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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수필로 가는 길

(만학도 평생학습 수기 전국공모 ‘2022 달구벌 문예대전 입선')

마음이 엇비슷한 동료들과 모임을 오랜만에 가졌다. 그동안 어찌 지냈냐며 안부를 묻자, 누구는 수려한 산천을 풍경화 삼아 여유를 즐긴다는 사람도 있고 땅 일구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도 있었다. 말이 전원주택이고 농사지 생고생이라며 앞으로 여행이나 다니며 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집 지을 터도 없고 농사지을 땅 한 평 없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할 뿐이었다. 텃밭을 분양받아 쑥대밭을 만든 경험으로 보면 농사일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시간이 있다. 연이어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이 마음을 가장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표현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취미생활 한두 가지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탁구도 쳐 보고 수영을 다니기도 했다. 플룻도 불고 기타도 쳐보았다.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좋은 활동들이지만 여기저기를 기웃거릴 뿐, 통 마음을 두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잘도 고르건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가 나에게 쓰는 반성문은 나무람과 위로를 넘나들었다. 인내심이 부족한 탓일까? 독서나 공부할 때, 대여섯 시간을 꼼짝하지 않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니다. 가슴에 대고 물었다. 영혼의 곳간이 비었을 때 무엇으로 채우느냐. 수시로 기웃거렸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뒷전에 밀려나 있던 글쓰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수필이 저만치서 나에게 손짓했다.‘붓 가는 대로 쓰는 글, 신변잡기의 내용, 형식이 없어도 된다.’고하기에 주막집 들르듯 발 들였다. 앗! 나는 거꾸로 매달렸다. 죄목은 수필을 만만히 보았던 나의 불량함이었다. 이리 밀리고 저리 쓸리며 생각 없이 살아온 게 원인이었다. 일상에서 보고 들은 슬픔과 괴로움은 창고에 넘쳐났지만 꿰는 방법을 모르니 갈팡질팡 이었다.

수필 공부 평생학습에 나를 매달기로 맘먹었다. 그렇지만 어디로 누구를 찾아가야할지 막막했다. 퍼뜩 큰 깨달음을 얻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훌륭한 스승과 더불어 공부할 친구, 적절한 공간이 그것이다. 글쓰기라고 다르겠는가. 이 세 가지 조건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드디어 엇비슷한 무게와 빛깔의 문우들이 모인 평생학습장을 찾았다. 그들과 서로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맘이 두근거렸다.

수필이라는 텃밭을 일구기 위해 우리는 함께 호미를 들었다. 묵정밭에서 자갈을 골라내고 씨앗을 심기 위해 서로의 바지랑대가 되어 주기로 약속했다. 그렇지만 나의 글은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툭하면 쓰러졌다. 찰기 없는 국수처럼 씹히는 글맛이 밋밋했다. 씨실과 날실로 옷감을 짜듯 경험과 사유를 엮어 보지만 산통만 겪을 뿐이었다.

내 글은 생생함도 없고 타고난 문장력도 없었다. 감동은 고사하고 성글고 뒤틀린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결국 글은 심(心)정지를 일으켰다. 다만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만은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천 길 물길을 따라 떠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물길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바닥을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무릎을 꿇었다. 글쓰기는 멀리하면 그리움으로 멀리서 손짓하고, 그리워서 새살거리며 다가서면 좌절감을 안겨주는 연인 같았다. 두어 번의 만남과 헤어짐은 나의 뜨거운 고해성사요, 명상과 수행의 과정이었다.

감정을 쏟아낼 해우소가 필요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을 쓰며 울어보라. 죽도록 술을 마시기도 해 보지만 그대로다. 삶에 맞서는 방식은 수없이 많지만 요란스럽지 않은 자기 정화 활동으로 글쓰기만한 건 없다. 그렇기에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는 글이 될지라도 사색이라는 끝없는 길을 나선다. 경험이라는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가만가만 다가서려 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삶에서 보석 같은 가치를 캐기 위해 세상을 눈여겨볼 것이다. 가끔은 엉뚱한 발상도 해 볼 일이다.

바랑에는 그저 연필 한 자루와 공책 한 권이면 족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쉬엄쉬엄 토우 같은 글을 쓰고 싶다.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다. 찰흙으로 주물럭거려 만든 조소에 불과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단순함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력과 낭만과 여유를 형상화한 토우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 슬픔과 사랑을 품은 토우의 모습을 수필의 표정에 담고 싶다. 토우를 빚어낸 이름 없는 도공의 마음처럼 풋풋하지만 싱그러운 일상을 그리고 싶다.

우리가 괴로움과 울음을 흘린다고 불행한 인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 가슴에 고인 구정물을 퍼 올려서 흘려보내야 맑은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다. 혼자서는 해내기 힘든 일에 서로를 다독이고 시들거리는 맘에 정화수를 부어 싹이 돋아나도록 해야겠다. 뽕잎을 먹은 누에가 명주실을 토해내듯 글을 쓰고 우리의 삶을 진솔하게 풀어낼 것이다.

이제 가을이 오려나 보다. 나무는 성냥개비의 화약처럼 단풍을 틔우려 긴 숨을 모으고 있다. 우리도 호흡을 모으고 힘찬 발걸음을 위해 연필을 움켜잡는다. 기나긴 추위와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고 나면 따스한 기운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봄과 달리 가을은 스산한 바람으로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고도 한다. 우리도 평생학습을 통해 삶의 무게를 이기며 고통을 홀가분하게 훌훌 날릴 것이다.

삶의 두레박질을 멈추라는 하늘의 명이 내려질 때, 생사를 연결하는 길목에 남기는 흔적으로 글만큼 값진 게 있을까. 내 마음의 사금파리로 엮은 수필집을 안고 귀천 길에 나서길 소망하며 오늘도 평생학습장을 향한다. 이제 동료 모임에 나가면 나도 글밭 일구는 자랑을 하련다. 풀꽃 같고 들풀 같은 글을 맛이나 보라며 한 움큼씩 쥐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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