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지 Apr 04. 2018

세가지 맛, 질풍노도의 사랑

넷플릭스 드라마 <판타스틱 하이스쿨><빌어먹을 세상따위><별나도 괜찮아>

나는 유독 하이틴 로맨스, 혹은 사춘기 감성에 약하다.

그 때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서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좋아하고, <쇼미더머니>보다는 <고등래퍼>에 끌리고, 도서관에서 종종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책에 손이 가는 식이다. 


 그런 간질간질하고 봄바람같은 이야기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어설프고 서툰 이야기들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세 편을 시청했다.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소녀'라는 기본 소재는 같지만, 각자 느껴지는 맛이 다 다르므로 입맛대로 골라서 보시기를. 


(**줄거리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1. 판타스틱 하이스쿨(Everything Sucks)

내 점수는요: ★★★★★

맛 평가: 도란도란 단란한 대화가 넘치는 가정집 주방에서 보글보글 끓여먹는 샤브샤브의 담백 구수한 맛.

줄거리 요약: 이름처럼 지루한 보링 고등학교. 그러나 사랑은 필수인지. 신입생 루크는 2학년 케이트에게 첫눈에 반한다. 즉석에서 케이트를 집에 데려오기에 성공한 루크. 이제 다음 진도는 뭐지?

나의 코멘트:

 원제 Everything Sucks를 대체 왜 '판타스틱 하이스쿨'로 바꿨는지는 모르겠다만. <판타스틱 하이스쿨>의 시대적 배경은 90년대이다.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인 10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왜 하필 9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정했는가에 대해서는, 마치 한국의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당시의 복고풍 감성을 환기시키거나 주인공들의 풋풋한 감정을 아날로그식 소품으로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여자 주인공 케이트는 동성애자다. 지금도 결코 완벽하지는 않지만, 90년대에는 지금보다 더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용적이지 않았다. 동성애가 종교적인 기준에서 불결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눈물겨운(?) 이성의 사랑의 힘으로 치유되거나 전환될 수 있는 취향이라고 믿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남자 주인공 루크는 자신의 첫사랑 케이트가 동성애자임을 알고서 케이트를 '자신을 좋아하는 이성애자'로 만들고자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만,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또 한 가지, <판타스틱 하이스쿨>을 좋아하게 된 힐링 포인트는 '좋은 어른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케이트의 아버지와 루크의 어머니이다. 어린 자녀에게 귀를 기울이는 어른, 바보같은 실수를 하는 어른, 그리고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어른. 케이트의 아버지와 루크의 어머니는 일찍이 배우자를 잃었지만 '좋은 어른'들이고,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아이들 또한 훌륭하고 건강한 아이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시즌 2가 궁금해진다. 이 '좋은 어른'들과 '좋은 아이'들은 어떻게 앞으로의 난관들을 풀어나갈까? 케이트는 아버지에게커밍아웃을 하게 될까? 케이트와 그의 동성연인 에멀라인의 관계는 학교에 공개적으로 알려지게 될까? 모든 것이 완벽해진 순간 갑자기 찾아온 루크의 친아버지는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시청 포인트: '덕후', 즉 몰두할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케이트는 방 안을 자신이 선망하는 여성 뮤지션들의 사진들로 도배했고, 루크는 영상 제작을 즐기는 영상 마니아다. 어설프나마 자신만의 세계가 담긴 예술을 창작하고 자신만의 뮤즈에 푹 빠져 위안을 받는, 청소년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빌어먹을 세상따위(The End of the Fxxxing World)

내 점수는요: ★★★☆☆

맛 평가: 먹고 죽자! 휘핑크림으로 삼층 석탑을 쌓고 레드벨벳 케이크와 오레오쿠키까지 잔뜩 추가한 괴물 밀크셰이크의 머리가 띵-한 단맛.

줄거리 요약: 자신이 사이코패스라고 믿는 열일곱 소년 제임스. 동물을 죽이는 데 싫증이 나서 사람을 죽여보기로 한다. 상대는 앨리사, 갑자기 제임스를 치고 들어온 건방진 전학생이다. 아버지의 차를 훔쳐 길을 떠난 두 사람의 끝 모르는 일탈이 시작된다.

나의 코멘트:

 위의 <판타스틱 하이스쿨>에는 '좋은 어른들'이 넘쳐났다면, 여기서는 '좋은 어른'을 단 한 명이라도 볼 거라는 기대를 버리자. 성장기의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보호해 줄 제대로 된 어른이 한 명도 없는 세상에서, 주인공 제임스와 앨리사는 오발탄처럼 여기저기 튕겨져 나가 엉뚱한 곳에 박힌다.

