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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Mar 01. 2022

아침에 콘서트를 한다고요?

브런치 콘서트



때는 바야흐로 우리나라에 브런치 열풍이 불 때였다 



브런치는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식사를 말한다. 우리말로 하면 '아점' 정도 되겠다.

브런치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식사 형태인데 2005년 초부터 우리나라에 브런치 카페가 곳곳에서 생기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브런치 메뉴로는 팬케이크, 샐러드, 샌드위치, 오믈렛 등 가벼운 음식부터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요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브런치는 식사가 아니므로 가볍고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 음식이 많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브런치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니까 브런치 콘서트는 이 '브런치'의 의미를 공연에 적용한 것으로,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대(주로 11시가 많다)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콘서트라고 보면 되겠다. 



2009년 서울 열린 극장 창동에서 시작된 금난새의 브런치 콘서트에 찐 팬이 된 나는 브런치 콘서트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브런치 콘서트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 보낸 그 막간의 시간에 갈 수 있었다. 물론 하교하는 아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부분 공연만 보고 헬레 벌떡 뛰어오기는 했지만. 또 10만 원을 호가하는 티켓값이 많이 부담스러운 나에게 브런치 콘서트는 1만 원(2009년 당시가 그러했고 요즘은 물가 인상분이 반영되어서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로 변경됐다)이면 폭발하는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줄 필수템이었다. 공연장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낸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매 공연을 채웠다. 오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전 11시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온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도 했다. 



국립극장 '정오의 음악회'





레이더망을 총동원해서 정보를 찾던 나는 국립극장에서 11시에 열리는 '고품격 국악 브런치 콘서트' 티켓 예매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클래식까지는 별생각 없이 도전을 했는데 국악 콘서트는 너무 생소하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국악의 소리' 프로그램이나 판소리 공연을 잠시 볼라치면 졸음이 쏟아져 버리는 사람이었으니 아무리 브런치 콘서트라고 해도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정 아니면 포기해도 누가 뭐랄 사람 없으니까. 


다행히 이 공연은  그 자체로 반전이었다.  '정오의 음악회'를 같이 보러 간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우리 악기로 오케스트라 연주가 가능한지 상상도 못 했다 등등.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 음악이라고 하지만 국악에 대해 배운 적도, 누가 설명을 해준 적도 없으니 클래식보다 더 생소하기만 것이 국악이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만 알고 있는 그 흔한 춘향가도 상황을 이해하고 내용을 알고 보면 뮤지컬만큼 재미있는데도 말이다. 


2009년부터 5, 6년 정도 나는 이 공연을 보러 다녔다. 이번에도 일곱 살 혜원이는 함께였다. 국악은 나도 낯선 장르라 아이가 재미없다고 나가자고 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우리는 공연장 가는 오르막길도 씩씩하게 손잡고 다니며 사계절을 보냈다. 




미술관이 빵집 근처에 있었다면 국립극장은 떡이 있었다. 국립극장 브런치 콘서트인 '정오의 음악회'는 공연 시작 전 예쁘게 포장된 떡과 음료를 관객에게 제공했다. 브런치 콘서트이니 정말 브런치를 준 것이다. 떡의 맛도 맛이지만 남산을 끼고 있는 국립극장 경치를 보며 떡과 음료를 마시는 기분은 먹어 본 사람만이 알 일이다. 나중에 혜원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교를 빠지기 어려워지자 받은 떡을 챙겨가야 했다. 국립극장 떡이 제일 맛있다는 혜원이의 요구 때문이었다. 떡 맛이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거고 아마 그 추억을 즐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국립극장 '정오의 음악회' 백미는 당연히 공연 자체에 있다. 떡과 음료가 훌륭한 애피타이저라고 한다면 공연은 메인 요리인데 이 메인 요리가 기가 막히다는 점이다. 국내 최고의 국악관현악단 규모에도 놀라지만 클래식부터 가요, 팝, 재즈 등 모두 우리 악기로 변주해내는 것에 입이 떡 벌어지곤 했다. 초대 해설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황병기 님이었다. 이후 배우 박정자, 방송인 진양혜 등을 거쳐 2022년 현재 방송인 이금희가 관객과 함께 한다. 브런치 공연은 해설자 역할이 무척 크다. 딱딱하고 격식 차린 자리가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와서 오전 음악회를 즐긴다는 면에서 푸근하고 편한 해설자의 해설은 공연 못지않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정오의 음악회>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내부




예술의 전당 '11시 콘서트' 고양아람누리 '아침 음악 나들이'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



