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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 Mar 22. 2018

탱고의 발상지, 라 보까 까미니또

이거 트루먼쇼인가요? 날과 시간을 잘못 맞춰 간 까미니또엔 나밖에 없었다

전날 비가 왔던 우중충한 날씨는 그 다음 날 오전까지 계속됐다.

산뗄모의 집에서 걸어나와 처음으로 지하철이 아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에 도전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우리나라가 아직 소 달구지를 끌고 다닐 시절에 이미 지하철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지하철의 역사가 깊은 나라치고, 노선이 몇개 되지 않고 그나마도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라 보까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는 서울의 버스와 달리 이번 정류장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안내방송이나 전광판이 없다. 알아서 보고 내려야 한다는 뜻이기에 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긴장이 무색하게도 나는 머뭇거리다가 벨을 누르는 타이밍, 구글지도를 보며 여기가 맞나 확인하려다 내리는 타이밍을 놓쳐서 정거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괜찮아,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되지 뭐!" 

 보통 서울에서 버스 정거장 하나를 놓치면, 한 정거장 사이의 거리쯤이야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정도였으므로 여유를 부리며 마음을 다스리려는데...

 큰일났다. 버스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아예 벗어나서 엄청나게 큰 다리를 하나 지나는 게 아닌가. 한국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딱 서울에서 인천으로 건너가는 느낌이었다. 그 다리는 고속도로마냥 차선이 무지하게 넓었고 바깥으로는 바다와 컨테이너선이 잔뜩 있는 항만이 보였다. 뭐지? 뭐지? 도저히 내릴 타이밍을 주지 않고 버스는 계속해서 다리를 건너간다. 아무리 봐도 여기는 더 이상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니다.


 가까스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참고로 로밍이 되지 않아 와이파이가 있는 곳에서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구글지도로 다시 어떻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야 하는지 찾아볼 수도 없는 상태. 주변에 사람이 한 명이라도 지나다니거나, 들어가서 길을 물어볼 상점이라도 몇 개 있거나,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 미스터리한 항구 지역은 놀라울 정도로 휑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게, 그리 오래 돌아다니지 않아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같은 번호의 버스를 발견해서 나는 다시 그 커다란 대교를 건너 라 보까 지역에 내렸다.  

구글맵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까미니또의 그 유명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사전조사한 사실인데, 알록달록한 관광지 까미니또를 아주 조금만 벗어나도 치안이 매우 위험하다고, 그래서 관광객들이 그 바깥의 구역으로 넘어가게 되면 현지인들이 "당장 여기서 벗어나라, 위험하다"고 경고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로 이동한 나로서는 이 주변을 걸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좀 불안했다.


 스페인어로 'Camino(까미노)'는 길, 그래서 Caminito(까미니또)는 작은 길, 골목길이라는 뜻이 되겠다. 까미니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상징적인 거리 중 하나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꼭 빼놓지 않는 명소다. 약 150미터의, 별로 길지 않은 거리를 따라서 저마다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 건물들이 가득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까미니또의 구불구불한 모양은 20세기 초에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까미니또도 한때는 버려진 골목이었다고. 하지만 지역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화가 베니또 마르틴(Benito Quinquela Martin)이 1950년대에 까미니또를 보행자 산책로와 거리 박물관으로 바꾸기 시작했고,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도 조금씩 추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1959년에는 유명한 탱고음악 뮤지션들이 작곡한 유명한 탱고곡 "Caminito"의 이름을 따서 이 장소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이 다채로운 색깔의 거리는 "Caminito(까미니또)"라는 이름을 얻었단 얘기.

 날씨 때문인지, 시간대를 잘못 맞춰온 건지, 내가 기대한 것만큼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캐리커처를 팔고 있는 상인, 얼굴을 뚫어놓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탱고 댄서들의 사진이 보인다.


 까미니또는 이 거리의 이름일 뿐, 이 지역의 이름은 아니다. 팔레르모 지구, 레콜레타 지구가 있는 것처럼 이 곳의 이름은 라 보까(La Boca: 스페인어로 입 또는 입구라는 뜻)이다. 라 보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작이자, 탱고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1536년에 처음으로 정복자가 이 곳에 도착하고, 원래는 늪지대였던 이곳에 요새를 세우고 나무를 심고 목장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1580년, 두 번째로 이 곳에 도착한 사람이 도시를 세우면서 항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 내가 버스를 잘못 탔을 때 그렇게나 많은 선박과 바다와 교량을 본 거였구나.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이 곳에 선박이 활발하게 드나들게 되면서, 항구 주변에 동네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에 따라 수많은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 이 곳에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민자들은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서 죽마 위에 나무판자와 양철판으로 집을 지었고, 가난한 이민자들은 페인트를 살 여유가 되지 않아서 조선소에서 배를 칠하던 페인트를 가져다가 벽을 채색했다고 한다. 한 건물을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하지 않고, 여러 색깔의 페인트를 함께 쓴 이유일 것이다. 덕분에 까미니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됐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보헤미안, 화가, 조각가, 음악가, 그리고 가수들도 속속 도착했다. 그리하여 생명력과 예술로 가득 찬 모습의 까미니또가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다시피 탱고는 가난한 이민자들의 춤이었다.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처음에는 '남자들끼리' 추었던 것이 탱고의 시작이다.

