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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ug 03. 2021

단팥빵과 소보로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거나,
돈을 벌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빵을 실컷 사 먹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결혼 안 하신 아가씨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그랬는지 점심은 빵을 드시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점심으로 빵을 먹는 것이 신기할 것도 없지만 40여 년 전은 흔한 점심 메뉴가 아니었다. 엄마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빵집에서 빵을 사주는 일이 없었다. 그만큼 어린 나에게 빵은 사치품에 가까웠다. 


선생님은 점심시간이 되면 반장인 내게 빵 심부름을 자주 시키셨다. 학교 앞에는 빵집이 유일하게 한 곳이 있었다. 빵을 보는 일조차 흔하지 않아서 선생님 빵 심부름 가는 길은 항상 설레었다. 빵집 근처에 가면 뜸 들이는 밥솥에서 비어져 나오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지런히 정돈된 빵들이 반질반질 윤기를 머금고 있었다.


선생님이 어떤 빵을 자주 시키셨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 갈색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빵들을 보며  '빨리 어른이 돼서 나도 내 돈으로 빵을 실컷 사 먹어야지'라는 굳은 다짐을 했던 기억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거나, 돈을 벌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빵을 실컷 사 먹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 빵 심부름을 하던 그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어른이 이런 것이란 걸 알았어도 어른이 되고 싶어 했을까?


시간은 흘렀고 소원대로 어른이 되었다. 한동안 한 맺힌 사람처럼 빵을 사 먹었다. 지금도 나는 '빵순이'라 불릴 만큼 빵을 좋아한다. 이젠 건강을 생각해서 예전만큼 먹지는 않지만 그깟 빵쯤은 맘껏 사 먹는 어른이 됐다. 그리고 맘껏 빵을 사 먹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도 빵을 사 먹는 횟수만큼 확인하며 살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다. 내 돈으로 빵을 사 먹을 수 있으면 어른이라는 어린 시절 생각처럼 어른이 된다는 게 단순하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매 순간 내 선택이 옳은지,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늘 헷갈리기 때문이다.


단팥빵을 살까, 소보로를 살까 같은 고민은 가장 단순하고 귀여운 고민이라는 것을 그땐 몰랐다. 선생님 빵 심부름을 하던 그 초등학교 5학년의 아이가 어른이 이런 것이란 걸 알았어도 어른이 되고 싶어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한 해가 중반을 훌쩍 넘어버려서도, 몇 달 후 한 살을 더 먹어서도 아니다. 진짜 아니다. 정말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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