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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Aug 22. 2023

냉장고 단상

<1>떠나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을 살다가 왈칵 쏟아지는 눈물로 그 빈자리를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떠나 보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2>아침밥을 지으려고 부엌에 들어서니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얼마 전부터 요실금 증세가 살짝 보였지만 설마 그러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맘이 급해졌다. 뒷수습을 어떻게 할까.

'십수 년을 밤낮으로 일했으니 탈이 날 때도 되었지. 진작에 보살필걸.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밀어 넣기만 했으니.'

냉장고가 탈이 난 것이다.

<3>허둥지둥 문짝을 열었다. 녹아내리기 직전의 빙하처럼 해동의 기미가 뚜렷했다. 검은 비닐봉지가 하나같이 두루뭉술한 형태들이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크기가 다를 뿐이었다. 원래의 모습은 알 수가 없었다. 냉동실 문을 무심코 열었다가 수시로 발등을 찍었던 덩어리들이었다.

<4>먼저 바다가 쏟아져 나왔다. 작년 겨울에 법성포에서 갔다가 사 온 굴비, 제주수협에 근무하는 친구가 보낸 고등어, 지난 명절 때 남겨둔 명태포. 토굴에서 삭혔다는 새우젓. 어쩜 이토록 많은 먹거리를 끼고 살았을까. 이번에는 들판이 펼쳐졌다. 마늘과 고추, 다진 생강, 파, 삶은 시래기, 고구마 줄기, 고춧가루, 홍시, 있는지조차 몰랐던 초피까지 향을 풍겼다.

<5>서비스 기사가 냉장고를 이리저리 살폈다. 냉동 칸은 여유 공간을 조금 남겨야 하는데 냉각기를 음식을 싼 비닐들이 틀어막고 있어서 탈이 난 것이라고 했다.

"살릴 방법이 없을까요?"

"사람으로 치자면 뇌사 상태입니다. 십여 년을 일했으니 떠날 때가 되었지요."

기사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 큰 덩치를 혼자서 끌어내더니, 나를 불렀다.

"냉장고가 이제 집을 나섭니다. 이 냉장고로 아이들도 다 키워내고 대소사도 치렀을 겁니다. 주야로 고생한 이놈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시지요."

'다 키워내고'의 '다'를 길게 빼며 구성지게 말하는 모습은 상여꾼이 의식요를 부르는 것 같았다.

<6> 냉장고가 앉았던 자리의 묵은 때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순간, 걸레질을 멈추었다. 갑작스런 요구에 머뭇대는 나에게 기사는 애도사를 재촉했다. 가전제품 기사들은 장례의식을 따로 교육받는 것일까. 어찌나 자연스럽게 장의사 노릇을 잘하는지. 나는 어줍잖은 *곡비가 되어 냉장고의 뒤를 따랐다. 떠나 보낸다는 것에 대한 상념에 빠지면서 노랫말 한 자락이 생각났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를/나 가고 기억하는 이/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7>'쾅'

냉장고와 현관문이 부딪혔다. 냉장고의 무게를 혼자서 감당하던 기사가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제 자리를 떠나는 물건의 마지막 외침 같았다. 승강기 문이 닫히고,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는 차츰 줄어들었다.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타인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은 부모 내지는 의사, 친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은 장담할 수 없다. 왜 그럴까.

<8>싱싱한 신제품을 기다리며 김치냉장고의 작동상태를 살폈다. 와인 냉장고, 화장품 냉장고까지. 이제 또 무슨 냉장고를 더 들여놓을까. 그런데 냉장고가 커질수록, 먹거리가 넘칠수록 왜 나눔을 외치는 소리는 커지는 것일까.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이 음식을 쌓아 놓고 혼자 먹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이웃 사람들의 배가 냉장고였다. 내가 있을 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눠 주면 그 사람들이 언젠가 음식이 생겼을 때 내 몫을 챙겨오는 것이다.’

냉장고의 등장이 나눔의 마음에 빗장을 걸었다는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9>어느 날, 옆집에서 부침개를 두어 장 담아왔다. 텃밭에서 기른 부추에 청양고추를 듬성듬성 섞어서 만들었다며 맛이나 보라고 했다. 그것이 마중물이 되었다. 떡은 부침개로 변하여 돌아왔고 열무김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열무김치를 얻어먹고 나니 배추겉절이를 버무릴 때 나누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맛난 음식을 나눠 받으면 비슷한 음식을 먹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먹거리가 생기면 나누고, 간단한 고민거리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마음도 나누고 음식도 얻으니 꿩 먹고 알 먹은 셈이다.

*곡비 ; 양반의 장례 때 주인을 대신하여 곡하던 계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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