브런치 콘서트는 오전 시간대 주부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중장년층으로 관객층이 넓어졌다. 클래식 공연장에 와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던 중장년 남성들도 이 브런치 콘서트를 찾기 시작했다. 요즘은 공연을 즐기는 젊은 층에게도 익숙한 공연이 되고 있다. 국가나, 시에서 운영을 하는 공연장은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서 장애인들의 관람률도 높은 편이다. 국립극장 '정오의 음악회'는 인근 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오기도 했다. 문화생활을 가까이하기 힘든 사회약자들을 위한 관람 기회도 늘어났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양질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이 무엇보다 좋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한화생명과 함께 하는 11시 콘서트' 역시 오랜 시간 꾸준한 사랑을 받는 브런치 콘서트다. 공연보다 공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공연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공연장 자체가 스케일이 있고 최고의 시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브런치 콘서트임에도 굉장히 격식 있는 콘서트를 다녀온 기분을 갖게 한다. 다른 브런치 콘서트가 실내악 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술의 전당은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참여한다. 


지역적으로 가까워서 자주 갔던 곳은 고양아람누리 마티네 콘서트인 '아침음악 나들이'였다. 클래식 공연뿐만 아니라 대중가수들의 작은 콘서트까지 좀 더 대중적인 편이다. 유명한 연주자의 팬 사인회를 열기도 하는 등 다양한 행사도 자주 하는 편이다. 성남아트센터에서도 '한국지역 난방 공사와 함께 하는 마티네 콘서트'를 한다. 성남아트센터는 나에게는 거리가 먼 편이었지만 뮤지컬 공연을 자주 보러 가서 익숙한 곳이기도 했다. 성남아트센터는 계단이 아주 많은 곳이기도 하다. 마티네 공연장을 가려면 아주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공연장이 잘 되어 있고 가 본 공연장 중에서는 음악회를 보기에 가장 편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당시 브런치가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샌드위치와 음료를 주었는데 식사를 하고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제대로 된 브런치를 주기도 했다.  


고양아람누리 브런치 콘서트





(좌)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우) 마티네 콘서트 전 나눠 준 브런치






이외에도 브런치 콘서트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꽤 많다. 사는 곳이 수도권이다 보니 공연에 대한 기록이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지역마다 있는 아트센터에서도 다양한 브런치 콘서트를 열고 있다. 아트센터가 아닌 조금 특별한 장소에서 열렸던 공연이 있다. 바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매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박물관 1층 로비에서 개최하는 '박물관 토요 음악회'다. 이 공연은 브런치 공연은 아니지만 주말 박물관 로비에서 클래식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기회다. 시간은 오후 2시 ~ 3시, 클래식 공연을 주로 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박물관 로비에서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경험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이 외에도 다양한 음악회와 베어프리 영화관에서 영화를 매달 한번 무료로 상영한다. 공연이 끝나면 박물관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박물관 로비 커피숍에서 할인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대부분 브런치 콘서트는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패키지 예매를 하면 가격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패키지 예매를 하지 못했다 해도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지역민들에게 더 많은 할인 혜택을 주는 곳도 있다. 초창기 브런치 콘서트는 대부분 티켓 가격이 1만 원에서 2만 원을 넘지 않았고 할인을 받으면 훨씬 저렴해서 이 가격에 이런 엄청난 공연을 혼자 즐기기 아까워서 가족, 지인을 매 공연마다 끌고 다니기도 했다. 엄마와 이모들을 위해 매달 예매를 해서 공연을 보여드리기도 했는데 이런 귀한 공연을 보게 해 줘서 고맙다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다. 친구의 친구까지 섭외해서 브런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했을 정도다. 






개인적인 소원을 적는다면 '슬리퍼 신고 갈 수 있는 곳에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지역에 아트센터가 있고 미술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경우가 아니면 수도권에서 서울로 나가 공연을 본다거나 미술관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소망이 요즘은 현실에 가까워져서 경기도는 시마다 아트센터가 있는 곳이 많다. 다행히 공연도 다양하고 우수해서 잘 알고 찾아갈 수만 있다면 누구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다.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을 만큼 근거리에 누구나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문화 예술이 밥을 먹여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천막 공연장을 찾고 영화를 보러 갔다. 음악회가 열리기도 하고 연극 무대가 불을 밝히기도 했다.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 밥을 먹여 주지는 않지만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기는 한다. 또 그것이 문화 예술의 역할이고 책임이기도 할 테니까. 




<브런치 콘서트>



국립 정동극장 < 2022 정동 팔레트>



국립극장 <정오의 음악회>


예술의 전당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11시 콘서트>


고양아람누리 <2022 아침음악 나들이>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


서울역사박물관 <토요음악회>




<전국 공연장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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