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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03. 2022

샤넬백 안 부러운 사치(?)를 부리며 살아요

아줌마의 상큼한 문화 + 생활



드라마 여주처럼 사람 없는 미술관에서 여유롭게 전시를 보고 싶었다. 그럼 안되나?

오픈런 대기줄처럼 늘어선 사람들에 밀려 그림 앞에서 등 떠밀려 다니긴 싫었다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15분 안에 훌훌 마셨던 가락국수 가락처럼 그림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하기는 싫었다.



여유롭고 자유로운 문화 + 생활을 위해서 아줌마에겐 방정식만큼 복잡한 난제가 두 가지 있다.

아이 등교시키는 시간과 미술관으로 출발해야 하는 적정시간,

아이 하교시간과 일 시작 전 도착하는 시간.

연립방정식보다 더 복잡한 이 시간의 난제는 좀처럼 답을 구하기 어렵다

아이 등교 시간을 맞추려면 미술관 오픈 전 도착이 힘들다.        

미술관 오픈 시간을 못 맞추면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아이 하교 시간과 엉키고 아이 하교 시간과 엉키면 일 시작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도 이만한 것이 없다.

도미노처럼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들은 손 쓸 틈이 없다. 

한 마디로 하루가 난장판이 된다.



그깟 전시를 사람 없을 때 보고 싶다는 헛된 욕심은 나의 희생이나 아이의 희생 중 하나를 잡아먹어야 가능했다.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 안 보면 그만이지.

- 보고 싶다니까?


- 포기해.

- 배추 세?


- 주말에 봐.

- 애는 누가 봐?


- 데리고 가.

- 365일 × 24시간 = 8760시간 - 1825시간(수면시간) = 6935시간을 보는 아이야.

 

- 남편한테 맡기고 가.

- 그래, 남편이 있지? 그런데 주말에는 자기실현을 위해 나가거나 업무 스트레스와 숙취로 자. 남편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게 이렇게 힘들 일이냐고?



새벽 5시 기상

책을 조금 읽고 업무 준비를 해놓으면 6시, 이제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기. 6시 반 식사 준비하면 7시, 애들 깨기 전에 내가 먼저 씻어야 함. 7시 반 화장 마치고 아이들 깨움, 아이들 밥 먹는 사이 머리 말리고 빨래 널기. 8시다. 아이들 세수하고 옷 입고 등교 준비 끝. 서둘러 나가서 아이들은 학교로 나는 미술관으로. 10시 미술관 도착. 한 시간 전시 보고 나와서 라면에 김밥 말아먹고 12시 집 가는 버스. 2시 즈음 도착. 한 시간 또 청소하고 일할 준비하고 아이 하교 대기.



고작 1시간 미술관의 여유를 위해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는 부티나게 평일 오전 사치를 즐겼다. 사치라고 해봐야 또 다른 일의 연장선이지만 어쨌거나 직장맘은 꿈도 못 꿀 사치다. 샤넬백 안 부러운 사치를 부리며 살았다.



이제 아이들을 다 키워 놓고도 나는 문화 + 생활을 위해 하루를 고군분투한다. 그래도 연극도 보고, 뮤지컬도 보고, 미술 전시도 본다. 한 시간의 전시를 위해, 두 시간의 연극을 위해 나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이러니 친구에게 연극 보러 가자고 말하기가 힘들다. 미술관을 가자고 조르기도 미안하다. 그녀들도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야 할 테니 말이다. 문화 + 생활이 노동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이러니 문화예술이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떠벌일 수가 없단 말이지. 이게 일인 나도 이렇게 힘드니 말이야.



정말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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