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가 보여준 삶의 용기들
연극은 대학생 때 대학로에서 본 연극 한 편이 고작이었다. 연극 제목은 기억조차 없지만 배우는 최화정이었다. 붉은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선 그 여배우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연극이었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것들은 말 그대로 여가 시간을 즐기는 도구인데 당시 내겐 여가란 것이 없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고 갔던 가난한 대학생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연극이란 것을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신문의 작은 기사 때문이었다. 스치듯 읽은 그 기사는 <지하철 1호선> 공연이 막을 내린 학전 소극장에서, 뮤지컬 <빨래>가 공연된다는 내용이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지하철 1호선>공연은 못 봤으니 저거라도 보러 가야겠다고 나선 것이 '시작'이 되었다. 정작 뮤지컬 <빨래>의 내용은 보지도 않고 말이다.
2011년 5월 학전그린 소극장에서 처음 만난 '빨래'는 이미 2005년에 첫 공연을 시작해 100회를 본 마니아가 있을 정도로 대학로 장기 흥행 뮤지컬이었다. 추민주 연출의 이 작품은 신의 목소리로 불리는 뮤지컬 배우 홍광호, 영화 기생충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은 배우 이정은, 카멜레온 같은 가수이자 배우 임창정이 함께 했다. 이외에도 현재 무대와 TV를 오가는 배우 정문성, 박정표, 성두섭, 최호중 등 이루 셀 수 없는 대학로 스타들이 함께 나오는 공연이기도 했다.
뮤지컬은 대극장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십 수 명의 앙상블이 등장해야 폼이 나는 장르였다. 그런데 '빨래'는 소극장에서 주조연을 합쳐서 10명도 안 되는 스케일로 일당 백의 존재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2012년에는 2000회 기념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뮤지컬 '빨래'는 중학교 국어(대교)와 고등학교 문학 1(창비) 교과서에 대본이 등재될 만큼 작품성도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뭐니 뭐니 해도 '빨래'의 힘은 이야기에 있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나영은 서울살이 5년에 직장만 네 번을 바꾸었고 이사만 일곱 번째인 청춘이다. 달동네 월세방으로 이사를 온 나영은 우연히 몽골청년 솔롱고를 만나게 된다. 솔롱고는 몽골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동생들과 가족을 위해 한국에 불법취업을 한 외국인 노동자다. 지금도 이들이 처한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불법체류자로 남아 돈을 벌어야 했던 솔롱고는 임금체불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나영을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나영의 집주인인 할머니는 남편을 오랜 세월 투병 끝에 사별을 하고, 사지가 장애인인 마흔 넘은 딸을 꽁꽁 숨기고 살고 있다. 억척스럽고 괴팍하지만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줄 아는 이웃집 할머니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대학로에서 할머니 역으로 정평이 나있는 배우들이 이 배역을 거쳐 갔는데 그 중 영화 '기생충'으로 유명한 이정은 배우도 있다.
<빨래> 속 달동네 삶은 총천연색이다. 같은 삶이 하나도 없고 사연 없는 삶도 없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희정엄마, 세상 혼자 사는 건달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구 씨, 능청스러운 외국인 노동자 마이클 등 빨래에는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들이 많고, 힘 있는 사람보다 힘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 이야기는 사회적 이슈들을 콕콕 집어가면서도 희망이란 끈을 놓지 않는 명민함을 보여 주었다. 뮤지컬 넘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이 뮤지컬은 소극장이란 밀접한 공간 속에서 관객에게 따뜻한 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관객들은 어느 장면이라고 할 것 없이 각자가 공감하는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닦아내느라 정신없다. 젊은 여성은 나영이가 자취방에서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에서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중년 여성은 마흔 넘은 딸의 빨래를 하는 주인 할머니의 한 많은 인생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단칸방에서 보증금 키워 이사 가자는 희정엄마와 구 씨의 이야기에 다시금 훌쩍이는 관객들의 모습은 모두 우리 자신들이다.
'회전문을 타다'라는 말은 뮤지컬 <빌리 엘리엇> 공연에서 처음 유행되었다. 당시 이 공연을 여러 번 재관람하는 마니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0년 초연 당시 공연장 LG아트센터 입구 회전문이 있었고 사람들은 여러 번 공연을 보러 온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뮤지컬 <빨래>의 회전문을 타기 시작했다. 여덟 살이었던 둘째 아이부터 주변의 지인들을 끌고 다니면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빨래'로 시작된 대학로 입성은 2021년 십 년을 맞았다. 사람이 무슨 일이건 십 년은 해봐야 길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십 년은 강산도 변화시키는 어마어마한 내공을 갖게 한다. 삶의 고비마다 만나게 되는 연극 이야기가, 삶의 희비가 엇갈리는 갈림길마다 만나게 되는 뮤지컬 이야기가 모두에게 한 웅큼의 희망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