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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Oct 15. 2023

기성댁의 손칼국수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자박자박 내린다. 이렇게 마음이 젖는 날은 고르게 칼질한 국수 한 그릇을 상에 내고 싶어진다. 우선 뽀얀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반죽을 시작한다. 온몸의 무게를 실어서 덩어리를 치대자 반죽은 더욱 찰지게 반질해진다. 제법 탄력 있는 모양은 그럴싸하지만, 이제 막상 어떻게 밀어야할지 막막하다. 우두망찰하고 있자니 기성댁이 국수를 밀던 풍경이 떠오른다. 

  기성댁은 국수 안반과 홍두깨를 보물처럼 갈무리했다. 안반은 손국수를 밀 때 쓰이는 받침으로 넓고 두꺼우며 길쭉한 나무판이고, 홍두깨는 국수를 밀 때 쓰는 긴 나무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이 둘이 용달차에 제대로 실렸는지 야물게 살피곤 했다. 가족들과 뜻이 갈린 날엔 말없이 무거운 안반과 오동통한 홍두깨를 다락방에서 꺼냈다. 분위기가 냉랭해도 동생과 나는 흥이 돋았다. 국수를 썰다 남은 '꼬랑대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성댁은 무거운 놋 양푼에 콩가루와 밀가루를 적당히 섞었다. 한참 힘주어 치댄 반죽을 안반에 놓고 돌려가며 밀어내면 중간은 봉긋 솟아오르고 가장자리는 펑퍼짐해졌다. 기성댁의 손이 반죽에 감긴 홍두깨를 쥐고 앞으로 굴리다가 손을 좌우로 ‘쓰윽쓱’ 몇 차례 움직였다. 반죽은 홍두깨에 둘둘 감겼다가 보자기처럼 펼쳐질 때마다 쑥쑥 커졌다. 후레아 치마보다 넓은 원형으로 변신하는, 그야말로 마술이었다. 

  이윽고 요술 부리듯 늘어난 반죽이 안반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가 되면 이번에는 반죽 위에 밀가루를 술술 뿌렸다. 그것을 손바닥 넓이로 여러 겹 접어 송송송 칼질을 하시던 기성댁, 길쭉하던 반죽이 차츰 줄어들고 기성댁의 칼질이 끝날 무렵이면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칼이라도 더 국수를 뽑으려는 기성댁과 큼직한 간식거리를 얻으려는 나의 조바심은 신경전을 벌였다. 그만 칼질을 멈추기를 바라며 소리쳤다. 

  “그만, 이제 그만 썰어.”

  결국, 기성댁은 못 이긴 척, 꼬리를 잘라주며 덤으로 보태는 말이 있었다. 

  “꼬리 부분 먹으면 머리가 나빠져서 학교공부 꼴찌 한다.”

  그래서였을까. 생선의 꼬랑대기나 과일 꽁댕이는 늘 기성대 몫이었다. 대가족의 저녁거리가 모자랄까 걱정하던 기성댁의 그 말이 나에겐 고민의 대상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어야 할지 머리가 좋아지기 위해 포기해야 할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먹을까 말까. 은근한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밀가루 반죽의 향기 앞에서 고뇌했던 기억, 그 어떤 비스킷이 추억의 그 맛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구수한 냄새와 함께 툭툭 불거져 오르며 익어가던 국수 꼬리. 나의 행복감도 벙글벙글 부풀어 올랐다. 자투리에 불과한 국수 꼬리는 어린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어려웠던 시절의 정서가 고스란히 저장된 추억이 아련하다.

나의 밀가루 반죽이 물기를 잃어가고 있다. 홍두깨는 고사하고 꼬챙이 하나 없이 일을 벌여놓고 보니 반죽을 밀 자신이 없다. 심청이 젖동냥 하듯 꾸덕꾸덕한 덩어리를 껴안고 기성댁에게 달려간다. 생기를 잃었던 반죽은 기성댁의 손에서 소생한다. 구순에 가까운 기성댁이지만 국수 만드는 옛 솜씨는 여전하다. 실처럼 얇은 국수발은 삶다가도 풀어지는 법 없이 오돌오돌하다. 

손수 만든 국수를 자식에게 먹이는 일에 기성댁은 보람과 사명감마저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아직 국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국수 만드는 일은 기성댁만의 고유한 영역이고, 아직은 기성댁의 영역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내 간절한 소망은 기성댁이 오래토록 국수 밀 기운을 잘 갈무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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