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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Sep 15. 2021

그 언니 유명한 날라리예요!

이탈리아로 간 날라리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처음으로 집을 사서 들어간 아파트 단지에서였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과외'를 했었다. 꽤 오랜 시간 했던 일인데도 족집게 과외교사나 동네 유명한 과외교사는 되지 못했다. 그냥저냥 동네 아이들과 잘 소통하고 성실한 과외선생님 정도여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보다 점수 올리는 것이 시급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나만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사연 많은 학생들이 나를 찾아왔다. A도 그 사연 많은 학생 중 하나였다. A를 만난 것은 처음으로 집을 사서 들어간 아파트 단지에서였다. 


똥머리를 틀고 우리 집에 첫인사를 온 A는 풍기는 분위기부터 남달랐다. A의 어머니는 전화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A가 중학교 1학년인데 공부를 전혀 안 해서 기초가 많이 부족하다는 거다. 이 정도는 과외 문의를 하신 어머니들의 단골 멘트라 그런가 보다 했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알파벳도 잘 몰라요. 그래도 공부하려는 마음은 있어요. 내일 아이가 갈 거예요. 잘 좀 부탁드려요."



A를 처음 만나고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제대로 된 날라리가 왔구나'였다


웬만하면 알파벳은 초등학교 1학년도 아는데 중학생이 알파벳도 잘 모른다는 말은 사실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A의 모습은 보통 학생들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느낌과는 다른 '센' 무언가가 있었다. A를 처음 만나고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제대로 날라리가 왔구나'였다. A는 그렇게 나와 공부를 시작했다. 


A는 우려와 달리 순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숙제를 내주면 어떻게든 해왔다. 늘 "해볼게요"라고 말을 하며 핑계를 대는 일도 없었다. 영어도 수학도 아이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배우는 속도도 느려서 같은 것은 여러 번 반복해야 했고 쉬운 문제도 한 번에 풀지 못했다. 단어를 외우는 일은 거의 미션에 가까워서 한 단어를 쓸 때 철자를 제대로 다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시험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코앞에 닥쳐온 시험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단어를 못 외워도 영어 시험은 봐야 했다. 영어 본문을 무작정 쓰고 해석을 외우게 했다. 연습장에 수없이 쓰고 외우기를 시험 전날까지 시켰다. 그래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면 해석이라도 하라는 바람으로. 우리의 첫 시험은 전쟁과 같았지만 A는 고맙게도 무조건 나를 믿고 공부를 해줬다. 


하루는 다른 시간대에 공부를 하러 오던 학생이 우리 집에서 나오는 A와 마주친 모양이었다. 

"선생님, 혹시 @@언니 여기 공부해요?"

"응, 왜?"

"그 언니 초등학교 때 유명한 날라리였어요."

"아, 그래? 착하던데?"

"쌤은 안 봐서 몰라요. 초등학교 때 학교에 미니스커트에 구두 신고 다녔어요. 유명했어요."

지나가는 말로  A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이들이 너, 초등학교부터 엄청 유명했다는데?" 

"하하, 맞아요. 그땐 생각 없이 그러고 다녔나 봐요."

A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영어 단어 100개를 외워오라고 하면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해왔다
밤새워 공부했다며 연습장을 내미는 A를 보고 내가 혀를 내두들 정도였다


A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와 공부했다. 공부하는 내내 A를 모른다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지만 A는 늘 성실하고 예의 발랐다.  영어 단어 100개를 외워오라고 하면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해왔다. 밤새워 공부했다며 까맣게 채워진 연습장을 내미는 A를 보고 내가 혀를 내두들 정도였다. A는 미래계획이 명확했다. 의상디자인을 공부해서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라고 늘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A가 미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기 시작할 즈음 끝이 났다. 내가 이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하며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아이들을 사실 다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생활에 쫓기며 일을 했고 그 후로도 많은 아이들과 공부로 씨름을 해야 했다. 몇 년이 흘렀고 어느 날, A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대학 들어갔어요. 선생님 잘 지내시죠? 선생님 만나러 가도 될까요?"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영어 점수와 수학 점수가
도대체 우리 인생에 무슨 쓸모가 있나 싶다

A가 이제 스물여덟이니까 우리의 인연은 14년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A는 이탈리아 국립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코로나로 학업을 잠시 멈추고 귀국해서는 끊임없이 전시회를 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아르바이트를 뛰고 미술공부를 했다. 알파벳도 잘 몰랐던 A는 어떻게 이탈리아 국립대학을 들어간 걸까? 천지가 개벽해서 아이의 천재성이 폭발한 걸까?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피나는 노력으로 일궈낸 기적인 걸까?


"난 네가 정말 신기하다. 영어도 잘 못하고 이탈리아어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거길 들어간 건지 말이야."

"저 거기서 욕 많이 먹어요. 잘 못한다고. 말도 잘 못 알아들어서요."

"그래? 그런데도 괜찮아?"

"안 괜찮아요. 저 울기도 많이 울어요. 제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걔네들이 저 무시하는 거 얼굴에 보여요. 그래도 제가 선택한 거니까 이겨내야죠."


"졸업하면 한국 들어와?"

"아뇨, 미국 갈 거예요. 거기가 시장이 더 크니까요. 미국에서 자리 잡고 일할 거예요."

"미국에 아는 사람은 있어?"

"아뇨."

이번엔 아는 이도 없다는 미국을 갈 거라고 했다. 도대체 무모하고 당돌한 이 아이를 누가 말리지? 


A는 얼마 전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A를 우리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시 연락이 왔을 때 "저 미국에 있어요"라는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 용감하고 무모한 A를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영어 점수와 수학 점수가 도대체 우리 인생에 무슨 쓸모가 있나 싶다. A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고 있고 꿈을 꿈으로 두지 않고 현실로 만들어 버린다. A의 도전은 끝난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것을 성공이라 표현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이 반드시 좋은 직장, 높은 연봉과 등치 되는 것은 아닐 테니 A는 이미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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