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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Sep 14. 2022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묻습니다

무대 위에 꺼내 놓은 세상 이야기







때는 1989년, 89학번으로 들어간 대학은 87년 6월 항쟁 세대들과 90년 X세대 사이에 묘한 중립지대에 있었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처음 영상으로 보았고 상계동 철거민이 비정하게 쫓겨나는 현실을 처음 접했다. 수업보다 휴강이 더 많았고 MT보다 농활(농촌봉사활동)을 더 많이 가던 때였다. 나는 대학 언론사에 있다는 구실로 집회 가장 끄트머리를 배회하며 역사의 현장에 소리 없이 끼어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매캐한 최류 가스 속에서 본 세상은 부조리함 투성이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사랑했고 스칼렛 오하라를 가슴에 품었던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접한 세상에는 낭만도 사랑도 너무 멀리 있었다. 

- 그때는 젊어서 그랬지. 

- 세상이 내게 덤벼도 하나도 무서울 것이 없었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당당하게 들어간 언론사는 꿈도 펼치지 못하고 2년 만에 제 발로 걸어 나오고 말았다. 패배감에 빠져든 나는 뉴스를 멀리 했고 세상은 그렇게 내게서 멀어져 갔다. 누구보다 완벽하게 생활인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안정된 중산층의 삶에 끼어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또 일했다. 




나는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세상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젊은 시절에 느꼈던 세상의 모든 부조리함은 삶과 생존 앞에서 의미를 잃어갔다.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고 정의로운 척하며 지낸 시간들은 현실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사라져 갔다. 세상은 나와 다른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일 뿐이었다. 


이십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먹고사는 일에 열심이었던 것이 비겁하다고 할 일은 아니다. 단지 외면하고 살던 세상을 새삼스레 마주하는 일은 불편하고 낯설기만 했다. 미처 용기를 내기도 전에 맞닥뜨린 연극 <김정욱들>은 보고 싶지 않았던 세상의 맨얼굴을 확인하게 했다. 연극은 2014년 12월 13일  '쌍용자동차 해고로 인한 희생자 26명의 명예 회복과 187명의 복직'을 요구하며 김정욱과 이창근 씨가 평택 쌍용차 공장 안에 있는 굴뚝 위로 올라가며 시작된다. 


연극은 굴뚝 위로 올라간 두 사람의 이야기다. 굴뚝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 높은 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지나가는 뉴스를 통해 그런 곳에 사람이 올라갔다더라. 해고되어서 복직을 시켜달라고 그런다더라. 그런 정도에서 스쳐 지나간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그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들은 어떨까? 굴뚝 아래에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를까? 연극 속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연극은 묻는다. 왜 그들은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했을까라고.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수많은 김정욱들을 대신해 연극은 관객에게 묻고 또 묻고 있었다. 안전망의 울타리를 넓혀 더 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으면 안 되겠느냐고. 그러니 자신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달라고. 




현재는 늘 과거에 빚을 지고 나아간다



한번 용기내기가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어려울 것이 없는 법이다. 한동안 사회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연극을 마주할 용기가 안 나더니 나중에는 일부러 찾아다니기까지 했다. 연극 <푸르른 날은>은 2011년 초연 이후,  '해마다 5월이면 꼭 봐야 할 연극' 1순위였지만 2015년이 되어서야 작품을 볼 마음을 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 놓은 이 역사적 사건은 내가 보고 평하기에 너무 벅찬 주제였기 때문이다. 


푸르른 5월,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정혜와 민호는 광주 민주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가게 된다. 고문 후유증과 함께 정신이상을 겪게 된 민호는 속세를 떠나 불가에 귀의한다. 세월이 흘러 민호와 정혜는 두 사람의 딸 운하의 결혼을 앞두고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연극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 현장을 벗어나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 작품은 2015년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이제 광주 민주화 항쟁은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주제가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현재 진행형이었던 사건이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기록되고 재생되고 있는 셈이다. 


연극 <고발자들>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거대한 조직 속에 모래알만한 존재인 개인이 내부 고발자가 된다는 것은 생존을 건 일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반역자'란 주홍글씨를 문신처럼 새겨야 한다. 분명 조직의 문제나 비리를 용기 내어 세상에 알렸음에도 이들은 박수받지 못한다. 


연극 속 내부고발자들은 '양심'을 걸고 '용기'낸 대가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연극이지만 침묵하지 않기로 한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 지켜보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다. 현재는 그렇게 수없이 과거에 빚을 지고 나아간다. 



연극 <푸르른 날> 포스터


연극 <푸르른 날> 공연 사진





우리가 연극 무대를 통해 보고 싶은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는 연극 무대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보고 싶어 하고 재창조된 세상을 기대한다. 하지만 연극이 연극으로 오랜 시간 살아남은 것은 연극만이 전해줄 수 있는 세상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극이 담아내야 할 세상 이야기는 소외된 약자들 속에 있다. 소외된 약자들의 이야기가 연극 무대에 살아있는 한 우리도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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