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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Dec 31. 2021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스물두 번째 이야기









일기를 쓸 때 들어갈 필요가 없는 단어가 있다.

'나'와 '오늘'이다.

일기는 자신이 쓰는 글이고 오늘 쓰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 글에도 이것은 적용된다. 

내가 쓰는 글에 굳이 '나는' '내가'를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가 전달되도록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글쓰기 경지가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인지

유독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커서인지

불쑥불쑥 '나는'이란 단어가 고개를 내밀곤 한다.

글을 쓸 때 온 신경을 집중하고도 

결국 '나는'을 쓰고 말지만,


정작 '나는' 무척 내성적인 사람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콤플렉스도 많다.

남에게 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나를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태산 같은 콤플렉스 속에는 

남에게 내세울 것이 없다는 잡다한 열등감과,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보호할 허세와,

아무것도 아닌 자의 교만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OOO

-그 이름 아름답구나!

이 노래는 어린 시절 놀이에서 불렀던 것이다.

여러 명이 어깨 걸고 술래 앞으로 걸어오면 술래가 묻고 나머지가 대답을 한다. 

노래가 끝나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술래에게 이기면 놀이가 이어지고 지면 진 사람이 다시 술래가 되는 놀이로 기억한다.

커서는 이름이 무엇인가도 아니고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데 이름을 답하는 이상한 놀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엄마? 아내? 작가? 기자? 선생님? 주부?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수많은, 수없는 질문에 이름 앞에 붙일 그럴싸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한조각도 쓸모없는 콤플렉스 덩어리를 이고 지고 긴 시간을 보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이숙정.

-그 이름 아름답구나!


나는 무척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낯을 많이 가리고 콤플렉스도 많습니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많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습니다.

빛나는 타인을 향해 손뼉 칠 줄 알고

모르는 것이 많아 배워야 하는 것도 많은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2021년 마지막, 2022년 시작하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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