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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ug 27. 2024

김. 포. 댁

김치 담그기 정도는 못 해도 됩니다




50대 아줌마가 김치 담글 줄 몰라요?



네, 맞습니다.

저는 김치를 한 번도 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김치를 담가 본 사람보다 안 담가 본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요.

그런데 50대 아줌마가 김치를 한 번도 담가본 적이 없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지금껏 김치는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요즘 아이들은 김치가 없어도 밥 먹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이 나이쯤 되면 다릅니다. 식탁에 김치는 안 먹어도 있어줘야 하는 필수템이거든요. 문제는 김치란 녀석은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부터 손수 담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도 소비자 물가의 변동 상황을 가시적으로 전달할 때, 김장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를 척도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김장은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라는 뜻입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때 되면 김장 김치, 중간중간 겉절이, 입맛 없을 때 등장하는 파김치, 겨울이면 살얼음 살짝 끼얹은 동치미가 알아서 식탁에 등장했습니다. 김장을 할 때도 기껏 잔심부름 정도를 하거나 속이 버무려진 배춧잎을 받아먹으려고 엄마 옆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김치란 녀석이 공짜로 식탁에 오르지 않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더군요. 처음에는 먼 시댁에서 김장김치를 보내주셨고 친정엄마도 중간중간 김치를 해주셨죠. 시댁이 먼 지방이었고 저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김장을 담근다고 해서 내려가기 어려웠습니다. 친정도 김장을 하셨지만 엄마는 이모들과 함께 김장 담그기를 더 좋아하셨어요. 어쨌거나 엄마는 제게 김장 담그러 오란 말을 안 하셨어요.



시간이 지나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엄마는 왜 나한테 김장하는 것을 배우란 말을 안 했냐고. 엄마는 별다른 이유를 대지 못하셨어요. 미루어 짐작컨대 제가 일찍 결혼을 하고 집안일하며 사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엄마는 그 후로도 김장 담그러 오라거나 김치 담그는 것을 배우라고 다그치거나 하는 법이 없으셨어요.





그렇게 '김장'은 제게서 멀어져 갔답니다.



이쯤 되면 그럼 결혼해서 남편 밥도 안 챙겨주고 애들도 안 먹이고 살았나? 그런 의구심이 들 수 있어요. 물론 대부분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요. 혹시 살림을 안 하거나 남편이 대신하거나 일하는 분을 쓰고 살았을까? 궁금하실 수도 있어요. 물론 아닙니다. 저는 혼자 아이를 20년 가까이 키웠어요. 흔히 독박 육아라고 하죠? 살림, 육아, 일까지 모두 저 혼자의 몫이어서 월화수목금금금이 반복되는 시간을 20년 넘게 살았으니까요. 심지어 저 스스로가 집안일과 육아, 일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원더우먼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나이면 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엄마라서 주부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았더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무도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더군요. 누구도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내가 다해야 한다는, 아니 다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냅다 던져 버리기로 했습니다.



김치 담그는 일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 중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일 뿐입니다. 그 수많은 것들을 모두 다 하고 사는 사람도 없지만 모두 다 잘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중 어떤 것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고, 내가 잘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김치 담그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과감히 김치 담그기를 포기했습니다.



아니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것까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담글 것이고 사 먹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집 청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음식 만드는 일일 수 있습니다. 혹여 누군가 옆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내가 못하는 것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고 그래야 협업이 가능하고 콜라보도 가능하다는 것을요. 협업과 콜라보가 꼭 대단한 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다못해 친구끼리 만나도 어떤 친구는 길을 잘 찾고 어떤 친구는 맛집을 잘 알고 어떤 친구는 연애에 능통합니다. 나 혼자 다 알고 다 잘하면 친구도 없습니다. 특히 '그 나이면 그런 것은...'이란 말은 아예 듣지도 마세요. 나이마다 해야 하는 것이 목록화되어 있는 것도 없고 법으로 지정해 놓은 것도 없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도 김치 담그는 거 배워. 할머니 돌아가시면 우린 김치 어떻게 해?"

"사 먹으면 돼지. 지금도 사 먹는데."

"할머니 김치가 맛있는데"

"그럼 네가 배워. 배워서 엄마 좀 김치 해줘."



저는 김치 담그는 것 하나쯤은 안 할 생각입니다. 뭐 그게 그렇게 대단히 자랑할 일이라고 닉네임으로도 쓰고 아이디로도 쓰냐고 묻는다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원더우먼 콤플렉스'로 가득한 저는 또 김치 담그는 것까지 배울 테니까요. 또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하겠다는 망상으로 저를 힘들게 할 것이 뻔하니까요. 그건 국가적 손실이 될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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