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나나나나~~ 날 좋아한다고
나나나나나나~~ 포카리 스웨트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하얀 원피스를 입고 바구니가 달린 하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그녀.
구름조차 얼룩처럼 느껴질 하늘색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웃던 그녀.
한때 인기를 끌었던 한 음료 광고다. 내가 이 음료 광고를 좋아하는 것은 음료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광고 속 여자 때문이다. 내가 열광한 것은 모델이 아니다. 그 모델의 긴 생머리와 하얀 원피스, 그리고 바구니(여기서 바구니는 철제 바구니나 플라스틱 바구니가 아니라 라탄 바구니를 말한다)가 달린 자전거였다.
내가 그런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지 않았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며 배울 생각도 없다. 다행히 내가 할 수 없다고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딸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 꿈을 위해 딸은 낳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갖고 열 달을 꼬박 딸이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진짜 딸을 낳았다. 이제 꿈을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엄마"
"이게 뭐야? 너 머리끈 어떻게 했어?
딸은 주머니에서 아침에 묶어 준 방울머리끈 두 개 중 한 개를 겨우 찾아 내 앞에 내밀었다.
"너 학교에서 싸웠어? 아니면 누가 너 괴롭혔어?"
"친구들이랑 놀았어. 엄청 재밌었어"
머리 묶는 재주가 젬뱅인 내가 심혈을 기울여 머리를 묶어주었는데 머리끈은 주머니에 있고 머리는 묶인 자국이 선명한 채로 흘러 내려와 가발을 뒤집어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윗옷은 앞으로 절반 뒤로 절반이 나온 건지 쑤셔 넣은 건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바지 양쪽 주머니 속이 밖으로 비어져 나온 것이 움직일 때마다 토끼 귀처럼 찰랑거린다. 그 주머니에 시선이 닿자 내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큰 아이는 치마를 싫어했다. 옷에 대한 인식을 하면서부터 줄곧 고무줄 바지를 고집했다. 머리를 묶어주면 한 번도 그 모습 그대로 집에 오는 일이 없었다. 긴 생머리가 숙원사업이었지만 산발이 된 아이의 머리를 보는데 지쳐 결국 단발머리로 자르고 말았다. 아이도 자신만의 스타일이란 것이 있으니 내 뜻대로 반드시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유전적인 부분이 작용을 했다면 아이가 내 성향을 닮아 그런 것일 수 있다. 어느 날 아이가 도통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고 고무줄 바지 같은 편한 차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 알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엄마는 묶은 짐을 정리하듯 내 사진을 정리하여 보내신 적이 있었다. 돌 사진부터 어린 시절 빛바랜 사진, 중 고등학교 시절 사진까지 엄마가 가지고 있던 사진들을 대거 방출하신 거다. 결혼했다고 이런 추억까지 몽땅 정리를 하나 싶어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 덕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보는 재미로 한나절을 보낼 수 있었다.
사진 속 나는 돌사진부터 초등학생 시절까지 남자아이 같은 짧은 머리였고 치마를 입은 사진이 없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멜빵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사진은 처음엔 남동생이라 생각했다. 엄마가 실수하여 남동생 사진을 내게 보낸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언니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선머슴 같은 내 모습이 신기해 엄마에게 물어보게 됐다.
"엄마, 언니는 늘 치마를 입고 있는데 나는 남자애처럼 이게 뭐야?"
"아니, 안 어울리는데 어쩌냐. 치마를 입히면 이상하고 바지를 입히면 어울리니 그걸 어쩌냐."
"아......"
그랬구나! 내가 치마가 어울리지 않아 바지만 입히셨구나. 그러고 보니 치마보다 바지가 더 어울리는 모양새이긴 하다.
옷이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정설처럼 믿던 때는 여자아이는 핑크색, 남자아이는 하늘색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었다. 유아동복 매장을 가면 걸려있는 옷의 색깔만 보고도 여자아이 옷인지, 남자아이 옷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것 입으면 고추 떨어져!", "그렇게 입히니 여자애가 선머슴 같아지지!" 이런 말들을 어른들에게 자주 듣기도 했다.
세상에 진리로 불리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세상에 맞게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기존의 가치는 폐기수순을 밟게 되기도 한다. 이젠 유아동복 매장을 가도 옷 색으로 여아와 남아를 구분하기 힘들고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흐름이 생겼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틀이 있다. 나는 선머슴 같은 외형이었지만 성격은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큰 아이도 운동복이 일상복이자 업무복이지만 예민하고 겁 많고 내성적이며 활동성은 제로다. 작은 아이는 찢어진 바지에 페인팅이 덕지덕지 붙은 옷만 입는다. 이 아이는 우리 집에서 예외로 옷과 성향이 일치한다.
옷과 사람이 일치되면 그다지 놀랄 것은 없다. 우리가 예상한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옷과 사람이 일치되지 않는 순간 느끼는 의외성과 충격이 가끔은 더 신선할 때가 있다. 포카리 스웨트는 음료로만 마시고 고무줄 바지를 존중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의외성과 충격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