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지 않아도 기억되는 것들
'엄마'가 그렇고, '아리랑'이 그렇고 내겐 '김광석'이 그랬다. 살아생전의 김광석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어딘가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노래하는 수수한 청년은 가수라기엔 지나치게 평범해 보였다. 만연체 노래 가사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흑백텔레비전 속 청년의 노래는 흑백의 무채색과 닮아 있었다.
그 지나치게 평범했던 김광석을 다시 만난 것은 소극장 학전블루에서다. 김광석의 이름 앞에는 죽은 이에게 붙이는 '고'가 붙어 있었고 그의 얼굴은 청동 조형물로 공연장 앞에 놓여 있었다. 소극장 학전블루에서는 고 김광석을 기리는 음악회가 매년, 매 시즌 열렸다. 왜 사람들이 김광석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지를 알게 된 것은 뮤지컬 <그날들> 덕분이다. 대중성이 검증된 노래들을 엮어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든 작품을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한다. 뮤지컬 <그날들>은 대표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 작품은 단 한 사람, 고 김광석의 노래로만 만들어졌다.
변해가네, 혼자 남은 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끝나지 않은 노래, 그날들, 부치지 않은 편지 등.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그 노래들은 모두 김광석의 노래였다.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내라고 만들지 않았을 텐데 찰떡같이 그 상황에 그 노래가 되는 것은 연출가의 능력이 크겠지만 김광석 노래의 힘이기도 했다. 유행가 가사의 숙명이 그런 것이겠지만 고 김광석의 노래는 순간 사람을 잡는 매운 맛보다 뭉근한 사골 맛에 더 가깝다. 이것이 사람들이 김광석을 기억하고 노래하고 추억하는 이유다.
굳이 기억하겠다 벼르지 않아도 기억되고, 혼자인가 싶으면 어느새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런 존재. 특색 없는 명사이지만 어느 글에나 빠지지 않는 그런 고유한 명사. 연관성 없는 세 단어가 굴비 엮듯 추억 속에 엮어지는 것은 나 역시 그런 뭉근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어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