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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Nov 09. 2021

엄마, 나도 새 옷 사줘!

모전여전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손재주가 너무 좋으셔서 어린 시절 우리 옷을 대부분 만들어 입히셨다. 

이모들이 처녀시절 입었던 원피스가 어느새 내 원피스가 되어 있기도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입으셨던 스웨터를 풀어낸 실들을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 위로 실을 일일이 김을 쏘여 다시 반반한 새 실뭉치로 만드셨다. 

실제로 엄마의 작업 시간은 무척 길었겠지만 어린 시절 기억 속에는 

자고 일어나면 뚝딱 내 스웨터가 되어 있곤 했다. 엄마는 심지어 한복도 만드셨다. 

하루는 엄마가 시집올 때 지어 온 한복을 작은 가위로 정성스레 뜯으셨다. 

그리고 신문지 위에 분해된 한복을 조각조각 올려놓고 본을 그리셨다. 



그 모습이 무척 신기했던 우리는 엄마 주위에 쪼그리고 앉아 

이게 무엇인지, 이걸 왜 만드는 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사 온 한복 천 위에 만든 본을 대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자르고 

미싱을 돌리고를 반복하셨다. 우리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한참을 우리의 관심에서 잊혀갈 때 즈음 엄마는 노랑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내 앞에 내어 놓으셨다. 그제야 엄마가  학교 운동회에서 부채춤출 때 내가 입을 한복을 만드신 거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그 한복이 싫었다. 아버지의 스웨터를 풀어 만든 그 스웨터도 싫었다. 

멋쟁이 이모가 양장점에서 맞춰 입었다는 원피스를 뜯어 만들어준 그 작은 원피스가 싫었다. 

그냥 싫은 것이 아니고 너무 싫었다. 엄마는 없는 돈에 세 아이들 옷을 다 사입 힐 수 없어 이런저런 궁리를 내어하신 일이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나는 그 옷을 입기 싫어 핑계를 대곤 했다. 

친구들은 레이스 달린 원피스, 알록달록 색실로 만든 스웨터, 금박 은박 찍은 왕비표 한복을 입는데 엄마가 만든 재활용 옷이 예뻐 보일 리가 없었다.  



(좌)이모의 원피스로 만들어 주신 나의 원피스, (우)초등학교 운동회때 만들어 주신 한복을 입고




 


나는 아이들에게 옷 만들어 입히기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옷들이 싫어 그렇게 속없이 짜증 냈던 기억들을 망각한 채 말이다. 

기를 쓰고 홈패션 자격증을 따고 퀼트 자격증에 인형 만들기 가격증까지 땄다. 

3만 원짜리 미싱에서 시작해서 전문가용 미싱을 사기까지 열심히 아이들의 옷을 만들었다. 

동대문 원단시장을 돌며 수입원단을 사고 고급 단추에 액세서리를 풀 옵션으로 준비해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하나밖에 없는 옷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아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들은 내가 만든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저희들 눈에도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열심히 만들었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예쁘다는 말을 던지고는 정작 옷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입지 않았다. 알면서도 나는 그 후로도 몇 해는 더 아이들의 옷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옷을 만들면 행복했다. 

이 옷을 입고 총총거리며 걸어 다닐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곤 했다. 

아이들이 잘 입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옷을 만드는 내내 내 안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행복감만으로 충분했다. 학교에 입고 가라고 잘 다려서 양말과 함께 놓아둔 원피스를 아이는 그대로 두고 학교를 갔다. 

그 뒷모습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옷을 만들겠다는 나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을 입지 않고 돌아서는 나를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셨겠지?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도 나처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셨을까? 



아이에게 만들어 주었던 블라우스와 원피스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옷장 한 구석에 

보자기로 싸 놓은 아이의 옷을 풀어 볼 때마다 

나는 다시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작은 보라색 원피스를 입었던 딸아이의 모습,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던 아이의 여린 뒷모습, 

그 모든 추억들이 원피스 하나에서 툭 떨어지고 

블라우스 하나에서 다시 툭툭 떨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아이 옷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 추억 하나를 새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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