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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Dec 29. 2021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

세 번째는 정말.....



스무 번째 이야기








매주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

공연 리뷰를 쓴 것이 8년이 되어 가고 

그전부터 공연을 본 것까지 보태면 

십 년은 훌쩍 넘지 싶다.


공연은 보통 혼자 가기 때문에 공연장에 연인끼리, 혹은 친구끼리 앉은 

관람객석에서 혼자 덩그러니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같은 공연장을 수도 없이 가도 매번 앉는 자리도 다르니

공연장에서 아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없다.


그날도 공연장 객석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키가 아주 큰 한 남자가 내가 앉은 객석 쪽으로 들어섰다. 

들고 나는 길이 양 옆으로만 나있는 공연장이라 같은 줄 앞 좌석을 들어가는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 옆자리에 앉는 거였다.

사실 객석 옆자리에 앉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확인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번엔 달랐다.

뭔가 느낌이 큰 키에 훤칠한 외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공유 같았다랄까?

좌석이 여유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연장이다 보니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상대방 얼굴이 코앞인 의자 사이 거리라 차마 얼굴을 돌릴 수 없었다.

그래도 너무 궁금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이 2층 객석을 돌아보며 옆 자리 남자 얼굴을 보면 될 것 같았다.

정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나는 1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2층 객석을 돌아보는 척을 하며 옆자리 남자의 옆모습을 봤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하필이면 객석 그 줄에 유일하게 나란히 붙어 앉은 우리는 그렇게 공연을 함께(?) 보게 되었다.

'이 남자는 왜 혼자 왔을까?'

'외모를 보면 배우거나 극단 관계자 아닐까?'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공연을 보고 있자니

이 남자, 아주 편하게 잠을 자기 시작한다.

용하게 중요한 순간에는 깨어서 박수도 치고 웃기도 한다.


'왜 혼자 공연을 보러 와서 자는 걸까?'

'자면서도 참 용케 깨어나 손뼉 치고 그러네? 신기한 사람이야.'

그 남자는 훤칠한 키와 공유 닮은 모습으로 그날 공연 내내 잘 잤다.


그 남자를 다시 만난 것은 수개월이 지나 같은 공연장을 찾은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또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게 되었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해도 두 번은 우연이 아니지 않을까?'

'한번 말을 걸어볼까? 혹시 배우 아니냐고?'

머릿속을 맴도는 말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우리는 다시 나란히 앉아 공연을 함께(?) 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만남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내가 졸았기 때문이다.

전날 밤을 새우고 공연을 보러 간 탓에 너무 피곤했고 

간신히 내용이 기억이 날만큼만 나는 깨어 있었다.


우리의 예고되지 않은 만남은 그렇게 기억조차 없이 끝났다.

만약 다시 그 공연장에서 그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꼭 말을 걸어 볼 참이다.

"혹시 이렇게 같이 공연 본 것이 세 번째인 것을 아세요?"


이상한 상상은 할 필요가 없다.

그 남자는 내 큰 딸아이만큼 젊은 청년이었고 

같은 공연장 옆자리에서 세 번씩이나 같이 공연을 보게 된다면 

통성명하고 서로 공연 마니아로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그런 인연들이 분명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이 수년 전 같은 공간에서 마주쳤을 가능성도 있고,

내가 지금 만나는 친구가 십 수년 전 같은 학교에 다니며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너무 다행스럽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공연장에서 그 공유 닮은 남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 인연은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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