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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Nov 07. 2021

이런 사랑!

사랑이란 이름으로 만나는 연극 이야기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냥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느껴져서......

잊고 살았겠지만 우리가 우리 사랑의 출발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누구나 비슷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린 서로 너무 잘 통해. 그 사람은 나랑 취미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

"우리는 밤을 새우고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가 않다니까."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기로 했다. 



사랑을 하나로 정의하기 힘들듯 사랑의 모양도 특정하기 힘들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사람도 있다.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여자와 남자만 서로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다. 토네이도처럼 목숨 걸고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잔잔한 호수가 되어 평생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이란 감정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면 사랑이란 감정이 피부 속 콜라겐처럼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지만 그런 사랑도 있다. 사랑은 하지만 늘 함께일 필요가 없는, 친구였다가 적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그래서 미치도록 이야기하고 싶으면 꼭 그 사람을 찾게 되는, 그렇게 그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있다. 


주인공 정민과 연옥은 대학시절 처음 만난다. 교내 집회에서 전경을 피해 도서관으로 뛰어 온 열혈 대학신문 기자 연옥은 도서관에서 죽어라 공부하던 정민을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이라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우정이라고 하기엔 많이 넘치는 관계가 된다. 두 사람은 토론인지 술주정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졸업 후 파리 특파원이 된 연옥은 정민과 파리에서 같이 지내게 되지만 특파원 생활로 바쁜 연옥을 지켜보다 정민은 한 달 만에 서울로 돌아오고 만다. 


그 후 정민은 지혜라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연옥은 결혼 소식을 전하는 정민에게 정민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연옥은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결심한다. 한편 대학교수가 된 정민은 아내 지혜의 바람으로 이혼을 하게 된다.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잘 나가던 특파원 연옥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민은 연옥을 찾아간다. 


정민은 연옥에게 매주 목요일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만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목요일마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비겁함, 역사, 죽음, 편지, 관계까지 대화를 하다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도 하며 두 사람의 목요일은 깊어간다. 삶과 사랑, 우정의 가운데 어디쯤 있으면서도 팽팽한 끈으로 연결된 것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연옥과 정민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은 그런 사랑,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관계를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은 어떨까? 이미 영화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뮤지컬로 2018년 우리를 찾아왔다. 이 작품은 이미 전 세계를 매료시킨 베스트셀러였고 세기를 초월한 로맨스 영화의 고전이었다. 중년이었던 매릴 스트립과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매력적인 모습과 완벽한 연기는 '최고의 러브스토리'로 회자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1965년 2차 세계대전 중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에 파병 온 버드와 결혼하여 고향을 떠난다. 미국 아이오와 윈터셋에서 아들 마이클과 딸 캐롤린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일리노이 주 박람회에 참가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프란체스카는 혼자 남게 된다. 그리고 그날 오후, 프란체스카에게 운명의 남자 로버트 킨케이드가 나타난다. 로버트는 매디슨 카운티의 '로즈먼 다리'를 찍기 위해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였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프란체스카와 로버트는 운명처럼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를 따라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프란체스카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잊지 않았던 로버트의 부고를 듣게 된다. 너무나 익숙한 이 이야기는 뮤지컬을 통해 훨씬 더 입체감 있게 다가왔다. 이런 사랑은 우리가 살면서 흔히 겪게 되지 않는다. 어쩌면 흔히 겪지 못하기에 더 애절하고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엔 좀 더 현실의 사랑을 만나보자. 영화 '국제시장'의 작가 박수진의 연극 복귀작이었던 연극 <변두리 멜로>는 서울 변두리 어느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이야기다. 이야기처럼 무대도 작고 소박했다. 드라마틱한 사랑도 없고 지적인 만남도 없다. 너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려낸 사골 국물처럼 진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다. 


건물 입구에서 토스트를 파는 김 씨 부부는 늘 옥신각신 싸우지만 밥때가 되면 건강에 좋은 콩 반찬을 주고받으며 사는 결혼  40년 차 베테랑이다. 이 토스트 가게에 단골인 건물주 신 사장은 아내 덕자를 두고 보험설계사 월하에게 밥 먹듯 보험을 들어준다. 월하는 남편이 죽고 가장이 되어 먹고살기 위해 보험 설계사가 되었다. 건물 1층 은행 출장소 대출계 계약직 직원 병진이는 돈 없고 빽 없고 직업도 불안하지만 사랑하는 은혜에게 용기 내어 청혼을 한다. 


이야기 속 사람들에게 사랑은 치열한 삶과 늘 함께 한다. 낭만적인 사랑이 이성의 심장을 가진 삶과 공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버거운 이들에게 사랑은 불필요한 장신구처럼 걸리적거리기만 한다. 사랑이란 감정 위에 생활과 삶에 켜켜이 내려앉으면 사랑은 이불장 맨 아래 깔린 여름 이불처럼 존재감이 없어진다. 행여 꺼내 쓰려고 하면 위에 쌓인 감정들까지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꺼낸다 한들 구겨지고 내리 눌려 원래 쓰임을 알 수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존재조차 희미한 사랑을 꺼내어 서로의 시린 어깨를 덮어주고야 만다. 

그 힘으로 우리 부모님들이 살아내셨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나가게 될 것이다. 연극 <변두리 멜로>는 변두리 감성이 짙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촌스럽지 않고 궁상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그 변두리 삶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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