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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ug 06. 2024

벌새의 둥지는 2cm 크기입니다

당신의 집은 몇 평이세요?






아침 6시는 새벽이라 하기에는 너무 늦고 아침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아이를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학교 보내는 일이 없어지니 아침 6시는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적막함과 분주함 사이, 유튜브에서 찾아 놓은 명상음악을 재생시킨다.

고요한 음악과 함께 작은 둥지에 몸을 실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띈다. 

바로 벌새다. 1초에 최대 90번의 날갯짓을 한다는 벌새는 10cm도 안 돼 보였다.



벌새보다 더 눈을 사로잡은 것은 벌새보다 더 작고 아담한 벌새의 집이다.

작은 새에게 작은 집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거실, 주방, 화장실에 방도 두세 개 있어야 사는 인간의 눈에 벌새의 집은 신기하고 신선하고 놀라웠다. 



벌새의 집은 고작 2cm에 불과했다. 손가락에 끼는 작은 골무를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물론 벌새보다 큰 독수리의 집은 2m가 넘기도 한단다. 이동을 하지 않고 붙박이로 사는 독수리는 오랜 세월 새로운 재료를 더 얹어 더 좋은 환경으로 집을 키운다고 한다. 새들의 집은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위가 트여 있는 새집이 있고 입구를 아래로 낸 원통형 집, 길쭉한 집을 짓는 새도 있다고 한다. 집의 모양도 다르고 짓는 장소도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히 살아온 환경이나 생활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새처럼 사람도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나 생활 방식에 따라 집의 크기도, 집의 모양도, 집이 위치도 다르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에게 집은 크기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집의 크기를 평수로 확인한다. 한 평은 대략 3.3제곱미터로 가로 182cm, 세로 182cm의 정사각형 크기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한 평은 대한민국 평균키(약 171cm)의 성인 남성이 누우면 딱 맞는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평'을 기준으로 24평, 32평, 100평 등 집의 크기를 나눈다. 그런데 평수는 단순히 집의 크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몇 평짜리 집에서 사는가'는 얼마만큼의 부와,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가졌는지와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때로는 집의 평수가 사는 사람의 인격과 가치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집의 크기가 그 사람의 사회적 계층이나 권위, 사회적 영향력과 등치 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계층이 높거나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주로 고가의 큰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십 대는 30평, 사십 대는 40평에 살아야 한다는 속설을 당연히 여기며 산 적도 있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구경하는 것이 취미라고 할 정도로 아파트 청약 열기 한가운데 있기도 했다. 집을 사기도 했고 집을 잃기도 했다. 일 년 전 18평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가구의 절반을 버리고, 물건의 절반을 비워냈다. 집 곳곳을 가득 채웠던 짐들은 덜어내니 집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이었다. 



이제는 온전히 사람을 위한 집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벌새 한 마리에서 시작된 이 질문을 곱씹게 된다.  

지금 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 걸까? 주민등록증 뒷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이사를 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게 집은 벌새의 둥지처럼 딱 필요한 만큼이라는 것. 진즉 알았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집을 위해 인생을 저당 잡혀 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미리 알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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