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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28. 2022

두 번째 희곡열전:이강백전, 연극 '결혼',  


결혼을 통해 소유와 사랑의 의미를 재해석한 2022년, 연극 결혼    






           

지난 주말은 두 번째 ‘희곡 열전:이강 백전’이 열리고 있는 공연장을 찾았다. 장마가 막 시작된 주말이었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의 무게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날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공연계에는 다시 다양한 연극제가 막이 오르고 있다. 희곡 열전:이강 백전은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연극제다. 희곡열전은 올해 극작가 이강백의 등단 51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인 이강백 작가(74)를 선정했다.    


 

이번 연극제에 선정된 작품은 <이강백 희곡 전집 1>(도서출판 평민사)에 수록된 다섯 편의 희곡 ‘다섯’(1971)과 ‘결혼’(1974) ‘셋’(1972), ‘알’(1972), ‘파수꾼’(1974)으로 총 8개 참가팀 경연작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1970년대에 쓰인 이강백의 초기 희곡들이다. 극작가 이강백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와 사회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작품들을 남겼다.         


 

1970년 결혼’ 대 2022년 결혼     


50년 전 이 희곡이 2022년 어떻게 해석되고 풀이될 것인가가 이 연극제를 보는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특히 이강백 극작가가 가장 성공한 희곡으로 꼽은 두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연극 ‘결혼’이다. 예술 단체 극단 '밝은 미래'는 6월 21일(화)부터 6월 26일(일)까지 이강백의 단막 '결혼'을 대학로 공간 아울 극장에서 공연했다. 이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    


 

텅 빈 무대에 ‘덤’을 불규칙하게 반복하며 등장하는 배우들로 조금씩 채워진다. 이들이 주문처럼 반복하는 ‘덤’은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을 뜻한다. 연극 ‘결혼’은 사기꾼 남자와 덤으로 태어난 여자의 사랑이 이야기이다. 또한 결혼과 사랑을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소유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남자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끝내주는 뷰의 아파트와 명품 옷과 신발, 페라리 차를 갖고 있다. 이것들에는 모두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유는 남자가 이 모든 것을 빌렸기 때문이다. 각각의 물건들은 모두 돌려줘야 할 시간이 다르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자신이 부자인 것처럼 꾸민 사기꾼인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sns에 올렸고 올리자마자 한 여자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는다. 남자의 계획은 성공한다.   


       

빌려서 완성되는 삶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는 점점 빈털터리가 되어간다. 남자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서 빌린 물건들을 하나씩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어떤 여지도 주지 않고 냉정하다. 남자는 급기야 다른 사람에게 시계를 빌리기도 하고 넥타이를 빌리기도 한다. 이 부분은 원작이 시도한 ‘관객 참여형’ 설정이다. 사기꾼 남자는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 관객에게 필요한 물건을 빌리는 것이다.     



빌리는 형태는 변한 세상을 반영한다. 실물을 빌리지 않아도 사진 한 장이면 물건을 소유할 수 있다. sns에 사진 한 장 올림으로써 그 물건이 자신 것임을 타인에게 알릴 수 있다.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볼 뿐 진짜 그 물건을 그 사람이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현대인들에게 소유는 타인이 알아줘야 그 의미가 완성되는 개념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돈만 있다면 언제든지 집도 차도 빌릴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잠시 빌린 것으로 우리 삶은 완벽하게 다른 삶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소유에 대한 시대 변화를 느끼게 해     


2022년 여름 ‘결혼’은 현실적인 2030세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결혼하기 힘든 나라다. 맘에 맞는 상대 만나기 어려운 거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결혼의 절차와 과정이 징글 징징 글하게 변화가 없다는 거다. 결혼은 시작부터 돈이다. 그런데 충분한 돈이 없으면 빌려야 한다. 은행이 소유한 집에 내가 얹혀사는 꼴인데 물론 그마저도 능력이 돼야 은행에게 돈을 빌릴 수 있다.  


   

무대 위에 등장한 ‘덤’들은 이제 결혼식장도 빌리고 드레스도 빌리고 돈도 빌리고 사람도 빌린다. 대사처럼 태초 인간은 하늘의 태양도 빌리고 사는 처지이니 말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사실은 모두 누군가에게서 잠시 '덤'으로 빌린 것이며, 따라서 인생에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사랑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소유하기에는 너무 벅찬 그것들을 평생이란 시간을 바쳐 빌려 쓰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먼저 다가온다.     



그것만으로도 좋았을 이야기다. 살아서 가진 그 어떤 것도 죽음을 통과해 가져갈 수는 없다. 그러니 살며 소유한 모든 것들, 어쩌면 삶조차도 잠시 빌린 것일 수 있다. 단 소유의 유한함과 소유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기에 지금 우리는 뭔가 소유하기가 무척 버거운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2022년 연극 '결혼'은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소유'의 본모습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인물들의 인위적인 동작은 현대인들을 형상화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두 번째 희곡열전 : 이강백전'은 오는 5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이며 대학로 후암 스테이지, 공간 아울, 스튜디오 블루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지난 26일 극단 <밝은 미래>가 '결혼' 공연을 마침으로써 극단 <화양연화>의 '파수꾼'(6월 28일~7월 3일)이 마지막 공연 무대를 남기고 있다. 예약은 인터파크 티켓에서 가능하며, 문의는 희곡열전 연극제 운영위원회 (0505-894-0202)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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