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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낙엽의 향기


<1>묵은 낙엽과 새 낙엽이 어우러져 풍기는 산 공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 머리가 맑아졌다. 낙엽 태우는 향을 상상하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음이 저절로 나른해졌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낙엽이라는 조건에 대한 나의 무조건 반응은 여고 시절에 형성되었다. 국어 시간에 '낙엽을 태우며'의 한 구절을 암송했고, 낙엽만 뒹굴어도 우리는 자지러졌다

<2>낙엽이 나뭇잎의 죽음이라면 낙엽을 태울 때 옷자락에 스미는 냄새는 왜 향기로울까. 과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육신은 불길 속에서 어떤 향기를 풍길까. 낙엽처럼 향기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향기를 풍기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서 올라오는 생각들 끄트머리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다.

<3>아버지는 꼬박 일 년을 중환자로 사셨다. 서서히 육신을 하나둘 의료기에 맡기더니 급기야 의식마저 잃고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서 일어나서 예전처럼 호통도 쳐 보세요"라고 하자 아버지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셨다. 마치 나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는 의식이 없는 환자도 하품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할 수 있다며 의미를 두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의 상태는 더 나빠졌고 의사는 사망을 선언했다.

<4>아버지의 몸에 달린 기계들을 떼는 동안, 나는 밖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마치 어미의 몸과 분리하기 위해 아기의 탯줄을 자르듯 아버지는 이승과의 인연을 자르는 중이었다. 칠순잔치를 삼 년 앞둔 아버지는 가장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하고 그렇게 떠나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우주의 시간을 일 년으로 축소했을 때 인류는 단 1초, 지구의 시간을 하루로 줄이면 인간의 시간은 겨우 56초라고 한다. 찰나를 살다가 다시 영원으로 돌아가는 나의 삶은 물거품같은 것이란 말인가.

<5>그 생각도 잠시였고 문상객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삼 일의 시간은 후다닥 지나갔고, 당신이 일찌감치 마련해둔 자리에 모셨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중절모가 있었다. 아버지가 환갑을 맞았을 때 내가 사드린 선물이었다. 여태 상표도 떼지 않은 걸 보니 아끼신 흔적이 뚜렷했다. 나는 그 모자가 아버지인양 부둥켜안고 울었다.

유품 가운데는 스프링 공책 한 권이 있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에게 내가 사드린 공책이었다. 병증이 진행될수록 아버지는 스스로를 집안에 가두셨기에 무료함도 달랠 겸 낙서장 삼으라고 건넸던 물건이었다.

<6>첫 장을 열자 국한문혼용체의 손 글씨가 단아하게 사연을 담고 있었다. 약자 내지는 초서체로 쓴 한자가 절반을 차지하는 문장들이었다.

'서기 2003년 1월 24일 목요일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아내가 점심으로 떡국을 먹자고 했다. 저녁에는 자녀들과 함께 외식하니 기분전환이 되었다. 손자들과 함께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내린 눈으로 길바닥이 얼었다. 이 몸은 언제쯤 과거와 같이 가볍게 걸을 수 있을지. 근육이 사라지고 힘이 자꾸 빠지니 참으로 이상하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애비가 될까 두렵다. 생각하니 괴롭다. 눈 내리는 고향을 떠올리며 창밖을 보니 다분히 우울하다. 그 옛날, 눈 오는 날 저녁이면 무와 배추뿌리를 먹었는데 돌아보니 행복한 시절이었다.‘

<7>그날그날 드신 음식과 복용한 약의 이름까지 사관이 역사를 기록하듯 적으시고 인상적인 장면은 그림까지 그렸으니,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도 사기를 기록한 정신과 무엇이 다르랴. 아버지는 그렇게 반년을 기록한 공책을 유품으로 남겨 나에게 돌려주셨다. 뒷장으로 갈수록 아버지의 글씨는 떨고 있었다. 문장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적힌 문구를 끝으로 아버지의 기록은 끝났다. 공책의 뒷장들은 아버지가 나에게 남기신 숙제처럼 텅 비어 있었다.

<8>아버지의 공책은 추억이라는 향기를 풍기며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좋은 향기와 아픈 향기가 엉켜있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짠한 마음이 앞섰다. 평생을 직장과 집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살았으니 퇴직 후에는 인생을 좀 즐기면 좋으련만 스스로 굴레를 씌운 분이었다.

<9>어느 시인이 성탄제 가까운 눈 내리는 도시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을 느꼈다면 나는 낙엽을 밟으며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남기신 향기가 내 안에 흐르듯 나의 향기는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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