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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K와 존 내쉬



‘존 내쉬’는 기존 게임 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렸다. 하지만 그는 오십 년 동안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 고비의 순간에서 허둥대는 K를 볼 때마다 ‘존 내쉬’를 떠올리는 것은 무슨 상관관계 때문일까.

“큰일 났어요. 학생이 학교 앞 육교에서 쓰러졌습니다.”

전화를 받은 때는 출근해서 자리에 막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허둥지둥 달려가니 교복 차림의 아이가 온몸이 빳빳하게 굳은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콧날이 오뚝하고 볼이 탐스러운 우리 반 K였다. 잠시 뒤에 부모와 119 구급대원들이 달려왔다.

평소에 K는 지나칠 정도로 착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아이들에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열에 아홉이 가정에 뿌리를 잇대어 있곤 했다. 하지만 수학 시간에는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며 활기찼다. 부러움에 질투심이 양념처럼 살짝 뿌려진 친구들의 감탄을 한 몸에 받으면 ‘별것도 아닌데’라며 단발머리에 숨겨진 두 볼이 발그스름했다.

한 달 전, 교무실을 향해 가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K가 따라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조만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 여겼다. 이공계 분야에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영재반 수업은 물론이고 전국 단위 수상을 휩쓸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K의 아버지가 학교를 방문했다. 딸의 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왔겠지 싶었다. 간이 의자를 권하며 집에서도 예쁜 짓만 하는 딸이냐고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K가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투덜댄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또래보다 앞서갔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주석이 붙었다. 나름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철책이 뚫린 느낌이었다. 담임만 모르는 음모를 교실에서 작당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더구나 학교와 교사에 대해 민망한 욕지거리까지 한다니 뒷목 잡고 쓰러질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물음에도 ‘괜찮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웃음만 지었던 K가 이중적이었단 말인가.

허둥대는 내 맘과 달리 아버지는 덤덤한 낯빛이었다. "우리 K가 어릴 때부터 워낙 똑똑해서 집안의 기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면서도 딸의 일대기를 읊조리는 목소리는 당당했다. 학교생활은 ‘이상 없음’이라는 확인도장을 받은 아버지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유심히 살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나의 대답을 끝으로 교무실을 나서는 아버지를 향해 조심스레 권했다. 교내 상담실과 연결해서 K를 살펴보자고. 아버지는 그럴 필요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면서 딸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일본으로 부모동행학습을 떠났던 K가 돌아왔다. 한결 밝아진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였다. 사달은 수학 시간에 났다. ‘퍽’ 소리와 함께 지민이가 쓰러졌다. 나는 때마침 옆 교실에서 수업하다가 비명에 놀라 달려갔다. K를 양호실에 눕혔다. 보건 교사는 차분하게 K의 과호흡 상태를 진정시켰다. 부랴부랴 달려온 부모는 정신과 진료를 조심스레 권하는 양호교사에게 불쾌감을 드러냈다. 상담 일지를 보여주어도 소용없었다. 내 자식은 내가 알지 당신들이 어찌 알겠냐는 식의 몸짓이었다. K의 증세가 가족의 심한 기대와 자식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육교 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행인들은 재미난 장면인 듯 기웃거렸고 K는 엄마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고 등굣길에 바쁜 학생들을 가리키며 뱀파이어들이 몰려오고 있다며 부들부들 떨었다. 급기야 정신 차리라고 고함치는 엄마를 육교 난간으로 밀쳤다. 아찔한 순간에 구급대원들이 K를 범죄자 체포하듯 붙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K를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진단을 받았고 입원 치료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교실로 돌아온 K는 미소가 줄고 살집만 늘었다. 치료 약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나는 K의 병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지면 상처의 깊이를 알 수 있지만, 뇌는 도대체가 오리무중이다. 발병원인도 두리뭉실하고 증상과 치료방법도 딱 떨어지는 공식이 없었다. 당사자에게 맞는 약을 찾는데 최소 육 개월 이상이 걸린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진짜, 치료약은 무엇일까.

점심시간, 산책 삼아 운동장을 걸었다. 햇살이 좋은 벤치에 뒤태가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이 옆에 앉아도 될까. K는 ‘네’라는 짧은 대답을 반복하고 슬픈 웃음만 지었다. 등을 어루만지며 살며시 손을 잡았다. 냉골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올라오려는 순간에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 땜에 죽겠어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환청의 내용은 주로 부모가 자신의 행동에 간섭하는 내용이라고 했다. 공부하고 있으면 ‘그래 가지고 대학이라도 가겠나? 더 열심히 해야지’하기도 하고 어쩌다 수학 문제를 못 풀면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는다고 했다.

“저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이러다가 진짜 대학교도 못가면 어쩌죠?”

그날, 나는 설득 대신 K의 가방에 DVD 한 장을 넣어주었다. 뷰티풀 마인드. 조현병으로 인해 점점 황폐해져 가는 ‘존 내쉬’의 영혼과 그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사랑과 감동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다.

나는 종례 시간마다 K의 손을 힘 있게 잡아주고 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었다. 그때마다 말해 주었다. 증상이 괴롭기는 하겠지만 증상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위장에 탈이 나면 소화제를 먹듯이 너는 지금 뇌가 아파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거야.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너의 선택과 결심에 달렸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않아도 좋아. 너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삶,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을 살면 되지 않을까?

K를 보면서 사람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와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 것 같았다. 정신 장애로 인해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아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과 만나는 K에게 슬며시 말했다. 처칠이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라고 불렀듯이 환청에게 친근하고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붙여보자고. 어떻게든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살짝 들뜬 목소리로 ‘존 내쉬’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세상이 위인이라 부르는 인물 중에는 정신 장애를 지닌 사람이 많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우여곡절도 많겠지만 오히려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독특한 방식으로 사물을 연결하여. 훌륭한 과학적 발견을 가져오기도 하고 걸출한 문학작품을 낳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그 명단을 포스터로 만들어 학교 복도에 게시해 놓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K가 그 포스터에 포함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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