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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Oct 22. 2022

뮤지컬 <빨래>에는 있고 <어차피, 혼자>에는 없는 것

추민주 연출 창작 뮤지컬 두 편에 대해

 

      



사람에게는 인생을 전환시키거나 삶을 바꾼 영화나 책 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을 요즘 말로 인생작이라 표현한다. 창작자에게 인생작은 자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을 뜻한다. 소비자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작품을 인생작이라 표현한다. 인생에 길이 남을 작품을 단 세 글자로 표현해 준다는 면에서 이 신조어 만한 표현은 없지 싶다.     


창작자가 아닌 관객인 내게도 인생작이 있다. 그것은 추민주 연출의 창작 뮤지컬 <빨래>이다. 대학로 뮤지컬을 처음 보게 된 것이 2011년이었고 그 해는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는 뮤지컬 <빨래>가 9차 프로덕션 공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작품은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많은 마니아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뮤지컬 <빨래>는 처음 본 순간부터 인생작이 됐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본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돌던 작품답게 나 역시 회전문을 탄 작품이기도 했다.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공연을 봤고 나중에는 지인들을 하나둘 이끌고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 당시 나와 약속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무조건 이 공연을 같이 봤을 정도였다. 그러니 이 글은 매우 주관적이면서 한편으론 좀 냉정한 글이 될 수도 있다.   


 

추민주 작품의 힘     

추민주 연출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잡는 힘이 있다. 그 힘의 원천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추민주 연출의 작품 속 주인공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뮤지컬 <빨래>에 주인공 솔롱고는 외국인 노동자였고, 나영이는 강원도에서 꿈을 안고 상경한 27살 여성이었다. 뮤지컬 <어차피 혼자>에서는 고독사한 엄마를 가진 20대 구청 복지과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면서 평범하고 힘이 없는 ‘을’들이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 역시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둘째 우리가 받고 싶은 모든 위로의 형태를 대신한다. <빨래>에는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거나 성공하거나 하는 결말은 없다. <빨래> 속 등장인물들은 변함없는 삶을 살아간다. 희정 엄마는 여전히 단칸방으로 이사 가며, 주인할매는 평생 돌봐야 할 반신불수 딸이 있다. 나영과 솔롱고는 서로 사랑해서 함께 살지만 여전히 달동네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내 편이 되어 준다.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살았는지 물어봐 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며 함께 한다. 그 연대의 힘은 거대한 담론을 들이대지 않고도 관객을 몰입시킨다.     


셋째 공간과 음악의 힘이다. 뮤지컬 <빨래>는 달동네가 배경이다. 지금은 서울 시내에 달동네라고 할 곳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개발이 되어 요즘 세대들에게 ‘달동네’는 낯선 배경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현재 26차 프로덕션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많은 부분 각색되어 배경이나 소재들의 변화를 이어오고 있다. 달동네가 도시에서 가장 낡은 동네를 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도시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란 것에는 변함이 없다. 세탁기보다 손빨래가 더 익숙한 주인할매가 빨래를 하며 부르는 노래, 좁은 동네 길을 다니는 마을버스에 지친 몸을 싣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의 노래, 반지하 옥상에서 나영과 솔롱고가 서로를 향해 부르는 노래 등. 작품 속 넘버들은 이런 공간과 만나 <빨래>라는 이야기를 완성한다.     




뮤지컬 <빨래> 2016년, 배우 홍광호 캐스팅



<빨래>에는 있고 <어차피혼자>에는 없는 것     

2022년 추민주 연출의 창작 뮤지컬 <어차피, 혼자>가 대극장 공연의 막을 올렸다. 빨래가 소극장 전용 공연이었다면 이 작품은 대극장 공연 작품이다. 뮤지컬로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고독사’를 다룬다. 배우 조정은, 윤공주 등 뮤지컬계에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캐스팅됐다. 고독사를 통해 혼자, 고립되고 분리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치유하려는 연출의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독도 정순은 엄마의 외로운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구청 복지과 우연고 사망자 담당자다. 사람들은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살피고 가족들을 찾아주려고 애쓰는 정순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을 떠나 혼자의 삶을 살아가는 서산은 정순과 무연고 사망자들의 가족을 찾아주며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요즘, 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뮤지컬 <빨래>와 <어차피, 혼자>는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반대로 다른 듯 닮은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이 뮤지컬 <어차피, 혼자>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게 한다. 전작보다 나은지 아닌지를 따지기는 어렵다. 더 커진 공연장과 더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어차피, 혼자>는 <빨래>의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다. 150분의 시간 동안 <빨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 작품에 마이너스다.    

 

두 작품의 넘버가 자꾸 겹쳐 들리는 것 역시 문제다. 추민주 연출과 민찬홍 작곡가가 <빨래>에 이어 다시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두 작품의 넘버들이 색깔이 비슷한 것은 공연 내내 아쉬운 부분이다. 고독사를 다루기에 독고 정순의 직업이 무연고 사망 담당자인 것은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구청장인 아들 서산이 낙하산 인사로 확실시되는 구청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지금의 정서상 좋게 보이지 않는다.     

고독사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고인을 찾지 않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에둘러 간 것 역시 크게 공감을 주기 힘들어 보인다. 추민주 연출 작품의 미덕은 작품의 크기에 있지 않다. 관객들은 모두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작품 속에 투영해 가며 감동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 뮤지컬 <어차피, 혼자>가 크기를 키우는 대신 추민주 작품의 미덕을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관객으로도 많이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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