 앨리사의 친엄마는 일그러진 남성성을 가진 새 남편에게 정신적으로 길들여져 앨리사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그 새 남편(앨리사의 새아빠)은 의도적으로 앨리사가 안전한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도록 부추긴다. 제임스가 어릴 때 그의 눈앞에서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상처 앞에서 경찰은 속수무책이다. 친절해보였던 어른은 앨리사를 성적으로 착취하려는 본심을 드러낸다. 마침내 만난 '좋은 어른' 같았던 앨리사의 친아버지는 알고 보니 앨리사도, 다른 여자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도 전혀 책임지지 않은 무책임함의 전형이었다.

 그들에게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며 제임스와 앨리사는 세상의 끝까지 달려간다. 더 많은 위법을 저지르고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르며 상황이 악화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니?"하고 말할 염치조차 없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고 해결할 방도도 없는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이기에. 어차피, 이 두 악동도 어른들의 보호와 체제 하에 편입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청 포인트: 1) 앨리사의 특이한 영국 사투리 2)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시점에서 점점 더 나빠지는 주인공의 처지. 3) 과연 앨리사의 엄마는 '나쁜 남자'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그게 제일 궁금하다.



3. 별나도 괜찮아(Atypical)

내 점수는요: ★★★★★

맛 평가: 남들이 끓이면 맛있기만 하던데, 내가 끓이기만 하면 퉁퉁 불어터지는 라면의 맛. 하지만 비록 맛없고 못났다고 해도 내 라면도 여전히 '라면'인 거 맞죠?

줄거리 요약: 남극을 좋아하고, 펭귄을 사랑하는 고기능성 자폐증을 가진 샘. 그에게도 봄이 왔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샘의 벼락같은 중대 발표에 샘의 가족은 발칵 뒤집어진다.

나의 코멘트: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는 이렇게 세밀하게 자폐아의 삶을 묘사한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자폐아 하면 흔히들 '정상인'과 의사소통이 절대 불가능하고 앉아서 땅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구제불능의 애물단지 아니면 <굿 닥터>의 주인공처럼 한 가지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미스터리한 영물로만 다루는 한국 드라마와 달리, <별나도 괜찮아>는 주인공 샘의 시점에서 느끼는 세상이란 어떤 것인지를 자세하게 묘사하며 우리가 그를 이해하고 심지어는 공감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세상에 적응하도록 훈련하고 '교화'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이미 장애인들은 최선을 다해서 매일매일 비장애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살아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지 않을까? 반대로 <별나도 괜찮아>에서는 비장애인이 단 한 명의 장애인인 샘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샘의 등이 등받이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버스를 모는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 불빛과 소리에 민감한 샘을 위해 사일런트 무도회를 여는 학교 등등.

 샘의 가족들이 샘의 자폐를 대하면서 겪는 각자 다른 양상의 어려움 또한 이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이다. 샘의 엄마는 그 누구보다 샘을 위해 헌신하면서 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했지만, 성인이 되어가면서 자신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며 자신의 품 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샘을 보며 당황과 무력감을 느낀다. 샘의 아버지는 최근에 들어서야 샘과 가까워졌지만, 샘이 어릴 때 자폐아 아들을 뒀다는 좌절감으로 가정을 떠난 과거가 있고 때때로 샘의 자폐를 부끄럽게 여겨 직장 동료에게도 수년간 샘이 자폐아임을 알리지 않았다. 샘의 여동생 케이시는 촉망받는 육상부 선수이지만, 샘에게 쏟아지는 부모의 관심 때문에 때때로 자신의 것은 텅 비어있다고 느꼈다고 고백한다. 

 또 한 가지 이 드라마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샘의 러브라인이 누구와 이어질지 명확한(혹은 성급한)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것. 샘이 일하는 전자제품 가게의 빨간머리 여직원에서, 상담사 줄리아에서, 같은 학교의 학생 페이지까지. 샘이 참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명확히 알고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별나도 괜찮아>는 현명하게도 섣불리 샘을 다른 이성과 끈끈한 커플로 이어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샘의 성장과, 샘과 다른 사람이 서로 상처를 주고 화해를 하는 과정에 집중할 뿐. 

이건 그냥 케이시가 너무 이뻐서...

시청 포인트: 1)엔딩을 참 똥줄이 타게도 끊었다. 시즌2가 너무나 기대되는 시리즈. 2)여동생 케이시 역을 맡은 배우가 너무 예쁘다. 키이라 나이틀리 느낌.

매거진의 이전글 내 손 안의 개그콘서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