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정 Feb 26. 2022

빵가게 옆 미술관

그곳에 가면 있는 것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앞치마,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미술실에서 이젤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자.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술에 대해 갖는 환상이다.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다.

미술에 ㅁ자도 모르는 내가 영화나 만화 속에서 본 '그림 그리는 여자'는 그랬다.

이 설명할 길 없는 환상은 아이들 교육에도 그대로 투영된 듯하다.


큰 아이가 지역화가셨던 유치원 원장님에게 '그림에 재능이 남다르다'는 말을 듣자 그 길로

이젤과 화구 박스를 사러 갔다. 일곱 살 아이가 그 물건을 쓸데가 어디 있다고 말이다.

물론 아이는 미술공부를 하는 내내 한 번도 이 이젤을 쓰지 않았다.

이 이젤과 화구 박스는 꽤 오랜 시간 집 인테리어용으로 사용되다 이사 과정에서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잠재된 나의 환상은 큰 아이가 혼자서 스케치하는 모습을 보자 다시 나타났다.

아이 손을 잡고 입시미술학원에 등록을 해버렸고 내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 못한 채 미대까지 직진을 하고 말았다.


미술은 엄청나게 매력 있는 분야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지는 않았다. 미술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될 만큼 미술은 관심 밖 영역이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한가하거나, 미술작품을 볼 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또한 잘못된 정보를 많이 습득한 탓이다.





다행히 출근을 하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아이가 유치원, 학교를 가고 난 오전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이 싫었다. 큰 아이가 미술공부를 하니까 엄마인 내가 미술작품 보는 눈은 있어야겠다는 역시 근거 없는 이유로 미술관을 가기 시작했다.


미술전시를 선택하는 눈이 없다 보니 유명한 화가의 전시를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험난한 미술관 탐방에 합류한 것은 역시 일곱 살 혜원이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까지 미술시험을 위해 외운 것이 전부였고 고흐와 고갱을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아이 손을 잡고 미술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아이가 스스럼없이 미술관 정도 갈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큰 아이는 자신이 디자인일을 하니 미술관 가는 것은 일상이고,

둘째 혜원이는 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과 미술관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쨌거나 일곱 살 혜원이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내 미술관 메이트였다.




일주일에 대여섯 번 미술관을 가다 보니 비용 문제가 생겼다. 여러 할인 혜택을 찾아 예매를 하지만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미술작품을 맘껏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래서 찾아낸 보석 같은 이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나라와 시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었다. 다행히 나라와 각 지자체에서 문화, 예술을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이 미술관들은 대부분 무료이거나 관람료가 저렴하다. 나라와 지자체에서 운영을 하다 보니 시설이 쾌적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대형 미술전에 비하면 작품 수는 적지만 아이들과 힘들지 않게 전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낫다.






이중 '서울시립미술관'은 내겐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의 전시는 90%가 무료 전시이고 매 시즌 다양하고 의미 있는 전시들을 많이 한다. 혜원이는 지금도 나와 공연을 보러 가는 날이면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일곱 살 혜원이는 이 미술관에 오면 미술관 근처 빵가게에서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빵으로 아이를 꼬신 셈이다. 미술관은 아이들에게 썩 재미있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미술관 관람 비용이 안 드니 근처 빵가게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함께 먹는 코스였다.




년 전 고양아람누리 복합문화예술센터에서 '도슨트 양성과정'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도슨트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이다. 미술관 도슨트는 예순 살이 되었을 때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일이기도 한데 그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친숙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됐다. 몇 가지는 내가 혜원이에게 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전문가가 아니니 전문적인 견해는 아니겠지만 살아있는 현장 경험 정도는 되지 싶다.




미술관과 친해지는 방법


첫 번째, 유명 전시회는 사람이 많은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어른들 허리 정도 키의 아이들은 주말처럼 사람들이 많은 시간 미술관을 오면 대부분 어른들의 엉덩이만 보게 된다. 그게 싫어서 아이를 안고 전시장을 돌기도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림 한 장 볼 가 없었고 온 몸이 쑤셔서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했다. 유모차 같은 덩치가 큰 물건은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돈을 내고 들어간 전시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출구로 나온 기억들이 꽤 있어서 꼭 아이와 보고 싶은 전시라면 미술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갔다.


두 번째, 아이가 보고 있을 때는 굳이 설명하거나 지식을 주입하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은 내가 혜원이에게 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는 미술에 대한 지식이 짧고 내가 보는 것만도 벅찬 일이어서 아이에게 설명을 해 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도슨트 과정을 공부하면서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그림 하나하나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이야기와 함께 보여준 유럽의 한 미술관 사진에서는 아이들이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아래에 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한 장의 그림이라도 오랜 시간 지켜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관람 자세는 어른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한다.


세 번째, 미술관 관람 예절을 가르치는 것이다.

미술관은 여러 사람이 이용을 하는 곳이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사람들은 조용하게 작품을 보기를 원한다. 아이들이 귀엽게 그림을 보는 모습은 미술관에서 보는 또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게 중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마음대로 사람 사이를 다니는 것을 수수방관하는 부모들을 볼 때가 있다. 예절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예절은 장소마다 지켜야 할 최소한의 행동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다. 아이에게 '이곳은 크게 소리 내는 곳이 아니야'라며 귓속말로 전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그 아이를 한번 더 보게 된다. 관람 예절을 지키는 것은 아이에게도 그 장소를 즐길 수 있는 힘을 준다. 아이들은 무조건 뛰어놀면 즐기는 거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미술전시를 무료로 365일 볼 수 있는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https://sema.seoul.go.kr/

국립현대미술관

https://www.mmca.go.kr/

문화역서울 284

https://www.seoul284.org/

부산시립미술관

https://art.busan.go.kr/

광주시립미술관

https://artmuse.gwangju.go.kr/

수원시립미술관

https://suma.suwon.go.kr/

대전시립미술관

https://www.daejeon.go.kr/dma

청주시립미술관

http://cmoa.cheongju.go.kr/



<다양한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곳>


서울역사박물관

https://museum.seoul.go.kr/

서울공예박물관

https://craftmuseum.seoul.go.kr/

국립민속박물관

https://www.nfm.go.kr/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

경기도미술관

https://gmoma.ggcf.kr/

제주도립미술관

http://jmoa.jeju.go.kr/


이 외에도 전남, 전북, 경남, 전주, 창원, 광양 등에 도립 미술관이 있다. 이곳 역시 무료이고 다양한 전시를 볼 수 있다.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 #국립현대미술관 #주말데이트 #교육

매거진의 이전글 온라인으로 공연 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