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골목길이 시끌벅적했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가 봐도 방송 촬영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비록 소박한 일이지만 평생을 통해 최고가 된, 놀라운 득도의 경지를 지닌 분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TV에서 본 남자가 골목길을 걸으며 열심히 말했고 카메라맨은 앵글 각도를 맞추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도대체 어느 가게에 달인이 있다는 말인가. 앞뒤를 살피고 머리를 굴리며 촬영 현장을 졸졸 따라갔는데 빵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차압 쌀~ 떠억“
내 맘이 팔짝 뛰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꼭 들르는 저 빵집이 오늘의 주인공이라니. 어느새 카메라가 건물을 클로즈업시키고 있었다. 적산 가옥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 '제과'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일 바지에 하이힐을 신은 느낌이랄까. 낡은 미닫이문에는 찹쌀떡, 고로케, 도넛츠 라는 글자가 돋움체로 박혀 있었다.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고도 당당하게 가게를 지키는 저 단어들은 모두 이 가게의 시그니처들이다. 투박한 모양으로 구워낸 크로켓과 도넛은 나란히 줄지어 누운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맛으로 따지자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겠지만 나는 찹쌀떡을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였다. 뽀글이 파마에 체크무늬 남방, 삼색 슬리퍼. 눈을 씻고 보아도 신경 쓴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방송 촬영하러 온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이런 촌 동네에 뭐 찍을 게 있다고?"
귀찮다는 듯 다리를 절뚝거리며 주방 쪽으로 걸어가던 할머니가 남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립스틱으로 물든 할머니의 붉은 입술에 순간 아찔했다.
머쓱해진 남자가 할아버지에게 다가서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르신은 언제부터 이 일을 하셨는지요?"
남자는 짜부라든 할아버지의 키에 눈높이를 맞추려고 최대한 허리를 굽혔다. C자형 몸이 된 남자는 손깍지까지 낀 채 대답을 기다렸다.
"열다섯 살."
연이어 할아버지의 연세를 물었고 순간, 남자도 나도 입이 쩍 벌어졌다. 육십팔 년째 떡을 빚고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오며 가며 들락거렸지만, 빵집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가끔 문이 닫혀 있거나 조기 매진으로 헛걸음할 때면 투덜대거나 짜증만 부렸다.
머슴살이하던 할아버지는 찹쌀떡을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어떻게 하면 원 없이 먹을 수 있을까. 일본인이 차렸다는 읍내 빵집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라도 할 테니 먹이고 재워만 주면 된다고 했다. 월급도 없었다. 아주 가끔 노는 날, 돈 백 원을 받은 게 전부였다는 말에 남자는 ‘백 원이요?’라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었고 일본인은 모두 돌아갔다. 가게를 넘겨받은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찹쌀떡을 만든다고 했다.
찹쌀을 불리고 고두밥을 지어서 으깨는 과정은 해가 갈수록 힘에 부대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찹쌀가루를 쓰면 되지 않냐는 남자의 물음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찹쌀떡은 찰기가 생명인데 내 손으로 그 명줄을 끊으란 말인교?”
떡 빚는 모습을 찍게 해 달라며 매달리는 남자와 손사래 치는 할아버지의 실랑이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남자는 삼고초려의 자세로 매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드디어 할아버지가 앞치마를 걸쳤다. 그 사이, 손님들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가격이 싸고 맛있다.'라는 거였다.
보기만 해도 쫀득한 찰기가 느껴지는 떡 반죽을 솥에서 주걱으로 펴냈다. 할아버지는 무심하게 반죽을 툭툭 떼어내더니 떡판에 던지듯 올렸다. 익숙한 손의 감각으로 팥앙금을 넣는 모습이 전혀 녹슬지 않았다. 아흔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손끝은 소림사 무공처럼 절도가 있었다.
순식간에 빚어진 떡을 알루미늄 사각 쟁반에 담았다. 판매대에 오르는 떡은 하루에 딱 마흔다섯 개. 그 이유를 물어도 할아버지는 딴청을 부렸다. 왜 하필 이 개수를 고집하시는 걸까. 수인(囚人)번호도 아니고. 혹시, 마흔다섯 살에 할아버지가 무슨 일이라도 겪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펼치다가 마지막엔 조국광복의 해까지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며 내가 나를 쥐어박는 사이, 찹쌀떡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남자도 잽싸게 찹쌀떡 한 봉지를 샀다. 그러더니 카메라 앞으로 가서 먹방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우와! 여섯 개에 오천 원이라는데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고개는 끄덕끄덕, 입을 오물오물, 손가락은 엄지 척을 했다.
“부드럽기만 해서 줄줄 흐르는 그런 떡이 아니에요. 탄력성이 있어요. 와! 진짜 맛있다.”
남자의 눈은 왕방울만 해지고 미간은 내 천(川) 자를 그렸다.
”씹자마자 침이 딱 나와서 술술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물이 필요 없어요. 이 집은 쫀득함, 부드러움, 맛있음. 이 세 가지의 매력을 모두 갖추었어요.”
카메라가 꺼졌는데도 연기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남자의 퍼포먼스는 한동안 이어졌다.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노포 주인에게 언제까지 할 거냐는 질문지의 모범 답안은 ‘팔다리에 힘 있을 때까지’다. 할아버지는 접이식 의자를 당겨 앉았다. 빵 사이에 슈크림을 넣고 있는 할머니를 턱짓하며
”마누라 다리가 저러니 이제는 못 해. 혼자서는 빵 못 만들어.”
추석까지만 한다는 말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겨우 두 달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