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울 Aug 22. 2023

아홉산 숲에서 만난 솔방울​


아홉산 숲 입구에 섰다. 아홉 개의 봉우리에서 따온 이름으로 남평 문씨 일가가 무려 9대에 걸쳐 지켜온 그리고 지키고 있는 숲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가는 난리를 피해 옮겨왔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조용히 길을 걸었다. 산새 소리를 벗 삼아 걷다 보니 금강송 군락이 솟을대문처럼 위엄있는 자태로 서 있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우리나라 산의 소나무들은 대부분 상처가 있는데, 나를 굽어보고 선 소나무들은 상흔 하나 없이 매끈했다. 그 이유가 안내 표지판에 있다. 태평양 전쟁을 치르느라 수탈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도 종택은 놋그릇을 숨기는 척 짐짓 들켜 빼앗기는 척, 대신 지켜낸 나무들이다.

하늘로 치솟은 금강송은 수령이 사백 년이 넘은 보호수라는 말에 나무 곁으로 바짝 다가선 한 남자가 물었다.

“소나무 암꽃을 본 적 있는가?”

같이 온 사람들 중 ‘회장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발끝으로 떨어진 솔방울을 툭툭 찼다.

“이 사람아, 여기 있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핀다. 가능한 자기 나무의 수꽃가루를 받지 않기 위해 암꽃은 수꽃 윗부분에 위치한다. 꽃이 피는 시기도 수꽃이 먼저 피어 꽃가루를 다른 나무에 전하고 난 후에야 암꽃이 다른 나무의 송화가루를 받도록 진화했다. 근친상간을 피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가진 씨를 맺어, 다음 세대에는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한 소나무 나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소나무는 자식을 곁에 두는 법이 없어. 멀리멀리 떠나 보내지.”

산림욕에 취해 따라 다니던 내 머리통이 회장님의 한 마디에 화들짝 놀랐다.정말! 소나무 씨앗은 날개를 달고 있다. 바람을 타고 새로운 땅을 향해 멀리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세상의 어미들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거칠어지는 제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씨앗을 품는다. 꽃은 뱃살이 터지듯 살갗이 갈라지는 통증을 이겨내며 아이들을 길러낸다. 솔방울은 꽃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어미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뼈마디가 부서지는 통증과 가쁜 숨결의 시간이 필요하다. 산도가 열리는 고통을 겪지 않는 어미가 어디 있으랴. 솔방울의 앓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어느 건조한 날, 어미의 산통으로 비늘조각이 열리면 아이들은 하나둘 길을 나선다. 마지막 아이마저 떠나보낸 솔방울은 텅 빈 몸으로 땅에 눕는다. 성글어진 몸으로 소나무 갈비 위에 누운 솔방울에 눈길이 갔다. 씨앗이 머물렀던 빈자리가 앞니 빠진 잇몸처럼 엉성했다. 그 자리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우리는 자신의 날개를 믿지 못하고 떠나기를 주저하는 아이 내지는 다 자란 아이들의 날개를 여물지 못했다며 보내지 못하는 어미는 아닐까.

천 길 벼랑 끝 백 미터 전이다.

신이 나를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과 그러시나?

십 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그만두시겠지.

십 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으거야.

벼랑 끝, 아니야, 신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테니까.

그러나 신은

벼랑 끝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아!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내 남자는 우량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