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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Feb 21. 2022

연극 <(겨)털>; 사회관습을 향해 던진 작은 돌멩이

왜 우리는 털을 보는 것이 불편할까?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



요즘은 딸과 <두산 아트랩 공연 2022>의 선정 작품들을 함께 보고 있다. 

<두산 아트랩 공연>은 두산아트센터가 만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실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선정된 작품을 무료로 오픈을 한다. 올해는 둘째 아이와 같이 티켓을 예매해서 같이 보고 있다. 티켓값이 무료이면서도 우수하고 좋은 작품들이다 보니 티켓 예매가 쉽지 않다. 


이번 공연은 세 번째 작품 <(겨)털>이다. 

연극을 십 년도 넘게 봤고 여러 가지 제목을 두루두루 경험했지만 이번 제목처럼 강렬하기는 처음이다. 

겨털, 즉 겨드랑이 털이다. 이게 연극 제목으로 가능한지도 처음 알았지만 제목만으로도 우리 둘은 "아....."를 외쳤다. 

"이번 연극 재미있겠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장은 무척 쾌적하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가변 무대라서 매 공연마다 다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번 공연은 무대와 객석이 나눠져 있는 전형적인 무대다. 하지만 무대 양 옆으로 배우들이 대사 낭독을 하기 위해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가운데로 T자 모양의 무대가 있다. 정 중앙에는 옷장이면서 공간을 바꿔주는 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옷장이 되기도 하고 사무실 문이 되기고 하고 나나의 집 현관이 되기도 한다. 


나는 공교롭게도 T자 무대의 정 가운데에 앉았다. 공연을 뒷 좌석에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대 정 가운데, 배우가 걸어 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이런 앞자리는 처음이다. 물론 배우는 나를 보지 않는다. 배우들은 관객석 어딘가 점을 찍고 그 방향을 응시하며 연기를 한다(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래 공연을 보다 보니 배우들의 시선처리가 그러지 않을까 짐작한다). 이런 자리의 좋은 점은 절대 졸거나 딴짓을 할 수 없다. 수학 시간에 교탁 바로 앞 세 번째 줄에 앉은 기분이랄까. 또 배우들의 연기를 코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격한 공감과 감정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 등장한 나나는 옷장 안에서 민소매를 꺼내 들고 한참 고민을 하다 다시 옷을 집어넣는다. 무대는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을 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해리는 제모용품 광고판에 매끈한 모델의 겨드랑이 사이에 열심히 털을 그리고 있는 나나를 발견한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묻는 해리에게 나나는 극구 부인을 하며 황급히 사무실로 향한다.


나나는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고 있다. 나나는 겨드랑이 털 제모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나는 왜 더운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는지 궁금해하는 사무실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나나의 고민을 알고 이해해주는 것은 베프인 미아뿐이다. 미아는 의기소침해 있는 나나에게 소개팅을 제안한다. 나나는 등 떠밀려 나간 소개팅에서 뜻밖에 해리를 만나게 된다. 서먹서먹함도 잠시, 나나와 해리는 죽이 잘 맞는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나나의 겨드랑이 털이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가. 

나나의 친구 미아는 남중과 사랑을 속삭이려던 찰나, 미아 배꼽에 외로이 자라난 털을 보고 놀란 남중과 말다툼을 하게 된다. 급기야 배꼽 털 때문에 헤어진 미아는 나나를 찾아오고, 미아는 나나가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는 것이 미개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다. 극은 이제 절정을 향해 간다. 나나는 해리가 무모증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 결심한 듯 민소매 옷을 입고 사무실로 향한다.






어떻게 되었을까? 민소매 밖으로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낸 나나의 겨드랑이 털을 본 사무실 동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무엇을 상상하건 그것이 맞다. 나나는 시원하게 사표를 제출하고 해리를 만난다. 겨드랑이 털, 코털, 가슴털 등등. 우리 몸에는 털이 난다. 털은 나에게도 있고 너에게도 있고 모두에게 있다. 아름다움의 아이콘인 모든 여배우들에게도 털이 있다. 조각 같은 외모로 여심을 뒤흔드는 드라마 속 남주(남자 주인공)에게도 털이 있다. 털은 너무 많아도 불편하지만 너무 없어도 문제가 된다. 


있는 게 당연하고 없으면 문제가 되는 이 털들은 꽁꽁 숨겨져 있거나 잘 제모가 되어 존재를 숨기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털들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그 털과 털의 주인을 외면하거나 혹은 비명을 지르거나 심하면 혐오하기도 한다. 왜 일까? 왜 우리는 털을 보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걸까? 연극 <(겨)털>의 작, 연출을 맡은 김유리는 '그 존재들이 옷장 밖으로 나와, 문제로 취급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되길 바라며, 나를 포함한 그 존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집에 있으면 나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겨드랑이 털 제모를 하지 않는다. 브래지어를 안 하고 몇 년을 생활하다 보니 외출할 때 브래지어를 하고 하루를 보내면 가슴이 답답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돼서 머리가 지끈 거리기도 한다. 여름철 민소매를 입을 일이 거의 없어서 제모도 외출할 일이 있으면 하게 된다. 반팔을 입어도 혹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거나 할 때 누군가 불쾌함을 느낄까 봐서이다. 


제모는 불편하고 아프다. 간단하게 제모용 칼로 해도 제모한 곳이 따끔거리고 잘못하면 하루 종일 원인모를 쓰라림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하면서도 늘 이 불편한 것을 왜 하나 싶다. 마치 털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제모된 모델들의 겨드랑이를 볼 때면 제모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든다. 줏대 없는 생각의 방향은 늘 이리저리 팔랑거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브래지어를 하건 안하건, 털을 제모 하건 안하건,

다 개인의 취향인데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닐까?

라고 말이다. 


이 연극이 사회 관습을 향해 던진 작은 돌멩이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꼭 정식 공연으로 다시 관객을 만나기를 바라며.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공연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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