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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Mar 11. 2022

청소년 연극을 아시나요?

연극의 쓰임새에 대해






유아용, 성인용, 학생용. 이것은 의자에 많이 사용되는 용어다. 

의자는 신체의 발달단계에 맞춰서 사용해야 올바른 성장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유아용 의자에 앉으면 의자가 파손되거나 앉기조차 힘들 수 있다. 학생용 의자에 앉는다고 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유아가 성인용 의자를 사용하면 의자가 제 역할을 못 할뿐더러 잘못하면 아이가 미끄러지거나 놀다가 떨어질 수도 있다. 청소년이 성인용 의자에 앉으면 크게 불편할 것은 없지만 크기만 크고 사용감은 떨어진다. 제 역할을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공연은 어떨까?

어린이 공연을 어른이 본다면? 어린이 공연을 어른이 함께 보는 일은 흔하다. 초등학생까지 보호자가 함께 공연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가서 공연을 보는 엄마들에게 어린이 공연은 크게 재밌고나 하지 않다. 아이가 보니 같이 있는 것이지 성인이 어린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겠다고 돈을 들여 예매를 할 일은 없다. 


반대로 성인 공연을 어린이가 본다해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어린이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와 성인 대상 공연에서 표현하는 세상은 차이가 있다. 사용하는 언어나 일어나는 사건들이 크게 공감을 할 수 없거나 어려워서 지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용도가 정해져 있는 것은 각각의 용도에 맞춰 사용할 때 효과가 배가 된다. 

용도에 꼭 맞추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용도는 생각 없이 나누는 것이 아니니 그 쓰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일단 공연은 정확하게 어린이용, 청소년용, 성인용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물론 어린이 연극, 어린이 뮤지컬처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 있다. 가족 뮤지컬 같은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 연극, 성인용 뮤지컬이란 명칭은 없지만 대부분 공연에는 관람 연령 제한이 있어서 만 19세 이상으로 구분된다. 이렇게 구분되는 것이 성인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린이 연극은 있는데 청소년 연극은 왜 없는 걸까?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7세 이상 또는 초등학생 이상이면 대부분 공연 관람이 가능하다. 일곱 살 둘째 아이를 데리고 그 많은 공연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연령제한이 낮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엄마와 공연 관람하는 것을 예전처럼 즐기지 않았다. 당연히 같이 공연 보는 횟수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2에 들어서서는 아예 "엄마 혼자 가. 나 바빠."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된 아이 역시 또래 집단과 핸드폰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흐름을, 인간 성장의 수순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폭은 넓혀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핸드폰 속 세상도 있고, 게임 속 세상도 있고 책 속 세상도 있으며 무대 위 세상도 있고 제5, 제6의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아이를 친구와 같이 보러 가게 할 만한 연극이 있을까? 청소년이 볼 만한 공연들이 있을까? 



 <청소년 연극>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대학로에서는 극단 학전이 유일하게 어린이, 청소년 연극을 꾸준하게 무대에 올리고 있었다. 연극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슈퍼맨처럼> 같은 작품들이 대표 작품들이다. 정확하게 이 작품들은 청소년 연극이라 하기는 어렵다. 초등학생 정도 아이들이 보기에 좋아서 연극 <고추장 떡볶이>는 이미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있는 대표적인 어린이 연극이기도 했다. 연극 <복서와 소년> 같은 작품은 청소년 연극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이 공연들은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보러 가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했다. 그즈음 국립극단이 <청소년극>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립극단은 2011년 <소년이 그랬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3편에서 4편 정도의 청소년극을 선보이고 있었다. 세상에! 청소년극이라니. 이 청소년극은 단순히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올리는 작품이 아니라 청소년들과 작품마다 워크숍을 진행하고 리서치, 비평활동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을 주제로 한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서 아쉬움이 컸다. 청소년이 나온다고 해서 그게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청소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자살, 왕따, 폭력에 집중되어 있고 청소년들의 언어를 어설프게 섞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학생들이 자살과 왕따와 폭력 속에 있지 않고, 청소년들의 언어가 들어 있다고 해서 청소년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이 봐고 어색하고 어른들이 보면 걱정거리만 한아름 안게 되는 어정쩡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때문에 국립극단의 <청소년극>은 청소년들이 만드는 진짜 <청소년극>의 탄생을 의미했다.


아직까지 <청소년극>을 공연장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공연계는 늘 생존의 문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돈도 안 되는 청소년극을 많이 만들 수 없다. 또 청소년들이 한가하게 공연장을 찾아 연극을 보고, 뮤지컬을 보고 할 시간이 없다. 그런 시스템이 없고 그런 교육 여건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교육관계자나 학부모들의 인식도 낮다. 수요와 공급이 안맞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아예 형성이 안된다는 것이 문제다. 




국립극단 홈페이지 화면 캡쳐







이쯤 되면 '공부하기도 바쁜 청소년에게 공연을 보러 가게 하는 것이 적절한가'의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설마 아이들이 1년 365일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거다. 어른들도 주 5일 근무를 하고 주 4일제를 해야 한다는 논제가 뜨거운 세상에 아이들이 주말까지 학원가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은 폭력이다. 한 달에 한번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러 가게 하는 것이 정말 불필요한 낭비인지 되묻게 된다.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 연극체험이나 연극 관람이 확대되면 좋겠다. 예를 든다면 뮤지컬 <아몬드>와 소설 <아몬드>를 함께 경험하고 토론하는 활동이 수업이 되면 좋겠다. 한 학기에 청소년극 한 편 정도 보고 오는 것이 숙제가 되면 좋겠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존재하는 직업 절반이 새로운 직업으로 대체되는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이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저서 <프로페셔널 스튜던트>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 판단력, 창의력, 인성과 품성, 인문과 교양'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가 아니고 지금 현재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연문화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 서로 행복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극>이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할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한 달에 한번은 연극을 보고, 전시를 보고, 문화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할 이유이다. 




<2022 국립극단 청소년극>



<푸른 티켓>



<극단 학전 2022 어린이 연극 -  슈퍼맨처럼>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랩 공연 2022>


청소년 연극 <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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