이Rapanui 초콜릿 가게에 들어가 봤다. 

한참 예전에, 스마트폰을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한참 Bakery Story라는, 빵집을 운영하는 게임에 폭 빠져있었다. 베이커리를 운영해 돈을 벌면 그 돈으로 가게를 넓히고 예쁜 테이블과 의자를 살 수 있었지만 나는 돈을 구두쇠처럼 아끼고 또 아꼈었다. 이유는 게임에서 가장 값비싼 장식품이었던 초콜릿 분수를 들여놓고 싶었기 때문. 마침내 돈이 모여서 초콜릿분수 구매 버튼을 누를 때에는, 아무리 게임 속의 돈이라도 얼마나 손이 덜덜 떨리던지. 

전부 쓸어담고 싶다. 

마트로슈카 장식이 인상적인 Mamuschka. 

저 사진 속에는 chocolates와 bombones라고 써 있는데, bombones 역시 스페인어로 초콜릿이라는 뜻이지만, 흔한 판초콜릿이 아닌 대체로 동글동글하고 속에 뭔가 필링이 들어 있는, 대체로 상자 속에 여러 가지 종류를 넣어서 팔 법한 그런 초콜릿을 의미한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진열장 앞의 북적북적한 손님들은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초콜릿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부지런히 외치고, 그러면 직원들은 바쁘게 상자 안에다가 초콜릿을 집어 담는다. 초콜릿마다 가격이 붙어있는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무게를 달아서 값을 매긴다.

 사실 그 동안 남미에서 먹는 것만은 잘 먹고 다녔었다. 그 동안 갔던 나라들은 물가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싼 편이라서, 잘 먹고 다닌 수준이 아니라 사치를 하고 다녔었다. 꽤 괜찮은 식당에 가고, 꼭 디저트와 사이드 메뉴와 과일 음료까지 시키는 사치(?)를 부렸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 오고나서부터는, 만만치 않은 물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특히 바릴로체에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서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는 바릴로체에서 돈을 아껴야 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Centro Civico 뒷편의 푸드트럭이 보였다. 가이드북에서 "바릴로체에서 돈을 아끼고 싶거든 푸드트럭을 애용하라"는 꿀팁을 봤기 때문에, 나도 푸드트럭으로 달려갔다. 주로 핫도그나 햄버거를 파는 푸드트럭인데, 절대 한국에서 먹던 핫도그와 햄버거를 상상하지 마시길. 바릴로체의 푸드트럭이란, 진짜 가지(?)만한 초리소(Chorizo, 스페인/남미 식 소시지)와 스테이크를 방불케 하는 고기를 사용하는 곳이니까.


짜잔! 내가 시킨 초리빤(Choripan). 여기서는 핫도그를 초리빤이라 부른다. Chorizo(소시지)+pan(빵)이라는 뜻이겠지?

할렐루야. 초리소를 찬양합시다. 진짜 맛있다.

저 피클 토핑은 내가 원하는 대로 숟가락으로 퍼다 먹을 수 있는데, 희한하게도 다른 손님들은 거의 올려서 먹지도 않더라. 스테이크집에서도 느낀 거지만, 아니 거의 모든 여행 내내 느낀 거지만, 남미 사람들 진짜 진짜 야채 안 먹는다. 채소를 먹어도 꼭 감자를 먹는다. 고기를 먹을 땐 반드시 파릇파릇한 채소를 먹어야 한다는 한국식 음식문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식습관이다.


 딱 하룻밤뿐이었지만 정든 숙소 Hostelito와 작별했다. 친절한 주인 아저씨, 부디 번창하시길. 조금 정신없이 체크아웃을 하면서, 나는 또 바보처럼 남미여행의 세 번째 셀카봉을 숙소에 두고 왔다.

 나는 왜 이렇게 셀카봉을 잘 두고 다니는 걸까? 한국에서 들고 온 셀카봉을 멕시코의 타코 트럭에서 잃어버리면서 멕시코시티에서 첫 번째 셀카봉을 샀고, 이어서 칠레 깔라마 도난 사건 때에서 그 셀카봉을 잃고 산티아고에서 두 번째 셀카봉을 샀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 바릴로체의 호스텔에서 잃어버렸다. 


 숙소 아저씨가 불러 주신 택시를 타고 바릴로체 버스 터미널로 갔다. 바릴로체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또 장거리 버스 여행이 시작된다.

일부러 이층 맨 앞자리를 예약했다. 이 사진이 바로 이층 자리에 앉아서 찍은 아름다운 바릴로체의 모습이다. 이층 맨 앞자리에 앉으면, 버스 앞 유리가 굉장히 커다랗고 아주 길게 나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아르헨티나의 자연이 눈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24시간 아이맥스 영화를 시청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일부러 이층 맨 앞자리를 예매한 것인데 내 예상이 맞았다. 

앞 유리에 이어서 옆 유리도 이렇게 풍경이 길다랗게 이어진다.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아르헨티나 버스 회사에서는 (내가 탄 회사만 이런 건진 모르겠지만) 음식을 너무 많이, 또 자주 준다. 역시나, 빵과 고기와 달달한 간식들은 먹을 수 있어도 채소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려야 한다. 

한참을 달렸다. 창 밖에 비가 내린다.

내가 초등학생 때 다녔던 영어학원에서는 미국 초등학교 문학 교과서로 수업을 했었다. <Literacy Place>라는 교과서였는데, 거기에 한 소녀가 방학 동안 팜파스(Pampas)에 놀러간 이야기가 나온 게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었다. 산도 나무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초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아저씨들. 사람보다 많은 수의 소떼. 밤이 되면 모닥불에 둘러 앉아 철로 된 빨대로 마시는 마테차. 

 그 때 당시에는 '이렇게 끝없는 초원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니,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 아이들이 받는 문학 수업이 부럽다. 교과서 속에는 아르헨티나 팜파스 얘기부터, 차이나타운의 이야기, 재미교포 소녀가 한국을 방문해 할머니와 서울을 구경하는 이야기, 유대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등등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가르치는 내용이 가득했다. 언제쯤 한국 교육도 다양성을 가르치게 될까.

진짜로 소떼가 보인다.

사람은 안 보이고 소들만 가득하나 바깥 풍경을 구경하며, 자다 깨다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버티다 보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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