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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Aug 06. 2021

언니

친구라고 불러줄게



언니는 나보다도 두살이 많다.


언니는 초등학교 시절 한 번도 제시간에 집에 오질 못했다. 집에 오는 길에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거나, 뽑기 가게에서 죽치거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느라 해가 져도 집에 안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엄마가 언니를 찾아오라고 시키는 일이 잦았던 탓에 언니의 생각 없는 행동이 매우 짜증 났었다. 언니는 동생과 나를 끌고 구경시켜 준다며 방화동에서 김포까지 데려갔다가 엄마에게 죽도록 맞기도 했다. 학교 끝나면 방 두 칸짜리 셋집에 반 친구 전체를 끌고 와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언니는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광이었다.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를 하는 날이면 새벽까지 영화를 봤다. 방 하나에 온 식구가 모여 자던 그 시절, 언니 옆자리 나는 새벽까지 반강제로 영화를 봐야 했다. 언니는 잠도 많아서 영화 보는 내내 졸거나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만 끄라고 하면 보고 있다며 절대 끄지도 못하게 했다. 그런 언니 덕에 많은 영화를 봐야 했고 영화가 끝나면 쓰러져 자는 언니 대신 텔레비전을 끄는 일도 내 몫이었다. 부잡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언니는 시골 가면 소 여물통과 화장실에 빠지기도 밥먹 듯했다(도대체 소 여물통에는 왜 빠졌는지 모르겠다).


 


주인집 앞마당에서 언니와 함께


 

고3 대입 면접시험 보는 날, 엄마는 언니 면접시험장에 나를 함께 보내셨다. 그해 입시에는 눈이 엄청 많이 왔다. 도로가 미끄러우니 차는 거북이걸음이었고 면접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언니는 버스에서 울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연세대 근처에서 언니 손을 잡고 내렸다. 지하철을 타본 적 없는 언니와 나는 붐비는 지하철역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언니는 울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지하철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 모르니 차라리 버스를 타는 게 낫지 싶었다. 다행히 그날 모든 수험생이 지각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모양이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서 대학마다 면접시간이 늦춰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도 겁이 났는지 언니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길 모르고 당황스럽기야  두 살 어린 내가 더하면 더한데도 우는 언니를 끌고 성균관대 언덕길을 올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언니의 웃픈 일화는 차고 넘친다.



시장 가서 대파 사 오랬더니 쪽파를 사 오기도 했고 사 오라는 것 대신 정체불명의 물건을 사 오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루는 언니가 명동 JFK에서 만나자는 거다. 내가 KFC(그 당시 유명했던 치킨 가게) 아니냐고 하니까 JFK라고 할아버지 서계신다며 바득바득 우기던 사람이다. 영화를 보러 가면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는 언니는, 영화 상영시간을 딱 맞춰 가서 성질 급한 내 속을 바짝바짝 타게 만드는 재주도 있다. 심지어 늦어도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물론 우리는 사이가 좋다. 하지만 같이 잘 안 논다. 성격이 정반대이며 취향, 사고방식 뭐 하나 맞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많은 빚을 갚느라 대학 졸업과 함께 죽어라 일만 했던 언니는 여전히 싱글이다. 지금은 안정된 직장에 상당한 수입과 연금, 서울 알짜 동네에 아파트를 가진 화려한 싱글로 살고 있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언니지만 내가 힘들 때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언니다. 잔소리 한 바가지를 쏟아부어도 결국 언니는 절대적인 내편이다. 그런 걸 보면 언니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맏이는 하늘이 내린다고 하니까.  


그래도 나는 언니와 1분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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