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울음

by 하울

모든 인간은 고고성(呱呱聲)을 지르며 태어난다. 울음은 살아갈 일이 걱정스러워 자신을 위로하는 소리라고 하지만 뱃속에서 답답하게 지내다가 탁 트인 곳으로 나와서 활짝 열리는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다. 아기의 첫울음은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는 선언문이다. 삶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는 우렁차게 내질러야 한다. 간혹 누구나 외치는 그 선언서를 낭독하지 않아서 부모의 애간장이 녹을 때도 있다.

나는 스물여덟 살에 임신했다.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 아이를 잉태한 셈이다. 나의 임신을 시댁에 알렸을 때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겐 봄이 되면 싹이 나듯 특별하지도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나 혼자 신이 났다. 제철도 아닌 음식을 사달라고 칭얼대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남편을 골탕 먹일 생각에 속웃음 지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태동이 느껴지도록 입덧은 고사하고 입맛만 좋았다. 피부는 윤기가 반지르르 흘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찾는 음식이라고는 고작해야 찐쌀이었다. 찐쌀이 없으면 생쌀을 한 움큼씩 입에 놓고 우물대는 내 모습에 남편이 먹고 싶은 음식이 없냐고 물었다. 얘 참 웃겨, 밥 뜸 드는 냄새를 먹고 싶다고 하네. 싱거운 대답에 김이 빠진 남편을 위해 연기라도 할 껄 싶었다.

거리마다 캐롤송이 울리던 어느 날, 산기가 있어서 병원에 갔다. 밀물처럼 산통이 찾아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를 서른여섯 시간. 나보다 늦게 온 산모들은 모두 숙제를 끝냈건만, 나만 분만실에 남았다. 딱히 남보다 뒤쳐진 적이 없었건만 출산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학습부진아였다. 그야말로 젖 먹는 힘까지 짜내는 나를 도와 의사는 집게로 태아의 머리를 당기고 간호사는 산모의 배를 누르며 분만을 유도했지만 소용없었다. 급기야 의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의료용 장갑을 벗었다. 하얀 이불로 내 배를 덮으며 태아의 건강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했다. 바퀴 달린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간호사가 아기를 보여주며 오후 두 시 사십 분에 태어났어요. 삼점 오 킬로그램입니다. 이마에 주름이 진 붉은 얼굴, 두 눈을 감은 신생아와의 첫 만남은 어색했다. 세상에 강제로 끌려 나온 게 못마땅한 듯 오만상 찡그리자 간호사는 아이를 데리고 신생아실로 향했다.

일주일 뒤,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고 퇴원했다. 칭얼거리는 기색도 없으니 참으로 순한 녀석이라 생각하며 살폈다. 열 발가락 열 손가락이 마냥 신기해서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아아,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아기의 낯빛이 단풍처럼 붉게 타오르며 손발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분명 울고 있었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병원에서는 늘 자는 모습이었기에 아무런 의심도 없었던 시간을 허둥지둥 되짚어 보았다.

‘의료사고’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담당 의사는 모든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전문용어가 빼곡한 기록을 내밀었다. 태어날 때 분명히 울음소리를 확인했으며 신생아실에서도 별 탈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의 주장에 짧은 상식으로는 더 항의할 수가 없었다.

크고 작은 병원을 가리지 않고 용하다는 병원을 하루에도 두세 곳씩 찾기 시작했다. 정밀검사는 생후 한 달은 되어야 할 수 있다며 막대 자로 발바닥을 세차게 때려 보는 것이 진찰의 방법이라고 했다. 아기는 온몸을 떨며 고통스러워했다. 울지 못하는 아기에게 내려진 추측성 진단은 선천성 성대 장애였다. 앞으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겠다고 했다. 억장이 무너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의사를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아이를 발가벗기더니 사지를 잡고서는 공중에서 떨어트렸다. 울음을 강요하는 부모와 의사 앞에서 반항하듯 아기의 팔다리는 허공을 휘저었다.

엇비슷한 진단 앞에서 나는 몸과 마음이 휘청거렸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다른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하염없이 부러웠다. 아기 대신 내가 울었다. 두려워서 울고, 슬퍼서 울고, 무서워서 울었다. 눈으로 본 것만 믿었던 내가 삼신상 앞에 엎드려 빌었다. 삼신 할매의 삐친 마음을 돌리기 위한 반성문은 구구절절했다. 아기는 부모의 근심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웃고, 잘 잤다. 다만 울음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산후조리는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퉁퉁 부은 얼굴로 눈물을 미역국 삼아 삼킨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아기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젖을 물려도 멈추지 않아서 기저귀를 살폈다. 이건 또 무슨 날벼락인가. 얼굴과 사타구니만 본래의 살갗이고 온몸이 좁쌀 같은 수포로 가득했다. 종종걸음으로 불길한 생각을 누르며 병원에 갔다. 의사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무슨 선고가 내려질까. 업경 앞에서 심판을 기다리듯 조마조마했다.

아기가 혹여 감기라도 들세라 높인 실내 온도가 화근이었다. 요 위에 눕히고 이불까지 두툼하게 덮어 키웠으니 오죽했으랴. 엄마 노릇이 처음이니 매사 어설펐다. 수많은 물집을 바늘로 하나하나 찔러서 터트려야 하니 엄마는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아기가 견뎌야 할 고통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또 울었다. 지친 아기가 내 품으로 돌아왔다. 끔찍한 아픔을 잊지 못한 것일까. 가녀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있었던 일을 고자질이라도 하듯 울기 시작했다.

분명히 평소의 울음과 달랐다. 내 귀에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작은 바람소리 정도로 가늘었다. 간호사는 이걸 울음소리라고 하느냐며 비웃듯 대답을 피했다. 나는 혹여 환청이 아닐까 의심하며 다시 귀를 세웠다. 실낱같은 소리였으나 나에겐 우레와도 같았다. 심 봉사가 딸을 만나고 눈 뜨는 순간이 이보다 감격스러웠을까. 모세의 기적 같은 현실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산도(産道)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 목에 가해진 압박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어느 의사의 진단이 옳았다. 아들은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바늘의 공격 앞에 최선을 다해 울었을 것이다.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나날이 아기의 울음소리는 커졌다. 그때마다 나의 울음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아들과 함께하는 울음은 아름다운 합창이 되었다.

그때 흘린 눈물로 인해 낙동강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겠지. 그 이후로 나의 눈물샘은 잠금장치가 고장 났다. 남의 결혼식에 가서도 눈물을 글썽이고, 우는 사람을 보면 따라서 훌쩍거린다. 그래서일까. 삶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과도 같은 첫울음에 애면글면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해진다. 기적 같은 울음을 터트렸던 그 아이가 가정을 이루던 날, 나는 우황청심환으로 눈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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