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정 Aug 25. 2022

연극 '더 테이블'/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세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이 만들어 내는 세련된 창작극연극 더 테이블(The Table)         



 


무대는 세련됐고 조명이 만들어 내는 흑백 농담은 정갈했다. 극의 내용에 앞서 무대가 주는 이미지는 무척 새로웠다. 시간이 흐르고 장면이 변화되는 것은 오직 조명에게만 주어진 역할이었다. 80분간 탁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인물들의 팽팽한 긴장감이 시간과 비례한다. 


    

같은 상황, 서로 다른 기억이 하나의 식탁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미끄러지듯 치고 올라가 절정에 다다랐다가 다시 미끄러지듯 결말을 향해 간다. 창작극으로는 보기 드물게 클래식한 정극의 묘미를 살렸다는 평을 받았던 연극 ‘더 테이블 The Table’이 새롭게 돌아왔다.   


  

이 작품은 연극 ‘조용한 식탁’을 각색한 작품이다. 연극 ‘조용한 식탁’은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기금에 선정되었다. 2014년 극단 뿌리의 대표 김도훈이 연출을 맡아 수년간의 작품 개발을 거친 이 작품은 2014 서울 국제 공연예술제(SPAF)에 국내 초청작으로 공연되어 평단과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은 대한민국 연극제 희곡상과 올해의 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연출 ‘한윤섭’이 초연에 참여한 데 이어 다시 연출을 맡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만나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탁자(The Table)에서 벌어진다. 남자는 10년 전 아내와 사별을 했다. 병으로 죽은 아내 대신 남자는 아들을 홀로 키웠다. 오십 중반이 된 남자는 아들에게 여자를 소개하고 싶다는 말을 툭 건넨다. 순간 조명이 다운되며 두 사람의 대화는 독백으로 전환된다.     



아들의 기억은 집 근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던 10년 전, 그날로 돌아간다. 아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다 어딘가로 자리를 옮기는 아버지를 뒤쫓게 된다. 아버지가 멈춰 선 곳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들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를 기억해 낸다.     



이제 아버지의 시점에서 독백이 이어진다. 남자는 집 근처 바에서 술을 먹고 있었다. 문득 여자의 살 냄새가 그리워진 남자는 바를 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남자가 멈춰 선 곳은 지하철역 근처 홍등가. 남자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도 그 여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 집으로 돌아온다.



남자는 여자를 아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한다. 남자보다 먼저 도착한 여자는 남자의 아들과 테이블에서 마주한다. 아들은 이 여자가 낯이 익다. 여자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 행복하기만 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다시 두 사람의 독백으로 전환된다.     



아들은 아버지가 찾았던 그곳을 다시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던 여자를 만나게 된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여자는 아들을, 아들은 여자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대놓고 말하지 못한 채, 대화는 그저 주위를 빙빙 돌뿐이다. 도대체 여자와 남자, 남자의 아들은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 왜 마주쳤던 걸까?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서로 다른 시점과 서로 다른 기억, 밝혀지는 진실   

  

과묵하고 보수적이지만 다정한 남자와 평화롭고 단아한 커피가게 주인 여자, 어른스러우면서도 소년 시절의 상처를 간직한 아들은 들춰보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들이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각자 소환한 과거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장소, 같은 사람으로 좁혀진다. 한정된 공간에서 대사만으로 그 사실에 다가가는 긴장감이 볼만하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시점은 서로 다른 기억으로 소환된다. 지난 시간이 나와 상대방에게 완전히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 작품은 그런 일상의 아이러니를 포착해 오로지 대사만으로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끌어간다. 배우의 역할이 다른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 작품에 캐스팅된 배우들은 작품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한몫을 한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영화, 드라마를 넘나드는 배우 ‘이원종’과 세련된 외모에 섬세하고 이성적인 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다지고 있는 배우 정원조가 남자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여자 역에 배우 안유진과 김유진이 세련되면서 안정된 연기력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대학로의 라이징 스타 구준모와 신예 이찬렬이 아들 역으로 출연해 믿고 보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연극 ‘더 테이블(The Table)’

공연날짜 : 2022.08.19(금) ~ 28(일)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시간 : 화, 목, 금 19시 30분/수 16시, 19시 30분/토, 일 14시, 18시(월 공연 없음)

러닝타임 : 80분 (인터미션 없음)

관람연령 : 만 15세 이상

출연진 : 이원종, 정원조, 안유진, 김유진, 구준모, 이찬렬

공연문의 : 02-3454-1401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날 핸드폰 문자로 죽음이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