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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l 01. 2022

주.공.녀

주말마다 공연 보는 여자입니다

원더우먼 아닙니다.



세일러문도 아니죠.

신데렐라는 의상 부분에서 아니고요.

그렇다고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 같은 마블 영화 주인공은 더더군다나 아닙니다.



저는 주말이면 공연을 보고 리뷰는 쓰는 비정규 객원기자입니다.

비정규가 붙는 것은 4대 보험 되는 정규 직원이 아니고 공연 관련 글만 매주마다 써서 원고료를 받기 때문이죠.

그걸 벌써 9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곳에서 만요.

다행히 잘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글이 못 읽을 정도는 아니란 뜻이라 굳게 믿습니다.

또 저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코로나로 세상이 멈춰 서거나 아프거나 명절이거나 상관없이 매주 글을 쓰는 일꾼을 찾기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비밀입니다만 제가 9년 동안 쉴 새 없이 글을 들이밀었다는 것이 맞을 겁니다.

아마 데스크 쪽에서 이젠 무서워서 못 자르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학연, 지연, 혈연 없습니다.

9년 동안 데스크 얼굴 한번 보고 글만 냅다 메일로 보내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 뻔뻔함의 원천이 내성적인 성향과 아줌마 근성이라 봅니다.

내성적인 것과 아줌마 근성은 참 안 어울리는 말입니다.

콜라보를 하다 하다 별 것을 다 붙여서 콜라보를 한다 하실 겁니다.

이야기는 여차저차 합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1년 대한민국 모든 곳이 휘청거릴 때 신문사 부장님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신문사 사정으로 당분간 외부 원고를 줄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원고료를 못 드릴 수 있으니 글을 못 보내시면 연락을 달라는 거였어요.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내성적인 저는 '원고료를 안 주면 내가 왜 고생해가며 공연 보고 글을 써. 안 써야지.'란 생각을 분명했습니다. 여기서 멋지게 '그럼 저는 원고를 못 쓰겠습니다'해야 제 가치가 조금 올라간다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차마 하기 힘들어 그만 '괜찮습니다'라고 답을 보내고 말았지 뭐겠어요. 다행히 몇 개월 후 원고료 정산이 되었고 저는 지금껏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때 콩닥거리는 새가슴으로 보낸 '괜찮습니다' 덕분에 10년 계획을 망치지 않게 되었으니 내성적인 성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맞겠죠?



'아줌마 근성'은 훨씬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네요.

여러분은 아줌마 하면 좀 뻔뻔하고 소리 크고 경우 없는 결혼한 여성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그런 면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려면 소리가 커집니다. 학교 선생님이 늘 큰소리로 이야기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정해진 돈으로 살림을 하려면 이것저것 물어보고 찾아다녀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좀 뻔뻔해져야지 물어보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코로나 이전에 대면으로 '아줌마' 수업을 받아서 '뻔뻔함'을 몸에 익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니까요.



어쨌거나 저는 '아줌마 근성'으로 글을 씁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절대 쓰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은 잘난 척하며 글을 씁니다. 원고를 보낼 때는 '아, 몰라!' 정신으로 보냅니다. 물론 그러고 나서 원고에 오타를 발견하면 심장이 쪼개져서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저는 내일이 되면 공연을 보러 갑니다.

가정주부라는 옷을 벗고, 생계인이라는 가면을 내려놓고, 엄마라는 이름표를 반납하고 공연장으로 갑니다. 그 순간만큼은 저는 공연 리뷰어이자, 객원기자로 돌아갑니다. 저는 n 잡러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n 잡러였습니다. n 잡러는 변신하는 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저의 변신에는 세일러문처럼 요술방망이가 없습니다. 원더우면처럼 뱅글뱅글 돌지도 않습니다. 아이언맨처럼 세상 모든 공격을 막아낼 방탄 옷도 없습니다. 들판에 홀로 핀 들꽃 한 송이에 불과하지만 저는 공연장으로 향하는 주말이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저의 또 다른 이름은 주. 공. 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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