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 남자는 불량품’이라는 책을 읽었다. 한때 가정이 깨어질 위기에 처했던 데이비드 머로우가 상담과 치유 과정을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았고, 그 안에서 남자의 창조 원리와 속마음을 낱낱이 밝히고 있는 책이다. 세계적인 남성 사역자인 작가가 말하는 남성은 다음과 같다.
‘뜬금 없이 버럭 화내고 사고 치는 남자, 과정은 뚝 자르고 결과만 말하는 남자, 끊임없이 예쁜 여자를 곁눈질하 남자, 소파에 누워 멍하니 TV만 보는 남자. 도대체 남자는 왜 그럴까? 하지만 여자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남자는 배 속에 있을 때 뇌가 손상된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불량품’인 셈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여자와 ‘불량품’ 남자가 만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2>내가 생각했던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정상적인 여자와 남자가 무지갯빛 처마 밑에서 시작하는 것인 줄 알았다. 여자가 밥을 지으면 남자는 밥상에 수저를 올려 밥상을 완성한다. 여자가 설겆이를 하면 남자는 청소기를 돌린다. 말수가 적지만, 속 깊은 남자와 눈웃음이 예쁘고 재바른 여자가 그렇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3>드디어 직장을 구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나는 '올바른 씨'를 꿈꾸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대한 막연함도 있었지만, 결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고 따뜻해졌다. 아지랑이 같은 것이 마음 한쪽에서 하늘하늘 피어났다.
<4>아뿔싸!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는가. 필름으로 가려진 액정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지 않은 나의 잘못이지. 애초에 원했던 제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야말로 A에서 Z까지 모조리 달랐다. 여자는 국이 없으면 밥알이 목구멍에 맴도는데 남자는 조림 반찬을 좋아했다. 여자는 국수가 술술 넘어가서 좋은데 남자는 구역질이 나서 싫다고 했다. 여자는 꼼꼼하게 둘러보고 소비하는 쇼핑형인데 남자는 건성건성 대충이었다. 여자는 에어컨을 켜면 냉방병에 시달리는데 남자는 에어컨이 없으면 우리에 갇힌 사자처럼 안절부절이었다. 여자는 불필요한 전력 소비를 딱 싫어하는데 남자는 찢어질 듯 밝은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직성이 풀렸다.
<5>여자는 타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뒷담화도 해보고 대놓고 삿대질도 해 보았지만, 개조는커녕 개선될 기미조차 없었다. 여자의 잣대로는 구제 불능의 불량품이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가 여자에게 퍼온 글 하나를 보냈다. 자기변명의 고백인가. 아니면 애교 섞인 사과인가.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고급으로 만들어졌다. 재료부터 다르다. 남자는 흙이요 여자는 뼈다. 그러니까 여자가 훨씬 더 고급품이다.
남자는 혼자 살면 곧 폐인이 되지만, 여자는 혼자서도 짱짱하게 잘도 산다. 아무리 봐도 남자는 불량품, 여자는 고급품임이 맞다.’
<6>여자와 남자가 만나 살아온 지도 삼십 년이 훌쩍 넘었다. 여자는 별것 아닌 일에도 슬퍼졌다. 또 왜 혼자 생고생 다 하며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한겨울에도 미니 선풍기를 품에 안고 하루 종일 하품에 묻혀 살았다. 그러니 분명히 말했건만, 딴생각을 했는지 못 들었다는 여자의 억지에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어디 그뿐인가. 반기지도 반갑지도 않은 병들을 데리고 오는 통에 남자는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7>비틀거리는 여자가 안쓰러워서 남자는 집안일에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살림살이 배우는 걸음마가 일취월장이었다. 청소는 기본이요, 빨래, 분리수거까지 완전학습의 수준까지 올랐다. 시절이 좋아진 것인가. 사고방식이 달라진 것인가. 요즘, 여자의 눈에는 불량품으로 변한 여자와 살아가는 남자의 모습이 훨씬 평화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