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잔

by 하울

‘파잔’은 동물 쇼에 등장하는 코끼리가 거쳐야 하는 의식이다. 먼저 훈련이 쉬운 아기를 포획하기 위해 어미를 먼저 죽이는 일부터 시작된다. 코끼리는 강한 모계사회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결박당하고 날카로운 쇠갈고리로 찔려야 한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할 때까지. 코끼리는 체념을 배우고, 살기 위해 자의식을 버려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린 날의 나는 파잔 코끼리 같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가르칠 때, 엄격함으로 우리의 주장을 꺾었다. 버르장머리라는 나름의 저울질에서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날은 초상집을 방불케 했다. 씩씩대며 반항해 보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다락방에 갇히기도 하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밥을 굶으며 투쟁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은 제풀에 나자빠져서 아버지에게 굴복했다.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도 세포들이 긴장하고 마음이 벌렁거렸다. 주변에서는 가정교육이라 했지만 어린 나는 무섭고 힘들었다. 가끔 아버지가 출타하면, 동생들을 모아 독립을 꿈꾸기도 했다. 만세를 외친다고 독립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아버지가 귀가하면 다시 바람 앞에 풀처럼 몸을 낮추었다. 가출을 통해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굴다리 밑에서 오돌오돌 떨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대학교 때, 친구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넌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는 거 같아. 절대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습이 참 이상하다 여겼어.”

맞다. 양말 뒤축이 닳아 없어지도록 땡깡을 부려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패악을 부려도 꿈쩍 않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꾸역꾸역 치미는 내 안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고민이 없는 척 살았다.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파잔 의식을 당한 코끼리가 되었나 보다. 아버지의 파잔 의식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거나 낯선 것은 거들떠보지 않았으니까. 애당초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기면 궁금증마저 가지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생존법이었다. 그렇게 살다가 한 남자를 만나고 결혼을 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생기고 아기코끼리도 생겼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만 앞서가면 좋겠다는 욕심이 슬금슬금 생기기 시작했다. 갖가지 공부거리를 수라상 올리듯 내밀었다. 처음엔 고분고분하던 아들이 엇박자를 놓기 시작했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대놓고 패대기치고 울타리를 들이받았다. 사사건건 나의 뜻과는 정반대로 움직이기로 작심한 듯했다.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조바심이 났다.

삐딱선을 타는 아들과 빼딱선의 잣대를 들이대는 나의 갈등은 내리막을 몰랐다. 아들이 배움의 속도가 느리면 틀릴 때마다 나무라고,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꾸짖고, 잠깐 쉬고 싶다고 해도 윽박질렀다. 때로는 잘 해도 다그쳤다. 아들이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며 투덜대면 쥐어박았다. 배움이란 원래 끝이 없는 거라고 말했다.

아기코끼리는 굴복의 대가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사람을 태우고 걷기를 시작해서 방향잡기, 기다리기를 배운다. 아기코끼리는 두 발로 서는 것부터 사람을 코로 감고 걷기, 통나무 위에 서기까지 익힌다. 하모니카도 불고 그림도 그려야 한다. 심지어 연극도 배워야 한다. 이렇듯 아들에게도 인생이라는 쇼에서 묘기를 부리려면 할 게 많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조금씩 이상해졌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이었다. 아기코끼리의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보였다. 말수는 점점 줄었고 대답은 갈수록 짧아졌다. 사춘기 내지는 생활이 고되어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애써 캐묻지 않았다. 눈치로 살피고 몸짓에서 읽었다. 고분고분해져 가는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적인 파잔 의식이라 여겼다. 어림없는 착각이었다.

아찔한 통보가 날아들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대학생이 된 아들이 자퇴서를 제출한 것이다.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인 곳을 걷어차는 이유가 무어냐며 울부짖었다. 나를 죽이고 서류에 도장을 찍으라며 매달렸지만, 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조금만 견디면 취업까지 보장되는 꽃자리를 박차고 나온 아들의 철없음을 꾸짖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날, 파잔 의식의 훼방꾼이었던 남편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파잔 의식을 당한 코끼리는 자기 의지가 없다.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까먹는다. 그야말로 말 잘 듣는 코끼리가 되어서 도전하는 삶을 포기한다. 파잔 코끼리처럼 뭘 하려는 의지가 없는 아이가 되기를 원하느냐.”

실금으로 쩌억쩍 갈라진 내 마음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엎어치기와 뒷다리 걸기 등 각종 기술을 걸며 승부수를 띄웠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들이 꾸는 꿈을 판판이 깨트렸으니 상처가 아물 새가 없었을 것이다. 너만 아팠냐, 나도 아프다. 어쩌면 파잔 의식을 시행한 아버지도 피해자일지 모르겠다. 나의 영혼도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고 느꼈으니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쓸데없는 다그치던 말을 그쳤을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건 꿈이 없을 때라고 한다. 물에 데친 배춧잎 같던 아들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세계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만 보던 세상이었다. 이제 귀동냥으로 듣고 곁눈질만 하던 무대 속으로 아들이 들어갔다. 나에게 들킬세라 관객석에 숨어서 무대를 감상하던 아들이 훌륭한 배우가 되어 나를 초대하겠다고 한다. 나도 주인공과 함께 무대에 나란히 서서 주거니 받거니 퍼포먼스 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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