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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pr 17. 2022

취향을 저격하는 공연장

아는 만큼 보이는 공연장의 가치



'가 볼만한 나라'도 있고 '가 볼만한 도시'도 많고 '가 볼만한 맛집'은 더더욱 많다. 하지만 '가 볼만한 공연장'이라고 하면 '글쎄'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외국 여행을 하면 그 나라의 유명한 명소 중 하나로 공연장을 가게 된다.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중국의 국가대극원, 영국의 왕실 국립극장 그런 곳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국립극장이나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처럼 대표적인 공연장들이 있다. 물론 이 공연장들은 건물 자체도 아름답지만 공연장 내부 역시 우리나라 최고를 자랑한다.



사실 다양한 공연만큼이나 공연장도 다양하다. 공연장은 보통 무대와 객석 규모에 따라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으로 나뉜다. 요즘은 영화관처럼 1 공연장, 2 공연장, 3 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는 멀티플렉스 공연장도 많아지는 추세다. 대부분 1층에는 커피전문점이 있어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공연 시작 전까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공연장에 휴게시설을 갖추거나 야외 정원까지 마련되어 있는 공연장도 있다. 





어쩌다 한번 가게 되는 공연장이지만 유독 마음을 끄는 공연장이 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거나 연애 시절 찾았던 공연장이라거나,

산책 끝에 만나게 되는 공연장이라거나 하는 사연들과 만나는 그런 공연장.

그곳을 함께 한 사람들과 추억, 인화된 사진처럼 가슴에 남은 어떤 장면, 그곳에서 있었던 웃픈 시간들이 모여 우리에게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게 되는 공연장이 있다. 



대학로는 수많은 소극장들이 쉴 새 없이 작품을 올리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소극장들이 사라지고 있고 그나마 생존한 공연장은 애써 찾아가야만 하는 장소에 남아 다. 외국처럼 한 작품을 오랜 시간 무대에 올리는 경우도 우리에겐 흔한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찾아가도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젊은 시절 추억이 서린 공연장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사라진 경우도 많다. 



공연을 소비하는 관객들이 줄어들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대형 멀티플렉스 공연장의 위세에 꺾여서. 하지만 또 한편에선 민들레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동네 공연장들이 서서히 생겨나기도 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공연장 대신 추억을 만들어 마음에 남길 '나만의 공연장'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소박한 바람으로 아는 만큼 보이는 공연장의 가치를 기록해 본다. 아래 공연장은 필자의 경험으로 정리한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부부가 함께 가볼 만한 공연장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면 부부가 데이트란 것을 할 시간이 없다.

아이들이 커가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고 집안 대소사에도 참여해야 한다.

일주일에 단 이틀의 휴일이 이런 일로 채워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 부부만의 데이트는 언감생심이다.  코로나로 집 밖을 나서기 힘들었던 지난 몇 년간은 그랬다 치고 

이제부터는 다른 일을 줄여서라도 부부 데이트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부 데이트 장소라면 함께 어깨를 포개어 앉을 공연장이면 좋겠다.

거기에 의미 있는 연극 한 편이 토핑 크림처럼 내려앉으면 더 좋겠다.

공연을 보다 서로를 쳐다보게 되고, 은근슬쩍 손을 맞잡게 된다면 더 좋겠다.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 혹은 '당신 열심히 살았어' 같은 흔하지만 말해주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감동 가득한 공연을 만날 수 있는 공연장이면 더 좋겠다.



연우소극장

잔잔하고 깊이 있는 공연들을 만날 수 있는 공연장이다. 1987년 개관한 연우 소극장은 뮤지컬, 콘서트,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볼 수 있다. 극단 연우무대 자체 기획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부 공연도 볼 수 있는 소공연장이다. 소극장이 작은 객석 의자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이 많은데 연우소극장은 벤치형 의자가 비교적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어 관람 시 크게 불편하지 않다. 부부, 연인, 친구끼리 다정하게 앉아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또 공연장 옆으로 '커피랩35' 커피숍과 서점이 있다. 






학전 블루 소극장

극단 학전이 운영하는 소공연장이다. 학전 그린 소극장은 폐관을 했고 현재 학전 블루 소극장만 운영 중이다. 고 김광석이 이 공연장에서 1000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고 김광석 추모 공연이 이곳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5060 세대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슈퍼맨처럼>, <고추장 떡볶이>, <복서와 소년>, <우리는 친구다> 등 어린이 작품이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동창모임 하기 좋은 공연장


공연장을 가면 가장 부러운 것은 삼삼오오 친구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얼핏 봐도 친구 사이인 그들은 마치 십 대 청소년처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눈다.

