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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04. 2022

'프로 실패러'의 자기 고백

이십 년째 실패 중입니다


성공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실패라니, 웬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에도 sns에도 넘쳐나는 시대에 이 무슨 부정이고 자기 비하일까?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걸 배우면 돈을 벌 수 있단 말이지?

이 방식을 익혀서 실천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열심히 온라인 강의도 듣고, 책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20년째 말이다. 20년째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20년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20년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20년째 실패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내 경우다. 


그렇게 20년째 뭔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늦은 성공? 인생 역전?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그럼 20년째 뭔가를 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끈기? 근성? 오기? 될 거라는 희망? 한탕주의?

그것도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에 나는 이십 년 실패담을 떠올렸다. 

실패했을 때의 마음은 한마디로 죽고 싶을 만큼 참담하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자괴감으로 한 달을 굴을 파고 나오지 못한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를 몰라주는 세상이 미워진다. 울고 욕하고 화를 내다 지쳐 잠이 들기도 한다.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무엇이 부족했지?' 하며 자문하는 시간이 온다. 여기에서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자기 비하의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떨어진 바닥에서 칭얼거리고 있을 것인지, 툭툭 털고 인정할 것인지. 무엇을 선택하건 자신의 몫이다. 나는 다행히 후자를 선택하며 20년을 지냈다.



이쯤 되면 무슨 거창한 실패를 했거나 대단한 좌절을 했나 보다 싶을지 모른다. 물론 대단한 실패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살며 하게 되는 흔하고 평범한 실패들이다. 하지만 실패는 그 크기가 거대하건 손톱만큼 작건 마음에 남기는 상처는 동일하다. 



하루에 꼭 책을 읽겠다고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책장을 열어 보지도 못하고 마는 실패, 

이번 해은 꼭 하루 일정이라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연간 계획이 보기 좋게 2월부터 막을 내리고 마는 실패부터

자격증까지 다 따놓고도 단 하루도 써먹지 못하고 서랍 속에 보관하고 마는 실패, 

매번 도전하는 작가 응모전, 작가 도전에 번번이 돌아오는 실패,

그리고 남들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결혼 생활을 20년도 넘게 하고서 종지부를 찍어야 했던 실패에서 

원대한 포부와 희망으로 시작한 직장 생활을 '능력 없음'이란 지적에 스스로 인정하며 마무리해야 했던 실패까지.



그 많은 실패를 매일, 매달, 매년 그렇게 20년째 하고 있다. 

실패는 누구나 한다. 실패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뭐 그런 익숙한 위로와 용기들이 실패한 지금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진짜 실패는 '다시 시작'을 멈췄을 때다. 그래서 무식하고 바보 같지만 '프로 실패러'임을 인정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실패자가 아니라 '프로 실패러'다. 항상 '다시 시작'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꼭 무엇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기 위한 과정도 무엇이 되는 것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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