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

by 하울

아들이 무시로 희한한 소리를 하며 내 속을 뒤집었다. 친구들이 왕따를 시킨다며 학교생활을 두려워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며 외출을 꺼렸으며, 위층의 감시망을 끊어야 한다며 공공 인터넷망을 훼손했다. 정신을 차리라며 멱살을 잡고 흔들었지만 증세는 점점 나빠졌다. 휴학과 복학을 서너 번 반복하다가 결국 대학교를 자퇴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절벽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엔 아들의 병증을 염려하기 보다는 세상의 이목이 두려웠다.

정신과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약물을 처방하고 육개월 정도 치료하면 된다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꼽아 기다렸으나 병세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아들은 채널링을 운운하며 약물 복용을 거부했다. 요즘말로 ‘테스형 아들이 왜 이래’였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아들의 멱살을 붙들고 이리저리 다녔다. 기수련을 비롯하여, 용하다는 도사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부처님과 하느님에게 양다리 걸치기도 서슴지 않았다. 조상님의 삐뚤어진 마음을 달래보자는 말에 천도제도 치렀다. 임금님 수라상이 이보다 화려했을까. 아들의 치유를 위해 진심을 다했지만 호전되지 않는 아들은 나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연꽃이 흐드러진 계절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들이 이상했다. 온 몸이 뻣뻣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날뛰었다. 뱀파이어가 나타났다며 무섬증에 시달렸다. 결국 폐쇄병동에 강제입원을 시켰다. 쇠창살에 갇혀 제발 퇴원시켜 달라며 무릎 꿇는 아들의 모습 앞에 피눈물을 삼키며 삼십 일을 꼬박 채웠다.

병원 문을 나서며 굿판에 아들을 세웠다. 영가를 천도하는 방면에서 대한민국 최고라고 했다. 온 마음을 다했지만 또 헛수고였다. 나의 희망은 하현달처럼 매일 조금씩 삭아 내렸다. 환청에 시달리는 아들과 병증을 눈치로 살피는 나의 신경전은 날마다 팽팽했다. 어르고 달래며 애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적을 호언장담하던 푸닥거리들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경험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어쩔 수 없이 운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병은 날아와서 기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환청은 끈질기게 아들을 따라다녔다. 눈만 뜨면 시작되는 비난성 환청과 사사건건 간섭하고 잔소리로 일관되는 환청에 휘둘리다보면 심장이 아프고 모든 장기들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는 아들의 호소에 나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꼬박 일 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프다며 칭얼대기에도 민망한 시간이 흐른 듯 싶었다. 길거리에 나서기 조차 꺼리던 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했다. 정신재활센터에 나가서 각종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동료지원가’라는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있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약물복용에도 긍정적이다. 나 또한 동동거리던 맘을 멈추니 보이기 시작한다. 아들이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느님은 인간에게 빵과 돌멩이를 함께 던진다. 돌멩이를 맞고 어쩔 줄 모르던 나와 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그 돌멩이로 집짓기를 도우시는 모든 이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나는 세월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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