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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l 23. 2022

아버지의 추억과 엄마의 기억, 그리고 딸의 기록

역사인 듯 역사 아닌 우리만의 역사이야기




엄마의 전쟁 이야기


변변한 놀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에 엄마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최애 놀이 중 하나였다. 엄마 이야기 중에서 단연 최고는 엄마가 초등학생도 되기 전에 전쟁통에 겪은 이야기였다. 엄마의 이야기는 아무 때나 해주는 옛날이야기는 아니었다. 엄마가 마음이 동하거나 우연히 텔레비전에 전쟁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엄마의 이야기보따리는 저절로 풀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전쟁 이야기가 동화책보다 더 재미있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편집되고 각색된다. 내가 아름답게 기억했던 순간이 상대방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거나 각도를 달리해 찍은 사진처럼 상황도 느낌도 전혀 다른 해프닝이었을 때가 있다. 엄마의 기억도 그랬을 거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 아이의 이야기가 삼십 대 중반 엄마의 기억 속에 사실 그대로 남아있기는 힘들 일이다. 그럼에도 엄마의 전쟁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전쟁과는 사뭇 달랐다. 


부산에서 피난 가던 길에 비행기 소리가 나면 납작 엎드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는 이야기, 가도 가도 끝도 없는 피난길을 걸었던 기억, 먹을 것이 없어서 매일 보리죽만 먹어서 엄마는 보리밥이 제일 싫다는 이야기, 동네 인민군이 들어와서 아이들이 인민군을 쫓아다니면 먹을 것을 주더란 이야기, 인민군이 아이들에게 친절했다는 이야기 등. 엄마는 늘 같은 이야기를 순서를 바꿔가며 처음하는 이야기처럼 해주셨다. 같은 이야기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도 늘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전쟁과 삶의 불협화음


조각조각 연결되지 않는 엄마의 전쟁 이야기에는 전쟁의 참혹함보다 생존의 일대기에 가까웠다. 매일 폭격기가 하늘을 날고 전선의 이동 따라 피난길에 올라야 해도 삶은 지속되었기 때문일 거다. 전쟁통에도 학교가 문을 열고 길거리 좌판이 모여들면 시장이 형성되는 것처럼. 몇 달 후면 상상도 하지 못할 전쟁이 일어날 4월의 안동에는 어머니의 환갑을 맞아 외지에 사는 세 딸들이 찾아온다. 오랜만에 적막강산 같은 집에 활기가 가득이다. 연극 <화전가> 이야기다. 


김 씨의 환갑을 맞아 모인 세 딸과 며느리들, 행랑 식구들은 하나같이 여자다. 이 집안에 남자는 없다.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을 하겠다며 집을 떠난 남편, 독립운동과 연루되어 감옥에 갇힌 아들, 병약한 몸으로 일찍 죽은 남편. 있었으나 남자들은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여성은 남았다.  남아있는 여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공부시키고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삶을 이어나간다. 전쟁의 기운이 여름 습한 장마처럼 낮게 드리워지지만 김 씨는 식구들을 일으켜 화전놀이를 간다. 


전쟁과 꽃놀이가 도무지 조화롭지 못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어린 엄마가 전쟁통에 적군을 쫓아다니며 과자를 얻어먹었듯. 먹고 죽으려 해도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보리죽이 너무 맛이 없었다는 어린 엄마의 투정처럼. 우리 삼 남매는 할머니의 한복 치마를 뜯어 아이 엄마의 원피스가 되고 어린 동생의 치마가 되어 나들이를 갔더라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엄마의 전쟁기 야기를 만화 보듯 읽어가며 컸다. 


연극 <화전가> 커튼콜








대통령의 죽음을 기록하던 아빠


엄마의 다정함과 달리 아빠는, 그 시절 여느 아빠처럼 다정함과 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퇴근길에 사 오신 검정 비닐봉지 속 선베이 과자가 아빠의 다정함에 최대치였다. 아빠는 집에 계신 날이면 늘 뭔가를 쓰고 녹음을 하셨다. 그 사건이 있었던 그날 아빠는 평소보다 더 무뚝뚝한 표정으로 라디오에 카세트테이프를 여러 번 갈아 끼우시고 계셨다.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쉼 없이 울려댔다. 사이렌 소리는 익숙했다. 밤 12시면 어김없이 울리던 통금 사이렌 소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벌건 대낮에 사이렌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대낮의 거리는 스산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밖을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문밖으로 보이는 동네 골목길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그 후로도 사이렌 소리는 꽤 길게 이어졌다. 아빠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아빠의 근심 가득한 얼굴과 상기된 표정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다. 아빠는 녹음과 기록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어가셨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이나 시청 어딘가에 출근 도장을 찍으셨을지 모른다. 아빠는 '너희가 무슨 세상을 아냐'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나는 대학시절 참여했던 집회에서 골목길로 도망을 가다 전경에게 잡힌 적이 있었다. 이미 경찰서에는 많은 학생들이 잡혀와 있었다. 보호자가 오면 훈방시키켜주겠다고 집에 연락을 하라는 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하나둘 보호자의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엄마는 아빠가 아시면 내가 집에서 쫓겨난다며 삼촌을 대신 경찰서에 보내셨다. 아빠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그 사실을 모르셨다. 






자신만의 역사와 자신만의 알리바이로 살아갈 시간들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에 아들 재엽과 아버지 태용의 이야기를 보는 순간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1930년에 아버지 김태용이 태어난다. 태용은 일본 천황의 전쟁 항복 선언에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 조선 사람임을 깨닫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해방된 뒤 17세가 된 태용은 일본의 만주국 장교였던 박정희와 같은 동네에 살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공무원이 된 태용은 5.16 군사 쿠데타에서 박정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아들 재엽은 고등학생 시절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의 해직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집회에 참석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자신만의 역사 속을 살아간다. 같은 시대를 살게 되는 인생 절반의 시간도 보모와 자식이 같은 역사를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나는 아빠와 절대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연극 속 재엽과 아버지 태용처럼 다른 역사를 함께 공유할 용기를 우리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의 기록들을 미련 없이 버리셨다. 그 내용이 궁금했던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느냐고. 엄마는 한 마디로 잘라 말하셨다. 다 쓰잘데 없는 것들 뿐이었다고. 하나도 남길 것이 없더라고.


이제는 그 기록의 내용을 알 길이 없다. 그 속에 아빠의 추억이 있었는지, 아빠가 평생을 바라본 세상이 있었는지, 아니면 정말 엄마의 말처럼 세상 쓸데없는 것들 뿐이었는지 조차도 말이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거려 옛이야기들도 흐릿하다는 엄마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기록을 하기로 했다. 아빠가 바라본 세상이 틀렸다거나, 엄마가 살아 낸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빠는 아빠가 살아 낸 세상에 알리바이가 있고, 엄마는 엄마가 겪어낸 역사에 대한 알리바이가 있다. 나 역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나만의 알리바이가 있다. 다행히 나의 아이들은 엄마의 추억과 기억과 엄마의 역사를, 엄마가 바라본 세상을 모두 갖게 될 거다. 이것은 역사인 듯 역사 아닌 우리만의 역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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