이십 대의 젊은 세대부터 중년들, 심지어 백발의 노년들도 친구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동창들이 모여 술 한잔 나누는 즐거움도 좋지만, 함께 연극 한 편을 보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도 좋다.


문화예술은 우리 삶이고 일상이어야 한다. 출근부 체크하듯 미술관, 공연장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많은 즐거움 중 하나가 문화예술이길 바라본다. 우리의 추억 한편에 맘에 드는 공연장 하나 있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이 아닐까. 



국립 정동극장

국립 정동극장은 326석 규모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야외 마당에 연결된 카페가 있어 공연 관람객은 차 주문 시 할인을 해준다. 전통 창작 공연을 주로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길로 이어지는 길에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 제일교회가 있다. 덕수궁 뒷길은 개방되어 아름다운 야경 길을 자랑한다. 동창모임을 하기에 이만한 공연장이 없다. 친구들과 산책도 하고 미술관도 가고 주변 카페에서 차 한잔을 즐길 수도 있다. 국립 정동극장 야외극장의 운치도 좋다.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시청 인근이라 약속 장소를 잡기도 편하다.





두산아트센터

두산그룹이 1993년 개관한 연강홀을 리모델링하여 확대, 재개관한 공연장이다. 젊은 아티스트를 발굴 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강 빌딩의 지하 1~3층을 사용하며, 연강홀과 스페이스111, 두산 갤러리가 있다. 연강홀은 620석 규모의 뮤지컬 전문 중형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페이스 111은 250석 규모로 젊은 창작자들의 도전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두산 갤러리는 다양한 설치미술과 퍼포먼스 등이 열린다. 공연장 복도에는 유명한 피아노 건반이 설치되어 있다. 두산아트센터 건너편에는 유명한 광장시장과 동대문 닭 한 마리 골목이 있어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누기에도 좋다. 대학로와 거리도 가까워서 공연 이후 모임을 하기에도 좋다. 









찐친과 함께라면 가보고 싶은 공연장

찐친과 가는 곳은 어디라도 즐겁고 재미있다. 친구와 가는 곳은 별 볼 것이 없어도 괜찮다. 사실 수다를 떠느라 주변 볼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와 함께 하는 곳은 좋은 산책길과 예쁜 카페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수다 떨다가 목마르면 카페에 들러서 다시 수다 떨고, 작은 공연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고 나와서 다시 길을 따라 걸으며 수다 떨고. 이때 가는 공연장은 작고 아담한 곳이면 더 좋다. 유명한 공연이 아니어도 화려한 무대가 없어도 괜찮다. 연극 속 작은 사건 하나에도 친구라면, 찐친이라면 헤어지는 순간까지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헤어질 것이 뻔하니까.


삼일로 창고 극장

삼일로 창고극장은 2021년부터 개방형 공공극장으로 극장 문을 활짝 열었다. 정말 이런 곳에 공연장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삼일대로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공연장이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진짜 창고극장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공연장에 매력을 알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공연장에 주차를 할 수는 없다. 주변 가장 저렴한 주차장이 '우리 금융 디지털 타워'이다. 가장 좋은 것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명동역 10번 출구에서 300여 미터를 걸어 올라가면 된다. 절친과 함께 걷다 보면 금세 공연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 소극장 판

국립극단 공연장은 명동 예술극장과 서울역에 위치한 백성희장민호 극장, 소극장 판 세 공연장이 있다. 명동 예술극장도 좋지만 백성희장민호 극장이 더 정겹다. 서울역 15번 출구를 나오면 보이는 빨간 철제 지붕 공연장이 백성희장민호 극장이다. 국립극단은 이 세 군데 연극 전용극장을 보유한 국내 최대 연극 제작 단체이다. 공연장 사이에는 넓은 잔디가 조성되어 있어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외관이 유니크한 이 공연장은 내부 시설도 훌륭하다. 백성희장민호 극장은 총 182석의 객석을 자랑하며 맞은편 소극장 판은 4면이 모두 다변형 객석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공연장은 트랜스포머처럼 매 공연마다 상상을 넘어서는 변신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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