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이웃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지하 현관을 들어섰다. 아저씨 한 분이 컵라면 한 상자를 들고 서있었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저씨보다 아저씨가 들고 있는 컵라면 한 상자였다. 별다른 물건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장을 보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아파트 앞 마트에서 저 컵라면만 샀거나 아내의 심부름으로 급하게 컵라면을 사 온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저씨의 옷차림이 그랬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카고 반바지에 적당히 구겨진 티셔츠. 심부름이라고 하기에 컵라면 한 상자는 어색한 품목이다. 컵라면은 장을 볼 때 곁들여 사는 품목이지 컵라면만 한 상자만 사 오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컵라면 한 상자에 곁눈질을 해가며 온갖 의문을 품고 있던 순간, 아저씨는 대뜸 들고 있던 컵라면을 하나를 내 코 앞에까지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네?"
"아, 네?"
"아, 이거요?"
무심한 듯 박스에서 커낸 컵라면 한 개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서야 아저씨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안경을 쓴 눈은 작고 가늘어서 눈동자를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다. 컵라면이 내 얼굴 근처를 향한 건 아저씨의 키가 무척 컸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컵라면 상자에 쏟아졌던 내 의심이 코앞까지 컵라면을 들이밀며 권하는 아저씨에게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걸 왜 주는 거지?
나보고 사라는 건가?
이상한 거 들어있는 거 아냐?
뭐 하는 사람이지?
여기 사는 사람인가?
엘리베이터 같이 타도 되는 거야?
같이 탔다가 뭔 일 나는 거 아냐?
컵라면을 받아 들기까지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에는 무수한 질문과 의심과 경계와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아, 네? 네.
쭈뼛거리며 컵라면을 받아 들었다. 거절하기에 적절한 시간을 놓친 채 컵라면을 응시하던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열리지 않았다면 컵라면을 받아 들고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릴 층을 누르고 서있으면서도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벽면과 유리창 속에서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경계심으로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정면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8층에서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내렸다. 손은 다급하게 문 닫힘 단추를 열심히 눌러댔다.
집에 오니 둘째 아이는 컵라면 하나를 달랑 들고 선 엄마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그게 뭐냐는 아이의 시선이 컵라면에 머물렀다.
이거? 아까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이걸 주더라?
갑자기?
응, 갑자기. 이거 왜 준건지 모르겠어.
이거 요즘 나온 신제품인데?
,
짜파게티 컵라면 아저씨를 다시 만난 것은 그 후로 한참이 지나서였다. 휴일 아침, 그 8층에서 아저씨와 아저씨 가족들이 엘리베이터에 타서였다. 아저씨는 물론이고 아저씨의 아내와 어린 아들은 모두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깍듯하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세 사람의 인사를 혼자 받고 나도 인사 비슷한 것을 했다.
"안 녕 하...... 세..... 요"
정확하게 인사를 한 것인지 아닌지, 내 말이 들렸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소리로.
무안함과 미안함이 밀려왔고, 그깟 컵라면에 온갖 추측을 갖다 붙이느라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도 아저씨를 만난다. 여전히 아저씨는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시고 나는 여전히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