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날이 까마득하다. 오십 년 전의 일이다. 기성댁의 집에 들어선 날, 나에 대한 가족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내 몸통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서 우아하게 날개짓 하는 학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옻칠한 뒤 붙인 조가비가 빛을 받을 때 프리즘과 같은 색광 현상을 일으켜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몸치장이 남다른 까닭이었을까. 칭찬이 이어졌다.
‘우아하다, 품격 있다. 화려하면서도 야물어 보인다.’
나는 손님이 들락거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밥상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집안의 대소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저절로 시시콜콜하고 은밀한 소문까지도 알게 되었다. 집안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더 나를 차지려고 애썼다.
세상이 바뀌니 생각도 변했다. 생활방식은 숨 가쁘게 달라졌다. 식탁이란 것이 으스대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기성 댁은 투덜대는 식구들을 달래어서 내 앞에 한 번씩 불러 모았다. 내가 가끔 햇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기성 댁의 노력 덕택이라 해야겠다.
세상만사 변하지 않는 것이 그 어디에 있으랴. 식탁이 주방을 점령해 버렸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날렵한 맵시에 나는 기가 죽었다. 요즘 세상에 무겁고 관리하기도 힘든 자개상을 누가 사용하느냐며 가족들은 눈을 흘겼다. 어쩔 수 없이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침침한 창고 방으로 옮겨졌다. 한줄기 햇빛에 목마른 가재도구들이 축축한 냄새를 풍기며 웅크리고 있었다. 얼기설기 쳐진 거미줄에서 발버둥 치는 생명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세월의 냉기를 참아냈다.
어느 날,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목장갑을 낀 장정들이 우리를 거칠게 밖으로 끌어냈다. 눈부신 가을 햇살에 잠깐 어지러웠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기성댁의 자부심이었던 자개농과 문갑도 그 위풍당당하던 자태는 어디 가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다른 이삿짐들과 함께 마당의 귀퉁이로 내몰렸다.
기성 댁을 도우러 온 딸은 집안의 이곳저곳을 사진에 담았다. 재개발로 없어질 추억을 남기고 싶은 모양이다. 아직도 공작 한 쌍의 빛깔이 선명한 자개농을 어루만지다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젖 먹은 힘을 다해 멀쩡해 보이려고 애썼다. 꼬꾸라진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손등으로 툭툭, 나를 두들겨 보더니 기성댁에게 물었다.
“엄마! 이 자개 상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나를 데려가겠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복잡한 승용차 트렁크에 실렸지만, 얼굴이 긁히는 아픔도 잊었다.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이토록 삶의 불쏘시개가 될 줄이야.
새로 태어난 듯 기분이 상쾌해졌다. 뒤집어쓴 먼지를 없애고 보드라운 천으로 닦으니 빛이 났다. 거실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고작 화분 받침대 역할이었지만 억울할 것도 없었다. 농막에 감금당한 자개농에 비하면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허리는 굽을 대로 굽고 손가락 마디는 휘어질 대로 휘어진 기성댁을 만났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기성댁 주름살처럼 실금이 자글자글한 나를 과연 알아볼까. 나이답지 않게 마음만 싱싱한 기성댁 모습이 나와 참 닮았다. 나를 어루만지는 손바닥의 온기는 그대로인데 손등의 정맥이 낙엽의 잎맥처럼 선명하게 꿈틀거렸다.
사람들은 나를 옛것이라 부른다. 살아야 할 날과 살아온 세월을 저울질하노라니 가슴이 뻐근해진다. 그렇지만 나로 인해 가끔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아직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남은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