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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l 26. 2022

연극 <임대아파트>에 있는 것과 없는 것

2022년 7월 14일~8월 14일, 대학로 연우소극장






           

연우소극장, 연극<임대아파트>


연극 <임대 아파트>있는 것과 없는 것



행복주택, 청년 주택, 임대 아파트 등은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주거 안전망이다. 청년인지, 신혼부부인지, 무주택자인지 자격요건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모두 일정 소득 이하여야 신청이 가능하며 최장 4년에서 6년인 임대주택에 속한다. 2년 단위로 자신이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을 밑도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계속 거주가 가능하다. 물론 이 외에도 조건은 복잡하다.      



집의 크기도 투룸, 쓰리룸까지 다양해지는 추세지만 청년들이 신청 가능한 것은 대부분 6평 내외의 원룸들이다. 소형 평수이다 보니 한 층에 일반 아파트보다 많은, 아주 많은 세대가 들어간다. 그래서 국민임대주택을 ‘개가붕 (개천에서 용이 되지 못한 가재, 붕어의 줄임말) 타운’이라며 조롱 섞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휴거'(휴먼시아와 거지의 합성어)는 이미 오래된 비속어이다.     




왜 임대 아파트 청춘들은?     


청년 주택에는 청년의 희망이 안 보이고, 행복주택에는 행복이 멀리 있으며, 임대 아파트는 집만 임대해 줄 뿐 미래와 희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물론 이 연극은 '임대 아파트'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파헤친 연극이 아니다. 죽어라 열심히 살아야 최하를 벗어날 수 있는 청춘들의 몸부림으로 채워진 이야기도 아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청춘의 삶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영화감독을 준비하는 재생은 친구 정호의 여동생 정현과 오랜 연인 사이다. 재생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글을 쓰는 동안 정현은 재생의 뒷바라지를 하며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었다. 재생은 정현의 오빠이자 절친인 정호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꾸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 정현은 답답하기만 하다. 어느 날 기적처럼 영화사 관계자와 만나게 된 재생과 정호는 영화 계약서에 도장 찍을 일만 남았다는 기쁨에 술로 밤을 지새운다.     



정호는 대학시절 만난 첫사랑 그녀를 잊지 못하는 무명 배우다. 친구 재생의 시나리오가 영화화되면 자신이 주연을 맡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정현의 남동생 정수는 일본 배낭여행에서 만난 일본인 유카와 현해탄을 넘어 열애 중이다. 이들은 모두 임대 아파트에 산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가 끊어지고 가스비를 못 내서 가스가 끊기기도 한다. 물론 끊어진 전기나 가스 따위가 이들의 꿈까지 끊지는 못한다. 꼬여만 가는 현실 속에서 이들에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다시 일어서기’를 선택한 이유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며 성공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 임대 아파트 청춘들은 다시 꿈을 꾼다. 재생과 정현은 인생의 고비를 함께 겪으며 쌓은 내공으로 다시 시작을 선택한다. 잊는 대신 기억하는 것으로 첫사랑을 보내는 정호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결혼을 발표하는 정수와 유카는 사랑만으로 현실을 이겨내겠다는 용기를 낸다.     



세상을 향해 저항한다고 해도 그 필연성에 손뼉 쳐 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좌절하고 절망한대도 그 인과관계에 깊은 호응을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연극 <임대 아파트>는 다시 일어서기를 선택한다. 삶을 소유하지 못하고 임대하여 사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다시 일어서기’라는 것은 코끝이 찡해지는 일이다. 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청년 관객에게 이 연극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다. 


    

왜 임대 아파트는 고단한 삶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왜 임대 아파트 청년들은 더 많이 좌절하고 실패를 겪으며 살까? 그런 질문들은 이 연극이 아닌 세상에 해보는 질문이다. 이 작품은 넘치는 은유와 서사, 연극적 장치가 가득한 연극이기보다 일일드라마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생활밀착형 연극이다. 지나친 신파나, 지나친 애드리브, 또는 지나친 웃음 코드가 없이 안정적이다. 정말 딱 적당한 눈물과 웃음, 애드리브를 담았다. 작품은 엄마 손맛인데 속을 들여다보니 계량컵을 쓴 느낌이랄까. 연극 <임대 아파트>는 그렇게 속은 듯한데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은 무해한 이야기다.     



한 가지 TMI(Too Much information)를 보태자면, 필자는 연극을 보러 가는 길에 한 버스 광고판에서 ‘부담은 가볍게, 생활은 폼 나게’ 할 수 있다는 역대급 청년 주택 광고를 보게 된다. 때마침 스물일곱의 큰 아이는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청춘을 저당 잡혀 월급의 절반을 적금 들고 있는 큰 아이의 꿈은 서울에 안전한 주거로 독립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진짜 ‘초자연적인 현상’이 내게 벌어진 거다. 이 청년 주택이 ‘개가붕 타운’이라 불리는 곳이란 것은 한참 뒤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리고 필자는 연극 <임대 아파트>를 보게 된다.


연극<임대아파트> 무대






*이 리뷰는 '민중의소리'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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