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당탕.’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골반이 욱신거리고 손이 아팠지만, 누가 볼 새라 잽싸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가 아니었다면 바닥에 나동그라진 원숭이 꼴이 되었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강당의 가장 외진 자리였기 망정이지 입방아에 오를 뻔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쿠,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2>평소에 '운동은 인생 최고의 재테크'라는 구호를 외치고 다니는 동료였다. 나이가 들수록 균형 잡기를 잘해야 한다며 나에게 밸런스 보드를 권했던 사람이다. 서 있기만 해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코어 근육이 자극되어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귀가 팔랑거렸다. 그의 멋진 시범은 내 맘에 불을 질렀다.
<3>쇼핑몰에서 밸런스보드를 주문했다. 어깨 폭보다 한 뼘 정도 넓은 나무판은 또 다른 원통형 받침대와 한 세트였다.
'내가 과연 탈 수 있을까?'
'설마 몇 초는 버틸 수 있겠지'
먼저 받침대 위에 밸런스 보드를 올린 뒤, 한 발을 올리고 다른 발을 반대편에 올리면서 중심을 이동하면 된다. 말이 쉽지. 보드 위에 올라서는 일은 만만치가 않았다. 힘이 조금만 한쪽으로 쏠려도 휘청대며 기울었다.
'이게 뭐 운동이 되겠어?'
보드를 얕보았던 내 마음은 거꾸로 매달렸다. 짧은 시간에도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는 내 모습이 널뛰기 하는 것 같다며 가족들의 키득댔다.
<4>오기가 생겼다. 될 때까지 해보자. 아침저녁으로 밸런스 보드에 올라섰다. 호흡을 고르고 다리에 힘을 주면서 중심을 맞추려고 마음을 모았다. 한쪽으로 기울면 그 반대쪽으로 살짝 몸과 마음을 옮겼다. 그러자 짧았던 시간이 차츰 길어지기 시작했다.
"몸의 중심잡기는 밸런스 보드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중심을 잃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뒹굴게 되니까요. "
동료의 말을 귀에 담고 힘을 주고 빼기를 반복하다가 온 몸을 보드에 맡겼다. 취권을 하듯 허공에서 흔들리는 내 몸은 아름답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이렇듯 편안해지는 것이구나.'
<5>나의 글도 그렇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안아준다. 졸라대지 않고 먼발치에서 기다려준다. 그러다가도 땡볕 아래 허덕이면 슬그머니 다가와서 그늘이 되어준다. 나의 글 창고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뒤숭생숭하다. 아련하기는 한데 진부한 글이 있고, 참신한데 억지스러운 글도 있다. 내 글은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까. 함께 끄덕여 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건 아닌지, 혹여 관심을 끌겠다고 기저귀를 차고 대낮에 뛰어다니는 꼴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펜을 잡고 힘을 준다.
모니터에 글을 쓰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한다. 글들이 나에게 소곤댄다.
"밸런스 보드처럼 꾸준히 연습하면 너의 글도 균형 잡는 날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