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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울 Oct 15. 2023

목장과 테쉬폰

  나는 이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삼십 년을 사랑했던 아들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시어머니가 될 생각을 하니 이래저래 뒤숭숭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맘을 꿀꺽 삼키며 일부러 무심한 척 말했다.

  "아무 데나!"

  나는 우주여행을 떠나도 성에 차지 않았겠지만, 육지를 떠나는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이 이국적이었다. 되짚어 보니 제주도는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이삼 년에 한 번은 들락거렸을 것이다. 그때마다 코스는 관광지와 맛집 위주였으니 온실 속 화초 같은 여행이었다. 그러나 이별 여행은 달랐다. 익숙하지 않아서 설렘이 있고, 살짝 긴장감을 주었지만 무한한 기대감이 밀려왔다.

 '성 이시돌 목장'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돌' 자를 어찌나 부각했는지 '돌 목장'으로 읽을 뻔했다. 안내판에 따르면 목장은 ‘성 이시돌’ 신부가 설립했다. 본명 ‘맥그린치’, 한국 이름 ‘임피제’인 그는 1954년 제주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제주도는 얼마나 빈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지역이었을까. 삼 대째 제주도를 떠난 적 없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육지 것’들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마라. 한국전쟁과 4.3 사건의 상처가 얼마나 깊으면 칠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런 말이 대물림될까.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마냥 즐거운 낯빛이었다. 맘 속으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자들의 믿음을 길러주는 게 사제의 최우선 소명이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일이 더 급했다.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을 신부가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고민 끝에 황폐한 한라산 개간을 통한 목축업 육성만이 가난을 물리칠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시돌 목장은 그렇게 탄생했으며, '돼지 신부님'이란 애칭도 이때 붙었다.

 우유 팩 모양의 의자 너머에 카페 이름이 참 재미있다. 우유부단. 그곳에서 아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이거 드셔 보세요.”

목장에서 갓 가져온 신선한 우유라는 말에 천천히 한 모금 삼켰다.  우유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아들이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건축물이 목장 안에 있다고 했다. 저쪽이라며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을 선글라스 너머로 바라보았다.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청춘남녀의 모습이 가물가물  보였다. 많은 관광객들이 매년 방문하고 유명한 사진 명소로 자리 잡은 '테쉬폰'이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전쟁  폐허 같았지만 무언가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구조물이었다.

 '테쉬폰'은 기본적으로 커다란 합판을 곡선형으로 둥글게 말아서 건물의 양쪽에 고정시키고 구부러진 합판이 벽이 되면서 지붕으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벽체가 고정되면 후에 합판 위에 가마니나 억새를 덮고 시멘트 몰탈을 덧발라서 완성한다. 이를 설계한 사람은 푸른 눈의 임피제 신부라고 알려져 있다.

 임피제 신부는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성이시돌 목장에 테쉬폰양식의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설계 기술을 그의 고향이었던 아일랜드에서 배워왔다. 이 작은 집에는 침실, 부엌, 및 화장실도 딸려 있어서 상당히 경제적이며 내부에 기둥이 없기 때문에 시공이 편하고 건축 자재비를 일반적인 시공 방식에 비하여 더욱 절감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어우러지는 테쉬폰이 인위적인 행위였지만 자연과 잘 어울리는구나 싶었다. 아들은 자기가 무슨 건축 전문가라도 된 듯 말했다. 테쉬폰이 제주도와 임피제 신부의 상징으로써 한국 건축사의 한 획을 보여주는 가치를 지녔다고. 국내에 몇 안 되는 유럽산 건축 직수입 구조방식의 건축물이 더 훼손되기 전에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 같은 아들의 앞날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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