아마도 까미니또 하면 가장 유명한, 상징적인 건물이 아닐까 싶다. 관광객들에게 웰컴! 하고 외치듯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며 내려다보고 있는 이 조각상은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체스코 교황. 


 1층에는 Havanna가 있는데, havanna는 아르헨티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알파호르(Alfajor: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달달한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닮았다) 가게다. 나도 이 곳에서 몇 번 알파호르를 사먹었는데, 사실 일반적인 편의점에서 파는 슈퍼마켓표 알파호르하고 큰 맛의 차이는 없다.


 그리고 이 곳 앞에 남녀 한 쌍의 탱고 댄서가 서 있다. 이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탱고 댄스를 보여주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참 아쉽게도 이들은 사진을 위한 포즈만을 취하면서 관광객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구하고 있었다. 아무튼 탱고 댄서 언니 오빠들은 다들 미남미녀다.

 노천 카페가 많지만 애매한 오후 시간대라 아무도 없다.

너무나 쓸쓸하고 황량하다. 나는 왜 하필 이 날 이 시간에 이 곳을 온 것인가. 관광객들로 바글바글거리는 까미니또를 기대했건만. 

길거리에 늘어선 상점들은 거의 기념품 가게.

여기 발코니에 서 있는 마네킹들은 전부 아르헨티나의 유명인사 같은데, 이들이 전부 누구인지 일일이 다 알지를 못하니까 답답하다. 

이 사람은 알겠다! 체 게바라.

아 참, 라 보까 하면 그 유명한 축구 구단 라 보까 주니어스의 연고지이다. 까미니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라 보까 주니어스의 홈 구장이 있다. 라 보까 주니어스의 이름을 새긴 여러 형태의 축구 유니폼을 팔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나도 사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너무 가난했다. 저 하늘색-흰색 유니폼, 꼭 갖고 싶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바로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와 마라도나다. 

 기념품 가게 주인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무릅쓰고, "내가 바로 관광객이오-"하고 온 몸으로 외치는 듯한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둘 중 하나와 사진을 찍는다면 누구를 택할 것인가, 메시인가 마라도나인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메시를 택했다. 아무래도 나는 마라도나와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신세대인가 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비정상회담>에서 한 출연자가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를 축구의 신으로 추앙하는 종교까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래도 '축알못'인 내게 익숙한 사람은 메시니까. 

밖에 나와서 또 만난 마라도나와 프란체스코 교황님. 

 참, 또 한 가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이 곳 라 보까의 대표적인 또 하나의 특징은, 수도원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꼰벤띠요(conventillo: 작은 수도원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주택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쪽방'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여러 국적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살 방을 빌려주는 현상이 있었는데, 수도사들이 사는 삭막하리만큼 검소하고 작은 방에 온 가족이 사는 꼰벤띠요 식의 주거 형태가 라 보까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까미니또에서 매일 볼 수 있는 길거리 예술품 시장. 이 분들이 전부 직접 그린 걸까?

이번 발코니에서도 또 아는 사람의 인형을 발견했다. 왼쪽은 마라도나, 가운데는 에바 페론, 그리고 맨 오른쪽은 누구지?

여전히 열심히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있는 탱고 댄서들. 사진을 보면 왼편에 옷걸이가 있다. 아마도 관광객들이 착용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빌려주는 소품들이겠지? 꽤 쌀쌀한 날씨인데 저 망사스타킹이 너무 추워 보인다. 

 단체로 놀러온 듯한 어린아이들이 보인다. 

 라 보까 주니어스 홈 구장에도 가 보고 싶었지만, 이곳 치안이 그렇게나 흉흉하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택시를 타고 바로 이 곳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후회되는 결정인데.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아끼려고 오벨리스꼬에서 내린 후,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서 한국 대사관에서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나온 내 새로운 전자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여권을 잃어버린다는 게, 이처럼 여러 나라를 다니는 긴 여행중일 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번거로워지는 일이구나 하고 깨달은 하루. 


 어쩐지 기운이 빠져서 돌아온 산뗄모.

 어제 보았던 산텔모 시장 말고도 또 볼 것이 없을까 해서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다가 까사 미니마(Casa Minima)라는 게 있다는 걸 읽었다. 노예들의 집으로 쓰이던 곳이자,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가로 폭이 좁은 건물이라나. 

 가장 폭이 좁은 건물 답게, 정말 한참을 찾았다. 같은 골목을 수차례 왔다갔다 하면서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하고 어리둥절해서는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건물들 사이에 뭔가 끼어있는 건물이 보이진 않는지 찾다가 드디어 발견.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람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우리 마팔다(Mafalda: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카툰 캐릭터)나 보러 가야지. 

 첫날에는 셀카봉이 없어서 마팔다와 초근접 대두샷을 찍어야 했지만, 이제는 셀카봉이 있으니 천하무적이다. 걱정마 마팔다! 셀카봉이 있으니 이렇게 아래에서 찍으면 너의 3등신마저 황금비율로 만들어 줄 수 있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밤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이제 어느덧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내 동네인 양 낯이 익은 장소들도 많이 생기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를 걷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는데. 가 보고 싶은 곳들은 이미 다 가보았다고 생각할 즈음 진짜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는 날이 됐다.


 내일 저녁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날 예정이다. 버스가 떠나는 그 시간까지, 내일 하루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마음껏 즐겨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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