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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Oct 15. 2023

글리코 간판 앞에서

 동료가 과자 한 통을 내밀었다. 뭐냐고 하자 오사카 여행을 다녀온 기념품이라고 했다. 일본어로 무어라 적혀 있었지만 까막눈인 나에게는 이집트 상형문자일 뿐이었다. 이럴 땐 실물을 빨리 확인해 보는 게 상책이다. 포장지를 뜯자 막대처럼 생긴 과자가 나왔다. 생김새가 '빼빼로'와 너무나 비슷하여 깜짝 놀라자, 동료는 '빼빼로'는 1983년에 국내에서 출시되었고 '포키'는 십칠 년 앞선 1966년 일본에서 출시된 제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며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유래담을 펼쳤다. 나는 과자를 오독오독 씹으며 동료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일 년 뒤, 동료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도톤보리 거리를 찾았다. 화려한 조명과 여행객들의 설렘은 여기저기서 출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은 자와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거리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다이달로스의 미궁에서 탈출하려 애쓰는 미노타우로스처럼 두리번거렸다. 나는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 등 각국 언어가 뒤섞인 곳에서 그들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왔다. 그 반가움이야 어찌 말로 다 하랴.

 "우와! 저기 있네."

 소리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마라토너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내가 찾던 '글리코' 간판이다. ‘글리코’는 1929년에 설립한 제과 회사다. 회사명에는 이야기가 있다. 창업자가 굴을 넣고 우려낸 국물에서 글리코겐을 채취한 후 그것을 캐러멜 속에 넣어 영양 과자인 ‘글리코’를 만들었는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과자 이름이 회사 이름이 된 것이다. 최초의 간판은 1935년부터였으나, 철거와 설치를 두어 번 반복했다.

  그러다가 1963년에 다시 설치했는데 독특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열 개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게 한 뒤, 여기에 조명을 비추어 무지개 모양이 나오도록 했다. 지금은 별거 아니다 싶겠지만, 당시로서는 별천지였을 것이다. 그 뒤 육상선수 골인 지점으로 들어오는 듯한 모습을 역동감 있게 표현하고 조명등까지 설치했다. 간판을 켜는 시간은 일몰 삼십 분을 시작으로 해서 자정까지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동료에게 들었던 일화였으므로 그저 듣고 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마주하고 선 간판은 십여 년 전에 다시 수정된 것이다. 네온사인에서 LED로 변했고, 배경이 움직이면서 마치 마라토너가 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계절 따라 옷도 갈아입는다. 축구복과 야구복으로 바꿔 입는 선수의 등 뒤에는 붉은 해와 하얀 별이 빛나고 있다. 밤낮으로 열심히 뛰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아니면 오사카의 명물 간판이 되겠다는 각오를 야무지게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사람 마음은 다 엇비슷한 모양이었다. 나의 궁금증을 대신 질문하는 이가 있었다.

  “김 상! 간판 속 저 남자는 누구인가요?”

  여행 안내자는 예상 문제를 만난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가다구리 시조’ 선수입니다. ”

 ‘김 상’은 선수의 이름을 ‘시조’라고 줄여서 말하겠다고 했다.

  ‘시조’는 마라톤 예선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나,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경기 도중에 쓰러졌다. 일사병이었다. 경기를 중단하고 인근 농가에서 겨우 치료받았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경기를 포기한다는 통보가 주최 측에 전달되지 않았다. ‘경기 중 실종과 행방불명’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의 존재는 세상에서 잊혔다.

  그런데 올림픽위원회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행방불명된 ‘시조’가 일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원회는 올림픽 기념행사에 그를 초대하고 싶다고 소식을 전했다. 오십사 년이 지난 1966년, 그의 나이 일흔다섯이었다. 흔쾌히 그 초대에 응했고 짧은 트랙을 도는 것으로 마라톤 완주를 인정받았다.

  ‘54년 8개월 6일 8시간 32분 20.3초’

  ‘시조’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기록 시간이다. 그는 ‘실로 먼 길이었다’라고 말했다.

   높이 이십여 미터의 간판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일본 최초의 올림픽 선수이자 일본 마라톤의 아버지로 불리는 남자가 달리고 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는 데만 이십 일이 걸렸다. 쌀처럼 익숙한 음식이 없고, 난생처음 고위도의 백야를 경험한 그는 컨디션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마라톤은 섭씨 사십 도의 혹독한 더위 속에 치러졌다. 선수 중 절반이 기권했고, 한 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시조’가 귀천한 지 사십 년이 지났지만, 해가 지면 그는 날마다 부활한다. 도톤보리 거리 간판 속에서 달리고 또 달린다. 두 팔을 번쩍 든 그는 우리를 향해 ‘매일매일 활기찬 삶’을 외치고 있었다. 원래는 ‘글리코’ 제과의 마스코트였으나, 지금은 오사카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간판 바로 앞에 있는 보행자 전용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미 나는 거리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독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도착했다. ‘글리코’ 제과 회사의 과자만 파는 곳이었다. 나는 다른 여행객을 따라 ‘포키 멜론 맛’을 대여섯 통 샀다.

  그중 한 통을 동료에게 건네며 생각했다. 인생은 제멋대로 흘러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하기도 하는구나. 나는 지금껏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만 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답은 모든 방향에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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